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엄청난 범생이도 아니었고 우리 집안이 엄격한 유교집안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고등학생이면 한 번쯤 마셔보았을 법한 술 한 모금도 난 마시지 않았었다.
그리고 고3 겨울방학이 되고 해를 넘겨서야 시도를 해보았다.
“엄마, 처음에 술은 웃어른께 배워야 실수하지 않는다는데 아버지한테 부탁해 볼까? “
솜털이 한참 남아있던 놈이 과감했다.
어느새 어머니께서 술상을 보았다며 안방에 들어오라고 부르셨다.
안방에 들어서니 작은 교자상을 앞에 두고 아버지, 어머니께서 앉아 계셨다.
교자상에는 소주 한 병과 소주잔 두 개 그리고 길게 4조각으로 잘린 오이와 고추장이 작은 종지에 담겨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소주잔에 술을 따라 주셨다.
어깨너머로 배운 지식대로 두 손으로 소주잔을 들어 술을 받았다.
아버지께는 두 손으로 술병을 잡고 따라드렸다.
술을 들라고 해서 아버지께서 먼저 술을 입에 대시는 걸 보고 난 후에 옆으로 고개를 돌려 한 손으로는 소주잔이 보이지 않게 가리고 홀짝 들이켰다.
술을 마시는 동안 부자지간에 별말이 없었다.
우리 집은 원래 그랬다.
가족이라도 서로 말을 잘 섞지 않는다.
딱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술상을 물리셨다.
그렇게 생애 첫 번째 술을 마셨었다.
이후로는 누구라도 상상할 수 있듯이 때가 되면 마셨고 자리가 되면 마셨다.
술은 곧 성인이 되었다는 증표 같았다.
술은 곧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 같았다.
술은 곧 때로는 너무 기쁘거나 때론 너무 슬픈 일의 반드시 지나야 하는 관문 같았다.
토해도 마시고 필름이 끊겨도 마셨다.
친구를 종로에서 만나면 낮이라도 커피숍대신에 생맥주집을 찾았다.
미팅을 해도 난 커피대신 맥주집에서 보자고 했다.
커피마실 돈이면 500 원하던 맥주 한잔이 훨씬 가성비가 좋다고 생각했다.
점심 전 열지도 않은 ‘연타운’에 들어가 석범이와 함께 기어코 맥주를 마셨다.
군대를 가서도 이틀에 한번 꼴로 마셨다.
사회로 나와 회사원이 되어서도 늘 즐겨 마셨다.
세계맥주가 유행할 때 눈감고 맥주를 마신 후 무슨 맥주인지 맞추는 내기를 해서 이길 정도로 마셨다.
지금은 막걸리를 직접 담가서 먹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술을 끊어야겠다.
좋은 것보다 나쁜 게 많았던 건 사실이다.
술은 긴장을 풀어주는 대신 정신을 몽롱하게 한다.
그런데 술을 끊어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가 있다.
와이프께서 87세까지 일하라고 하신다.
67이 아니고 87이다.
그러려면 정신이 번뜩여야 할 테다.
그래서 첫 번째로 술은 거부대상이 되었다.
담배를 하루아침에 벼락같이 끊었듯이 술도 이젠 끊어야 하는 날이 도래했다.
“안녕…. 술아, 잘 지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