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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복 Aug 24. 2024

휴 가

군대 이야기 11


기나긴 포대장과의 밀고 당기는 싸움 끝에 2박 3일 휴가를 얻어 냈다.

얻어냈다기보다는 갑자기 나가라고 아침 보고회의 때 포대장이 지시를 했다.

어리둥절했다.

중간에 외출은 있었지만 처음으로 휴가를 가게 된 것이다.

1년 2개월 만이다.

이게 군대였다.

조회가 끝나고 남중위가 전화가 바로 왔다.


“축하해, 최중위”

“선배님, 고맙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웬일이라죠?”

“휴가 가면 좋지 뭘, 오랜만에 실컷 쉬다 와”


남중위의 말에 의하면 소원수리가 연대에 접수가 되었는데 외출 외박 문제였다고 했다.

전 병사들에게 균등하게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 외출, 외박, 휴가에 불합리한 행정이 있으니 전 부대는 외출, 외박, 휴가자들의 지난 경과와 계획을 보고하라는 지시가 하달된 것이라고 했다.

어쨌든 휴가를 가게 되었고 다른 휴가자들 중 같은 진지에서 박병장이 포함되었다.


“이병장이 박병장 없을 때 선임을 하고 여기에 포대본부에서 차량정비를 맡은 박중사가 대신 근무할 거다”

“언제 오십니까?”

“2박 3일이니까 일요일에 들어오겠지, 나 없는 동안 사고 치면 나 힘들다. 사고 치지 말고, 알았나.”

“예, 잘 다녀오십시오. 격추”


박병장과 같이 산을 내려와 시외버스를 기다린다.

마침 버스가 온다.

버스에 서너 명의 병사들이 보인다.


“야, 너희도 가니?”

“격추! 소대장님 반갑습니다”


웃음꽃이 피었다. 아침에 보고를 받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점심 이후에 나오게 되었고 다른 소대 병사들을 만난 것이다.

시외버스가 청량리에서 정차하자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병사들이 내렸다.


“소대장님, 시원한 맥주 한잔 하시죠, 저희가 쏘겠습니다”


남중위 선배의 3소대에서 분대장을 맡고 있는 방병장이 붙잡는다.

방병장도 지난 교육소대 때 함께 참여했었고 다른 소대였지만 능동적으로 잘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시죠, 소대장님. 딱 한잔만 하시고 가세요”


박병장이 가세한다.

거절하기 어려워졌다.


“그래, 가자”


집이 먼 김상병과 지상병은 먼저 떠났다.

가까운 호프집을 찾는데 저녁 전이라 그런지 연 가게를 찾지 못해 통닭구이집에 들어갔다.


“자, 다들 휴가 잘 보내고 무사히 부대 복귀를 하길 바란다. 위하여!”


나까지 5명이 모였는데 다들 기분이 좋다고 난리다.

500cc 한잔이 두 잔이 되었다. 한잔만 하고 가려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두 잔이 석 잔이 되고, 넉 잔이 되고, 계속 이어졌다.

저녁을 훌쩍 넘긴 시각이라 걱정이 되었다.


“집이 먼 애들은 빨리 가라. 잘못하면 버스 놓친다, 계산은 내가 할 테니까. 서둘러”


방병장을 포함해 셋이 떠났다. 자기들도 돈을 낸다며 주머니를 털고 겨우 차비만 챙겨 갔다.


“박병장도 가야지, 집이 수원이라고 했지”

“네, 지하철 막차 타면 됩니다. 한잔만 더 하겠습니다”


11시 40분이 넘어 막잔을 들고일어났다.

그런데 나와 박병장이 가진 돈을 탈탈 털었는데도 술값이 모자랐다.

병사들이 무슨 돈이 있겠는가? 5명이 마신 맥주값은 내 지갑을 다 털었는데도 부족했다.

천 원짜리 한 장도 남지 않았다. 난 반지를 주인에게 맡기고 3일 후에 오겠다며 외상을 대신했다.

12시가 가까운 시간, 집에 전화를 했다.


“어머니, 접니다. 오늘 휴가를 나왔습니다. 근데 집에 갈 차비가 없어서요”


철부지 아들이 된 느낌이다.


“지금 택시 타고 가면 1시 전에 집에 도착하는데 택시비 좀 가지고 슈퍼 삼거리로 나와 주세요”


점점 가관이다.


“어머니, 같은 일행이 한 명 있어요, 우리 소대 박병장이라고 같이 갈 거예요”


박병장은 수원행 지하철도 끊겼지만 차비도 없었다.

박병장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택시비를 내시는 어머니를 뒤에서 안아 본다.

어머니는 반가워도 내색하지 않으신다.


“소대장님, 어머니께서 화나셨나 봐요”


덩치 큰 정국이 녀석이 잔뜩 주눅 들어 내 뒤를 졸졸 따라오며 귀에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방에서 정국이와 단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콩나물 북엇국이 차려져 있었다.

서둘러 정국이가 집을 나선다.


“소대장님, 혹시 차비 있으시면 꾸어주세요”


맞다. 어제 우린 주머니를 탈탈 털어 술을 마셨었다.

그리고 내 반지는 외상으로 잡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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