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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대 배치

군대 이야기 1

by 창복

그해 여름은 너무 무더웠다.

버스에서 내려 더블백을 매고 대대로 향한다.

마침 동기인 이소위가 같은 버스를 타서 동행을 한다.

위병소가 가까이에 온다. 두 명의 병사가 우리를 막아선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수고 많다. 오늘 신고가 있어서 “


위병은 상황실에 보고를 하고는 길을 터준다.

연병장에 들어서니 몇 대의 지프차와 3/4톤 차량들이 보인다.

그리고 몇 명의 동기들도 먼저 와 있다.


“집엔 잘 갔다 왔어?”

“잠깐 반나절 부모님 뵙고 다음날 올라와서 근처에서 잤어. 휴가도 없이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니냐?”


동기의 볼맨 소리는 이해가 간다.

지방에 집이 있는 친구들은 교육수료 다다음날 자대 배치는 시간적으로 너무 빡빡하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에 군대 교육에 관심을 두지 않은 난 교육성적이 하위권이었다.

그래서 군번도 높은 숫자를 받았다 같은 대대로 배치된 7명의 동기들 중 자대 배치를 위한 포대(중대) 선택권은 군번이 낮은 순서대로 진행을 했고 군번이 높은 나에겐 최후에 남는 포대가 자대로 결정이 났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남은 5포대가 나의 행선지가 되었다.

같은 학교 같은 과 동기인 김소위와 조소위를 비롯한 동기들이 하나 둘 자기 부대로 떠나가고 난 맨 마지막까지 남았다.


마침 연병장으로 들어온 지프에서 누군가 내리더니 작전장교에게 경례를 한다.

모양이 너무 촌스러워 보였다.

군복이 어울리지 않게 배가 살짝 나오고 민간인처럼 행동한다.


“야, 최소위! 이리 와라. 차에 타라”


인상을 좋지 않게 본 막 지프에서 내린 그 누군가가 나를 부른다.

가는 내내 질문이 이어진다.


“우리 포대가 가장 좋은 데야. 좀 돌아가자. 경치 구경도 할 겸,“


이중위는 학교는 다르지만 한 기수 위인 선배였다.


“오늘 포대장님하고 회식할 거야. 우리 포대에 나 말고 남중위하고 김소위도 있어.”


대략적인 포대 얘기와 중간 간부들 얘기까지 말은 포대 도착 때까지 이어졌다.


“자 들어 가자”


반 원통형의 지붕을 양철로 덮고 양 끝은 크게 문을 만들고 반 원통형 중간에 창문을 여러 개 만든 미군 막사모양의 포대장실로 안내한다.

상황실을 지나 포대장실에 들어서니 안경 낀 심술 가득한 얼굴과 몸이 둥글둥글 한 포대장이 앉아 있다.

한 손에는 자기가 여기서 대장이라는 듯 짧은 지휘봉을 쥐고선 다른 손바닥에 지휘봉 끝자락을 툭툭 쳐댄다.


“신고합니다! 소위 최 00은 일천구백 0십0 년 칠월 삼일 부로 5포대로 자대 배치를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격추!”

“격추. 쉬어!”


포대장이 경례를 받으며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을 한다.

한쪽에선 선풍기가 돌아가고 포대장과 선배 그리고 나는 회의 탁자를 두고 자리에 앉았다.


“포대장님, 최소위가 학교 다닐 때 장학금도 타고 머리가 똑똑해요. 오면서 말해보니 말도 잘하고 운동이면 운동 축구 야구도 좋아하고 공학도입니다”


선배는 괜한 너스레를 떨며 포대장에게 나를 과대포장을 하듯 아무 말이나 날리고 있다.


“그래? 좋아. 우리도 머리 좋은 소대장이 있으면 좋지”


이때까지는 알지 못했다.

포대장의 밑그림과 나의 기대가 얼마나 멀리 있었는지.

선배는 소대로 복귀하고 포대장실에 홀로 있는데 상황병이 두 손을 받쳐가며 책을 한 무더기 가져와 책상에 내려놓는다.

족히 10권은 넘어 보인다.

잠시 후 포대장이 들어온다.


“최소위, 여기 책 있지. 이거 다 외워. 딱 2주 줄 거야. 그리고 시험을 봐서 합격이면 휴가를 보내주고 아니면 못가. 알았지?”


와. 미친. 군대 교육을 그토록 싫어하던 내게 이 많은 책을 외우고,

아니 이 더위에 이걸 다 하라고? 누가 자대에 가면 바로 일주일 휴가 준다고 했어?

휴가 나올 거라고 애인하고 만나기로 약속도 했는데 2주일이나 더 기다리라고?

어떤 놈이야!


다음날부터 무더위와 책들과 나의 2:1 싸움이 시작되었다.

아군인 선풍기는 더위와 싸우는데 도움이 되질 않았다.

지붕에서 전달되는 후꾼한 더위를 막기엔 역부족이었고 식후에 밀려드는 식곤증이 더위를 앞세워 나를 그로기상태로 몰고 갔다.

작계를 비롯해 많은 전투 매뉴얼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특히 비밀통신을 위한 암호체계는 나를 미치게 했다.

하루하루 피 패해지고 힘이 빠지는 나를 느낀다.

화가 나고 갑갑한데 자리를 뜰 수없는 군복의 족쇄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드디어 2주가 지나고 시험 보는 당일이 되었다.


“최소위. 준비됐나?”


포대장은 야비한 웃음을 지으며 책을 고르고 침을 바른 손으로 책장을 뒤적인다.

작계의 단계와 대응에 대한 세세한 질문과 포의 운영과 세부적인 특징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고 적군의 비행기 모양과 여러 각도에서의 그림 맞추기가 이어진다.


“자. 마지막 질문이다. 여기 이 암호가 뭘 뜻하지? 언제 쓰는 거야?”


마지막 암호 문제까지 대답하니 그제야 포대장이 합격이라고 한다.


“수고했어. 자 저녁 먹으러 나가자. 내가 특별히 여기에서 유명한 집을 소개해 줄게. 이중위도 온다고 했어 “


저녁을 사주겠다고 하는데 하지만 난 빨리 휴가를 가고 싶을 뿐이다.

굳이 저녁을 먹자니 차에 올라타고 마을로 향한다. 물가에 자리한 매운탕 집이다.


저녁을 거의 먹을 때쯤 포대장은 선배에게 나를 인계하고는 휴가언급 없이 먼저 자리를 뜬다.


“선배님, 휴가를 보내 준다더니 포대장이 말이 없습니다. 답답합니다 “

“내가 말해 볼게. 오늘은 나랑 우리 소대에 가서 쉬어라. 포대장이 너한테 이중사가 있는 소대를 맡길 생각인가 봐. 이중사는 아주 좋은 사람이야”


난 그해 무더운 여름을 휴가 없이 보냈다.

겨울까지 외출도 하지 못했다.

애인하고의 약속도 깨졌고 휴가를 보내주지 않아 반발심에 답답함은 극에 달했다.

덥기는 왜 그리 덥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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