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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림

군대 이야기 8

by 창복


만신창이가 되었다.

춘계 진지 보수 공사로 경계근무와 공사를 병행하다 보니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어느 정도를 할 건가는 전적으로 나의 판단이었다.

남중위 선배는 할 게 없다며 이틀 후에 바로 뻗었다고 한다.

병사들이 힘들어하는 것도 당연하다.

평지가 아니라 산을 오르내리며 근무와 공사를 진행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비바람을 맞으며 비틀어진 낡은 내무반 문과 틀을 새로 만들고 허리를 펴고 식사준비를 할 수 있도록 취사장에 탁자를 새로 만들고 육공트럭이 오갈 수 있는 지면 평탄화 작업과 겨울을 지나며 무너진 산비탈을 벽돌과 시멘트로 1M 높이로 경계 블록을 만들어 주고 포상과 내무반주위의 맨땅이 보이는 곳에는 나무와 잔디 떼를 심는 고된 작업이 쉼 없이 이어졌다.

그런 와중에 봄비가 단비처럼 내리고 작업도 막바지에 다다랐다.


“며칠만 더 하면 끝나겠다. 다들 힘들지만 힘을 내자.”

“소대장님, 노동이 너무 심합니다”

“알아, 이번주 금요일에 회식한다. 좋아?”

“예!!”


함성 소리가 산을 울린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한 명 한 명 아프기 시작했다.


“정병장님이 못 일어나고 있습니다. 몸에서 열이 나는지, 감기 몸살 같답니다 “

“이기병상병이 발전기를 옮기다가 허리를 다쳤답니다”

“방위병 정일병이 감기로 출근을 못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지평이가 감기랍니다 “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들리고 읍내에서 감기몸살약을 처방해서 먹여도 나아지는 기미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덩치 좋고 튼튼하던 박상병마저 몸살로 눕고 말았다.

공사도 마무리가 되지 않았는데 가뜩이나 모자란 인력에 가용인원마저 줄어들었다.

애들은 아프고 공사는 중단되어 도구도 치우지 못해 여기저기 방치해 있고 진지 전체가 쑥대밭이 되었다.


“소대장님, 일어나십시오”

“엉? 뭐야. 새벽부터”

“포상에서 박상병 님이 긴급하게 올라오시라고 합니다. 대대에서 작전장교가 불시점검 나왔답니다”


듣는 순간, 이거 큰 일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 역시 몸이 좋지 않았다. 지칠 대로 지쳐 어제는 비몽사몽간에 잠이 들었었다.

취약대기시간이었다.

군복을 입으면서 군화까지 매려는데 눈이 잘 떠지지도 않는다.

겨우겨우 옷을 입고 군화끈은 묶지도 않고 속으로 감아올린 바지 끝에 집어넣었다.

황급히 내무반과 포상으로 이어지는 비탈길을 오르는데 새벽이라 잘 보이지도 않아 두 번이나 발을 헛디뎠다.


“격추, 제5포대, 2 소대장 최소위입니다”


작전장교 이소령은 뱀눈을 하고는 작은 수첩을 플래시로 비추며 지적사항을 읊기 시작했다.


“최소위, 여기 5포대 2소대 문제가 많아. 경계병은 내가 담을 넘어 들어올 때까지도 모르고 있고 취약대기 시간인데 근무자가 한 명 빠져 있고 한 명은 벙커에서 쪼그려 자고 있고, 심지어 비상조치나 적기 출현 상황을 걸었는데 상황전파부터 전개 및 순서도 다 틀리고 제대로 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 그리고 소대장은 취약대기시간에 5분 내로 출동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하는데 10분이 넘게 걸려 올라오고, 잠을 자고 있었나?”

“…………..”

“오늘 당장 대대로 들어 왓!”


작전장교는 그 길로 떠나버렸다. 남겨진 우린 허탈했다.

포대 훈련 때마다 선봉에 섰고 모든 훈련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소대였다.

나는 말을 하지 않았다. 누구를 나무랄 것도 없었다.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대대로 들어간 나는 작전장교와 대대장에게 인사를 했다.

작전장교는 군장을 꾸려서 연병장을 구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군장을 꾸리려 본부 내무반으로 가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중학교 동창 일식이 녀석이 대대장 시보로 있었다.

일식이가 만들어 준 군장을 메고 연병장을 한없이 돌았다.

작전장교가 내린 벌은 연병장 20바퀴였다. 난 오기로 21바퀴를 뛰었다.


소대로 돌아와 병사들을 내무반으로 모이게 했다.

애들은 소대장 눈치를 보고 있다.


“이거, 우리가 무슨 일이냐?”

“소대장님, 아무래도 내무반 들어오는 양옆 길목에 심어놓은 향나무 때문인 것 같습니다”

“뭐? 향나무가 왜?”

“저거 버려진 무덤에 심어져 있었는데 무덤이 봉분도 없어 버려진 묘지라고 생각해서 가져온 겁니다”

“그런데?”

“혹시 귀신이 뾰족한 나무에 산다고 하던데 귀신이 따라붙은 것 같습니다”


진지가 있는 산은 오래전부터 공동묘지가 있는 공원묘지다.

수많은 묘지가 있는데 묘지는 진지 바로 위로도 몇 구가 있었다.

그리고 가까운 빈묘지에서 나무를 옮겨 심은 것이다.

정말 그동안 병사들이 지치고 아팠던 게 두 그루의 향나무 때문이었을까?

나 역시 몸이 무겁고 극심한 피곤함에 짓눌렸는데 나무를 옮겨 심은 것 때문일까?


“오늘 당장 저 나무 두 개를 원래 자리에 갔다 놔라!”


귀신을 무서워하는 건 아니지만 원래 주인이었을 분에 대한 예의로 나무를 옮겨 심었다.

원래 자리로 옮겨진 나무 위에 소주를 뿌리며 귀신이 따라붙지 않도록 빌었다.

그런 후로 신기하게도 애들이 하나 둘 회복하기 시작했다.


“정말 귀신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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