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 4
포대장의 호출이다.
점심은 본부에서 먹고 1시에 포대장실로 모이라는 지시가 상황실 유중사로부터 왔다.
“오늘은 너희끼리 점심을 먹도록 해, 오후에 본부에서 회의가 있으니 적어도 오후 6시 전에 돌아올 거다 전화 놓치지 말고 경계근무 소홀하지 말고. 정상병은 식사하는 거하고 방위병들 출근하면 복장부터 근무 관리해. 송병장은 손 놓은 지 오래됐으니”
잔소리와 지침이 섞여있는 모호한 말들이다.
믿음직한 정상병에게 말을 해 놓으니 안심이 된다.
“박일병! 말 잘 듣고 있어. 덩치 크다고 까불지 말고”
박일병은 한창 식사당번을 하느라 바쁘다.
190cm에 가까운 거구에 손도 솥뚜껑처럼 큰데 일은 꼼꼼하게 잘하는 편이다.
넉살은 덤이다.
“ㅎㅎ 다녀오십시오, 소대장님”
버스를 타고 본부로 가는 길은 군복을 입은 답답함을 잊을 만큼 좋은 코스가 된다.
마치 멋진 곳을 드라이브하는 기분이다.
오른쪽엔 산이 길게 늘어서 있고 왼쪽으론 호수가 있어 버스가 달리는 내내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가을이다.
산꼭대기 쪽으로는 벌써 옅은 단풍이 내려앉았다.
어느덧 버스는 마을 종점에 서고 버스에서 하차한 난 5일장이 열리는 작은 시장을 지나 돌다방을 보고 왼쪽으로 돌아 다리를 지난다.
다리가 연결되는 길가로 한창 코스모스가 피어있고 오른쪽 옅은 강가엔 연잎이 무성하다.
초등학교 정문을 왼편에 두고 계속 걷다 보면 비로소 초소가 나오고 이곳이 군부대라는 발견을 하게 된다.
“잘 지내지?”
“격추!, 소대장님 안녕하십니까?”
“보고할 필요 없어. 회의 참석 온 거니까.”
“예, 들어가십시오”
점심은 간부식당에서 먹는다.
남중위가 보이고 본부 간부들이 와 있다.
“격추,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먼저 남중위와 인사를 나눈다.
남중위는 학사출신이고 학교 1년 선배인데 나이로는 2살이 차이가 난다.
3소대를 맡고 있는데 꼼꼼하고 정이 많은 분이다.
군대 체질은 절대 아니고 늘 포대장의 먹잇감이다.
“1소대, 이소위는 안 오나?”
“모르겠습니다, 선배님 오는 줄도 몰랐는데요”
“어허, 유중사님, 이중사님, 손중사님도 오셨네요”
본부에 있는 편한 생활을 하는 간부들과 인사를 나눈다.
공무원처럼 칼퇴근하는 사. 람. 들이다.
이제까지 외박은커녕 외출 한 번도 못 간 나로서는 이들이 곱게만 보이지 않는다.
그럴 필요는 없지만 형평성이 무너진 체계는 불만의 크기가 커지기 마련이다.
점심 식사 후 인스턴트커피를 탄 종이컵을 들고 포대장실로 모였다.
작전 장교 역할을 맡고 있는 유중사가 브리핑을 한다.
“이번에 동계 훈련 계획이 나왔습니다. 동계 훈련은 실전사격대회로 2개 소대가 훈련을 하는데 다음과 같은 훈련 계획이 제공됩니다.”
유중사의 브리핑은 거의 1시간이나 이어졌다.
유중사의 설명은 나를 훈련 소대의 1 소대장으로 하고 2소대는 남중위가 맡으며 훈련 인원은 각 소대에서 각출을 하고 소대 재편성 후에 포대본부에서 사격 훈련을 한다는 것이다.
각 소대의 남는 인원 관리는 손중사가 맡고 배식관리도 함께 하도록 했다.
난 매번 선발되는 소대장이다.
암구호 대회를 포대 대표로 나가고 포대 진지 이동 훈련도 나한테 맡기고 이번이 세 번째다.
난 6개월도 지나지 않은 신임 소대장인데 자꾸 나만 시킨다.
포대장은 작정을 했었나 보다.
나한테 시험을 보게 한 순간부터.
시키면 해야 하는 게 군대라지만 너무 심하지 않나 싶다. (포대장이 바뀐 후로도 난 계속 선발되었다)
훈련은 각출한 병사가 모인 다음날부터 시작되었다.
사격 점수뿐만 아니라 전투태세 준비도 채점에 반영되므로 각 분대의 재편과 역할 분배를 확실히 숙지하도록 했다.
훈련이 시작되자 오히려 난 여유가 생겼다. 처음엔 훈련으로 바쁠 거라 예상을 했지만 내 소대에서 데리고 온 지원군 덕분에 여유를 찾았다. 정상병과 박일병이다.
정상병은 광주 출신으로 속이 착하고 성실하며 아래 병사들을 잘 챙기는 믿음직한 친구다.
박일병은 수원 출신으로 키가 크고 덩치도 산 만하지만 일에 있어서는 꼼꼼하고 덩치에서 오는 카리스마도 있어 애들이 잘 따르는 편이다.
“훈련의 목적은 1등을 하는 거지만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하다. 겨울이 가깝고 아침저녁으로 추운데 특히 쇠로 된 장비에 부딪히거나 눌리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시켜라. 감기 환자가 나지 않도록 아침저녁으로 따뜻한 물을 받아서 꼭 씻도록 하고 정상병은 니 동기와 박일병 위까지 관리하고 박일병은 니 아래 애들 관리해. 절대 사고 나지 않도록 하고 그렇지는 않겠지만 절대로 구타나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명심해라. 그리고 기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정상병은 나한테 얘기하고 간부들이 뭐라 하면 나한테 먼저 말해. 내 핑계 대고 알았지!”
두 번 세 번 강조를 해도 모자라다.
사고는 아무 때나 일어나고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으니까.
포대본부에는 포대장을 위한 BOQ가 있으나 나를 위한 공간은 없었다.
다행히 남중위가 3소대에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고 해서 저녁 식사 후 3소대로 이동했다.
3소대는 본부와 걸어서 5분 거리 밖에 걸리지 않는다.
찻길은 돌아가지만 샛길을 통하니 엄청 가까운 거리에 있다.
훈련 소대는 본부에서 취침 관리를 하기에 저녁 시간 이후로는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어서 와, 3소대는 처음이지? 나 이렇게 지낸다”
남중위는 오후 훈련이 끝나자마자 나에게 오라고 하고는 자기 소대로 와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잘 수 있는 자리를 내무반 끄트머리에 만들어 놓고 소대장실에는 방문 환영 행사라고 소주 2병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와, 선배님. 이게 뭡니까?”
“피곤한데 한잔만 해. 훈련기간이니까 가능한 거야”
남중위 선배의 지난 군생활을 들으며 술잔은 오고 갔다.
술을 마시니 남선배는 호탕한 성격으로 바뀌었다.
군복을 입었지만 우린 민간인처럼 웃고 떠들었다.
포대장과의 웃지 못할 해프닝부터 병사들과의 관계등 주로 서로의 갈등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뤘다.
내 눈에 남선배는 군복을 입고 있어야 할 주어진 시간을 꾸역꾸역 채우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