걸어보기로 했다.

“혼자 있는 낮, 나를 구한 건 걷기였다”

by 은유


디스크수술을 받고난 이후 간호사쌤이 얘기해줬다.

"퇴원 후에는 무리한 운동은 안되고 회복될 때까진 살살 걸으셔야해요."

1시간씩 걷는건 금물, 15~20분 나눠서 걸으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주택단지에 안에 있는 우리집은 편의시설 이용이 불편하다.

100m는 더 걸어야 편의점 하나 달랑 있는 정도니까~

그래서 걷기보단 차를 주로 이용했다.

그러다보니 10분 남짓 걸리는 거리도 멀게 느껴졌다.


여름이면, 뙤약볕 아래 걷는 건 땀이 많은 내겐 더욱 곤욕이었다.

운동을 좋아하지도, 걷는것이 습관이 안된 내게

디스크에 무리가 오는건 어찌보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퇴원 이후 역시나 일이 생기지 않으면 집밖에 나가질 않았다.

걷지 않았단 얘기다.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하릴없이 걷는다는 건 내게 약간의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걸어간다면 길가 들판에 예쁜꽃이 피어있다던지,

재미난 구경거리가 있는 상점이 있다던지,

아니면 좋아하는 커피숍이 그 길 끝에 하나라도 있어야한다.


그 얘기 즉슨,

‘걷고 싶게 만드는 이유’가 없는 길은

일부러 걷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길이 우리동네엔 별로 없다.

걷는걸 목적으로 가고 싶은 길이 없단 얘기다.




오늘 좋은 분들과 즐거운 모임을 가졌다.

집에 아무도 없어 물어보니, 남편과 아이는 나들이를 갔다고 했다.


조용한 집에 나혼자였다.

미세먼지 하나없는 화창하고 따뜻한 날

창문도 열고, 테라스의 간이문도 열어젖혔다.

숲을 마주한 우리집

문을 여니 새소리가 클래식처럼 들린다.


마치 영화 속 한장면처럼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주인공이 나오는 장면같은~~

모든게 완벽해보였다.


평일엔 조용했던 옆 집에서, 복닥복닥 사람사는 소리도 들렸다.

주말이라 바베큐파티를 하려나싶었다.

절간 같은 고요함이 아닌, 약간의 소음도 섞인 사람사는 냄새나는 그런 풍경이다.




그런데,

왜 가슴은 답답하고, 콩닥거리는걸까?

자꾸만 한숨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아까 많이 마신 커피 때문인가!



잠깐 눈을 붙이면 나아질까 싶어

눈을 감고, 한쪽 팔을 테이블에 올리고, 그 팔에 기대 조용히 눈을감았다.

늦은 점심을 먹은 탓에 곧 스르르 잠들줄 알았다.


그렇지만, 몇분이 안되서

심장 두근거림은 더욱 강해지는걸 느꼈다.


파도가 저 멀리서 오는데, 모래사장에 잠깐 스칠 파도가 아닌듯 보였다.

멀리서 보아도, 불안함 그 파도였다.


재빨리 생각을 굴렸다.

아침에 약 먹었는데, 방금 전까지 웃고 떠들다왔는데~

좀 더 버티면 그 이후엔 나아지겠지?


그러기를 여러번 되뇌었지만,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빨리 뭔가를 결단해야했다.


걷자! 이럴 때 걸어야한다고 했다.

햇빛을 마주하자.

그럼 괜찮을거라고 했다.



그럼 어디로 걷지? 문제는 방향~

우리 집에서 사방으로 뻗은 여러 길을 머릿속으로 훑어보다,

문득 떠올랐다.


아!! 그길, 그 길 끝 카페가 있었지

맛있는 커피 마시러 가자고 달래주듯 속삭이면서

옷을 갈아입고, 운동화를 신고

집밖을 나왔다.


집을 나서자 눈과 귀 가득 들어오는

적당한 햇살과 차소리, 바람소리에

밀려오는 파도의 높이가 약간은 낮아지는 느낌이다.


그렇게 걸었다.

그 길 끝 카페에 가서 맛있는 커피 한잔을 천천히 들이켰다.

혼자 나직히 앉아 속으로 얘기해주었다.


이럴 땐 걷자


그게 오기 전에 오늘처럼 걸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