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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규가 칼을 들다

군대 이야기 3

by 창복



“야! 뭐얏!! 칼 내려놔!!!”


평상시 경계근무는 우리들의 주 임무다.

주로 하늘을 감시하고 육안식별로 멀리 날고 있는 비행체를 알아보는 일이다.

취약대기 시간에는 3인이 1조로 구성되어 2개 조가 근무를 하게 되는데 이들 중 2인을 지역방위로 채운다.

그리고 지역방위는 주간조와 야간조가 교대로 출근을 하고 있기에 총 4인이 출근을 하는 꼴이다.

더불어 이들에게는 저녁과 아침 식사 준비를 일반 병사와 같이 하도록 했다.

이런 근무와 방위병들의 역할은 오래된 관습처럼 이어오고 있었다.

이중사가 전역준비를 이유로 본부중대로 들어가 있어 오롯이 내가 병사들과 방위병들을 관리해야 했다.


“선규야, 오늘은 얼굴이 좋아 보인다?”


선규는 거칠고 속을 알 수 없는 아이다.

표정을 잘 드러내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고 병사들과 잘 소통하지 않는 성격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다른 소대에서 문제를 일으켜 이중사가 받아 주었다고 해서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소대장님, 이거 드세요”


가을이 깊던 어느 날 밤 선규는 나에게 캔커피를 겸연쩍은 듯이 내민다.


“어, 난 됐고. 너 마셔”


선규는 끝내 내 손에 차가운 커피를 쥐어주고는 자리를 뜬다.

무슨 할 말이 있어서였을까? 내무반을 등지고 어두운 밖으로 선규가 사라진다.


소대장실은 원래 없었다.

일반 부대와 같이 BOQ 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초기엔 병사들과 함께 내무반에서 취침을 했다.

난 매일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새벽 취약대기를 하고 밤 9시까지 야간 취약대기 근무를 서야 했다.

토요일, 일요일을 포함한 매일매일 근무를 선다.

이런 일이 현실에서 있었다.

군대는 현대화가 이뤄지지 않았고 강요와 지침만이 넘쳐났다.


몇 주 후에 내무반 옆에 딸린 창고를 청소하고 탄약을 보관하기 위해 벽돌과 외부를 시멘트로 바른 탄약보관실 위에 나무와 모포를 깔아 잠자리를 만들었다.

내벽엔 노란색 유성페인트를 허리 윗선부터 천정까지 칠하고 진한 청색을 아래쪽에 칠했다.

이렇게 해서 소대장실이 만들어졌다.

소대장실의 한쪽은 내무반과 연결되고 다른 쪽은 수돗가가 있는 바깥으로 문이 나있고 막사로 들어오는 입구도 보인다.

그리고 소대장실 뒤편으로 부엌이 작게 붙어 있다.


초겨울로 접어드는 어느 날 선규가 출근하는 날이었다.

거의 모든 하루하루를 근무와 싸우느라 나의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가고 있다.

소대장실에서 군화 끈을 묶고 있는데 누군가 달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내무반이 갑자기 시끄럽다.

고함이 나고.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내무반으로 통하는 문을 급히 열어젖혔다.


“뭐야!”


말하는 순간 선규가 내무반 반대쪽 문에 서있고 손에는 식칼이 들려 있는 게 보인다.


“야! 뭐얏!! 칼 내려놔!!!”


선규는 씩씩거리고 있고 내무반에 있던 병사들도 얼어붙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이기병일병이 선규를 뒤에서 날아 차기를 했다.

선규는 앞으로 고꾸라지고 다른 병사 둘이 선규를 덮쳐 선규의 양팔을 붙잡았다.


“야이, 새끼야. 왜 칼을 들고 설치고 지랄이야! “


이일병은 평택출신으로 태권도 2단이었다.

이일병은 역시 태권도 2단이던 정상병과 근무교대를 하고 막 산에서 내려오던 중이었고 마침 선규를 뒤에서 보게 된 것이다.

포대장에게 사건 보고를 하고 선규를 본부중대로 인계했다.

인계전 내무반에서 단둘이 선규와 상담을 했다.

선규에게 왜 그랬냐고 물었지만 선규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눈물을 보이며 죄송하다고만 했다.

누구를 찾고 있었는지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대답하지 않았다.

이후 내무반에 병사들을 모아두고 선규를 누가 괴롭히거나 폭력을 가했는지 묻고 소원수리를 받았다.

같이 출근하던 고재율이병에게도 상담을 진행했다.

결국 알아낸 특이사항은 없었다.

모두 입을 다물고 있는 건지 알 수는 없었다.


군대는 예기치 않은 사건과 사고가 많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사고와 사건은 끊이지 않는다.

우리는 같은 시간대에 같은 장소에 있지만 서로의 고민과 생각은 이해할 수는 없다.

비록 이번 사건으로 아무도 다치거나 큰 부상을 입지 않았지만 나로서는 처음 겪은 큰 일이었고 병사들을 대하는데 경각심을 키우는 큰 계기가 되었다.


후에 상벌위원회가 열였다.

남중위와 나, 그리고 포대장이 결정을 내리기 위해 서로의 의견을 나눴다.

이번 건은 살상무기가 될 수 있는 칼을 사용하고 비록 사람을 해하려는 의도가 있건 없건 간에 위험도가 높다고 판단했다. 결국 선규는 헌병대에 인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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