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 6
막 겨울을 벗어나고 있었다.
상부로부터 ‘춘계 진지 보수공사’를 하라는 지침이 아침 업무 보고 시간에 전달되었다.
춘계 진지 보수공사란 겨울 동안 관리하지 못한 곳과 진지 위장을 위한 잔디나 나무 심기등을 말한다.
먼저 보수공사가 필요한 부분을 정리 보고 하고 2차로 보고된 부분을 바탕으로 지원규모를 결정하겠다고 한다.
“잠깐 식사 준비 인원만 남기고 전원 포상으로 집합해라”
난 아침 점호를 생략했다. 취약대기를 새벽부터 하다 보면 점호시간이 애매하게 겹치게 된다 그래서 취침점호만 하는 걸로 바꿨다. 아침 시간엔 무척 바쁘다. 야간 근무조 방위병들이 주간 근무조와 바뀌는 시간과 취약대기로 포상에서 근무하는 인원들이 겹치고 중간에 조식 준비를 하던 것도 인수인계를 하다 보면 아수라장이 된다. 처음엔 FM 대로 하다가 시간에 늦는 인원과 결국 밥까지 태우게 되는 비효율적인 모습들을 목격하며 아침점호를 생략하기로 결정하였다. 단, 아침에 있는 포대 업무보고 전까지 인원 파악과 특이사항에 대해 분대장들에게 약식 보고만 받았다.
“업무 지시 사항이다, 이번 달 말까지 진지 보수와 녹화를 해야 한다. 각자 공사가 필요하거나 교체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 정리해서 오늘 저녁 취침 전까지 보고하도록 해”
다음날이 되어 아침 업무 보고시간에 정리된 보수 리스트와 잔디와 나무를 몇 그루 심어야 하는 지를 보고 했다.
며칠이 되어 포대 유중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1소대와 3 소대장 및 송하사와 심중사까지 포함된 다중 연결이었다.
유중사의 부연 설명이 길었다. 고생이 많다느니 봄이 왔으니 회식을 하자느니 말이 많다.
“죄송합니다. 현재 대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지원품이 거의 없습니다. 포대본부에서도 보수할 곳이 많은데 여기도 반에반도 못 채울 것 같습니다. 각자 알아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지원되는 보수공사 물품은 없습니다. 이건 포대장님의 결정입니다.”
황당하다. 결국 소대장들 월급을 털어서 하라는 건가? 불만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이봐 유중사! 뭐야. 아무것도 지원하지 않으면서 뭘 고치라는 거야?”
비겁하게 포대장은 뒤로 빠져서 지침만 전달하고 어떻게 되든지 결실만 가져가겠다는 심보다. 유중사는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문제는 다다음달에 여단장의 방문 계획이 있다는 거고 이때 준비가 미진하면 지적을 받을 수 있다는 엄포가 유중사의 말 중간에 섞여 있었다는 거다.
속으로 욕을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 일을 어쩌지? 모래와 시멘트가 3-4 포대는 필요하고 나무 판넬과 사각기둥을 세울 각목도 필요하고 벽돌이나 자갈도 필요하고 나무는 어디서 사 오며 잔디는? 그래 페인트도 짙은 녹색으로 필요하잖아, 제기랄’
하루동안 고민의 고민을 했다. 월급이라고 받아 봐야 가끔 병사들 부식비에 돈을 보태주고 한 달에 한 번은 작게나마 회식이라도 할 때 소주라도 사주는 돈을 제외한다면 손에 들어오는 돈은 극히 적다. 이런 돈으로 뭘 준비한단 말인가.
그리고 3일째 되는 날, 나는 결정을 내렸다.
“상황실! 00부대로 전화 연결할 수 있지?”
“네, 정확한 성함과 직위를 알면 연결할 수 있습니다.”
“좋아, 00 공병 부대 00 소위 한테 연결해 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소대장님”
전화기 너머로 연결음이 끊기더니 심병장이 짧게 말한다.
“연결되었습니다”
“여보세요, 신소위!”
“어? 이게 누구야? 최소위?”
“그래, 나야, 잘 지내지 인호야”
인호는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온 동기로 공병부대에 있다. 3, 4학년을 꼬박 붙어 다니며 오랫동안 쌓은 우정이 있었다. 함께 동고동락을 한 사이이고 꽤나 가깝게 지냈었다. 인호의 부대와 우리 부대 사이는 대략 20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지난번 선배 결혼식에서 인호와 동기들을 만났는데 그때 인호 공병부대가 우리 부대와 가까이 있다는 걸 알았었다.
“부탁이 있어서 연락했어, 이것저것 필요한 게 있는데 지원을 해주지 않는데. 그래서 너희 부대에서 남는 자재가 있으면 도움을 받으려고. 니 능력껏 할 수 있으면 하고 아니면 괜찮아”
인호는 자세한 목록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번 주 중에 가지고 가겠다고 흔쾌히 말했다. 인호는 술을 먹지 못한다.
“오면 오렌지 주스 사줄게, 고맙다”
인호는 금요일 점심시간이 지나서 왔다. 키도 크고 덩치도 있는데 덥수룩한 수염까지 있어 대령쯤으로 보인다.
“어이, 인호야, 워워… 너 대령 같아, 신참 소위가 전혀 아닌데?”
“야, 담배 있냐? 담배가 떨어졌어. 오다가 보니 한 개비만 있더라고”
“나, 군대 와서 담배 끊었잖아. 여기 오렌지 주스 먼저 먹고 있어, 내가 사 올게”
인호는 일명 ‘육공트럭’에 가득 물건들을 가져왔다. 병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여 모두 내려놓았다.
인호와 나는 병사들이 물건들을 나르는 사이 군대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인호는 빨리 들어가야 한다며 서두른다.
“제수씨는 잘 있지? 나중에 만나면 안부 전해주라. 언젠가 부식수령하러 갈 때 들를게, 건강하고. 고맙다.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