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어릴 적 둘째는 몹시 사나웠다.
얼굴이 파래지도록 우는 성질을 가진 사나운 아이였다.
더군다나 잘 다듬어지지 않은 말들로 주변에 있는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친구는 예쁜 보석 같은 거야. 그러니까 친구를 소중하게 아껴야겠지?”
둘째는 이해를 하지 못한 듯 말했다.
“친구가 왜 보석이야? 친구는 사람이잖아. “
한숨이 절로 나왔다.
더 많은 설명을 했는데도 끝내 둘째는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일거다.
5월의 포근한 어느 날 둘째가 오전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 시간이었다.
둘째가 다니는 학교와 바로 옆에 우리 집이 있는 아파트가 나란히 있어 아이들을 부엌 창가에서 볼 수가 있었다.
이제쯤 둘째가 오겠거니 생각하고 밖을 보는데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다.
차가 진입하는 도로 옆으로 세명의 여자 아이들이 내려오는데 한 아이는 가방을 두 개나 들고 있고 다른 아이 하나는 중간에 있는 아이의 드레스를 뒤에서 받치며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마치 중간에 있는 아이는 공주인양 조심스럽게 천천히 발을 내딛으며 내려오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그 중간에 있는 아이가 둘째였다.
친구를 보석처럼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라고 헸는데 둘째는 학교에서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보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일을 어쩐다지? 큰일이야 “
이날 저녁에 와이프와 큰 걱정을 하며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할지 고민을 했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5월에 미국으로 이주를 하게 되었다.
당연히 둘째는 영어를 할 줄 몰랐고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도 몰랐다.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과 다양한 나라의 아이들이 둘째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있었다.
둘째는 ESL을 배정받아 학교를 다녔고 주말엔 한국 교회도 다녔다.
그런데 친구를 사귈 수 없었다.
문제는 언어였다.
가뜩이나 한국말도 은유적인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인데 영어는 어땠을까.
한국 교회에서도 또래 아이들끼리 영어로 대화하고 뛰어노는데 둘째는 언어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시무룩하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학교에서는 말도 통하지 않고 수업을 이해할 수가 없어 이중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하루는 점심시간 후에 학교 놀이터에서 친구들 주위를 맴돌며 철봉에서 놀다가 어찌어찌 다리를 걸치고 매달리게 되었단다.
그런데 아이들이 옆에 있는데도 갑자기 덜컥 내려오는 게 무서워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SOS! SOS!!”
친구들에게 도와달라는 영어표현을 몰라 에스오에스라고 외쳤다고 한다.
마침 지나던 교장선생님이 안아서 내려 주었단다. 둘째는 아이들 틈에서 놀고 싶었지만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 그들 주위를 맴돌기만 했단다.
당연히 소외되고 위축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한국에서의 학교 생활이나 친구 관계와 비교한다면 완전히 다른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친구를 조심히 다루고 자기 자신도 다치는 일이 없기를 바라기도 했다.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좋은 친구를 얻었을까?
친구들과 잘 지내고 사회성은 좋아졌을까?
다행히 좋아지고 있고 많이 성장을 했다고 생각한다.
나라고 친구 관계가 이상적이거나 완벽하지 않은데 뭘 판단하겠나.
적어도 뜨거운 기름에 데거나 차가운 얼음에 다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자기를 보호하고 자비를 베풀며 따듯한 시선과 마음을 품고 때론 차분하고 필요한 경우 냉정한 결단을 내리는 아이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