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잔소리와 사랑 차이

by 창복

무척이나 힘든 시간을 보냈다.

성인이 된 이후 연속으로 벌써 7~8년이나 같이 살았다.

같이 한집에서 사는 동안 와이프와 난 첫째에게 말이 많아졌다.

이건 이래서 이렇고 저건 저래서 그런 거야.

이러쿵저러쿵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첫째를 위해 가르치고 또 가르치는 말폭탄을 쏟아부었다.


“ 아이가 늦되어서 빨리 가르쳐야 해”


첫째에 대한 교육방침은 이랬다.

맘껏 놀아라.

어릴 적엔 동네 아이들하고 같이 놀던 혼자 놀던 마음껏 놀아라.

모래도 만져보고 흙장난도 해보고 동네 뒷산에서 곤충도 잡아보고 아이들이 밖에서 골목대장놀이를 하던 공부는 신경 쓰지 말고 마음껏 놀아야 한다는 게 교육방침이었다.

그리고 초등학교를 입학하고도 여전히 교육방침은 유효했다.

나름대로 이런 교육방침을 정한 데엔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죽을 고비를 두 번이나 넘기고 감기를 달고 살아서 무엇보다 건강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태권도장도 보내보고 검도장도 보내보고 한국무용도 보내보고 웅변학원도 보내봤다.

뭐든 재미나고 잘하는 게 있으면 건강에도 도움이 될까 봐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았다.

아이는 구김살 없이 자랐고 꽤나 건강해 보였다.

성공인가?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아이의 학업성적이 형편없어진 걸 담임 선생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몰아치기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아마도 이때부터 나의 잔소리는 시작되었으리라 짐작한다.

더하기 나누기와 분수와 인수분해까지 아는 데까지 몽땅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그런 와중에 혼도내고 울면 안아주고 또 가르치고를 반복했다.

비약적으로 학업성적은 올라가고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넌 할 수 있어”


(시간이 지나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아이는 볼맨 소리를 했다. 아빠가 4학년 때 나 혼내면서 가르친 거 오늘 학교에서 배웠어. 아빠 너무 한 거 아니야? 욕심이 과했나? 넌 늦되어서 빨리 배우게 한 거야. 배워두니까 좋잖아. ㅎ)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찌어찌하다 보니 아이는 부모 곁에서 대학생활을 빼고 늘 같이 살았다.

대학생활 이후에 같이 산 몇 년 동안 부모의 참견과 잔소리도 켜켜이 쌓여갔다.

첫째가 좋아하는 토요일마다 열리는 마켓에도 함께 가고 눈이 무지막지하게 내리던 크리스마스엔 스노체인을 감아가며 산을 넘어 오두막에 가기도 하고 바닷가 휴양지 마을에 들러 이태리 피자도 먹어보았다.

첫째가 좋아한다니 고생은 되지만 부모라고 그렇게 따라 주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늘 입을 놀리며 찻길 조심해라.

운전 중에는 노래 듣지 말고 차간 거리를 유지해라 다른 거 시키지 왜 그걸 시키니.

옷을 입어도 편하게 입어라 등등 수많은 잔소리가 폭포수처럼 아이를 적시고 짓눌렀다.


“미안해. 첫째야. 내가 아는 걸 너도 알았으면 해서. 그러면 좀 더 안전하고 세상을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러는 거야”


이제 잔소리는 멀어졌다.

아이는 다른 지역으로 공부를 위해 떠났기 때문에 충고나 잔소리할 시간이 무지 줄었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은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난 잔소리를 한다.

이러다 꼰대짓이라도 할까 봐 겁이 난다.

이젠 조용해야지. 이젠.


첫째가 엄마하고 함께 길을 나섰다.

살 집과 차를 구하기 위해 학교 일정보다 2주 먼저 떠났다.

도착 다음날 우버를 불러 1시간이나 달려가 중고차를 구입했다.

겨울이 긴 지역이라 사륜구동 SUV를 구입했다.

엄마하고 함께 다니고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아 보인다.

둘은 짝짜꿍이 잘 맞는 친구 같은 사이다.

먹성도 비슷해서 여름날 밥통째로 고추장을 듬뿍 넣어 열무 비빔밥도 나눠먹는 동지 이상의 모녀다.

그래 이젠 아빠의 잔소리에서 해방이구나.

이젠 그만할 때도 되어 간다. 이젠 되었다.


“여보!!! 사고야. 지금 차사고가 났어. 여긴 고속도로인데 우리 차 앞바퀴 타이어가 분리되었어. 중앙 분리대를 박고 다른 차하고도 추돌이 났어. 막 애가 울고 난리야. 자기들은 앰뷸런스를 부른데. 너무 놀랬데. 우리 어떻게 ”


와이프의 다급한 전화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방금 전까지 고속도로를 가고 있다는 영상통화를 했는데 채 2분도 되지 않을 시간에 사고가 났다.


“당신은 어때? 큰 애는? 어디 다친 덴 없어?”


큰 사고라는 생각에 마음을 졸이며 물어봤다.


“난 괜찮아. 큰애는 지금 막 팔을 떨고 있어”

“알았어. 일단 진정하고”


그러는 사이 큰애를 바꿔준다.

아이가 울고 있다.


“아빠. 내가 잘못한 게 아니고 갑자기 차가 막 흔들리고 핸들이 제어가 안되었어. 바퀴가 분리가 되었어. 브레이크도 잘 되지 않았어”


큰 아이는 말을 하면서도 충격이 심했는지 계속 울고 있다.


“울지 마라. 침착해. 엄마는 어떠니? 넌 어디 다치거나 아픈 데는 없어? 그래 니 잘못 아니야. 일단 위험하니까 갓길로 빠져 있고 찻길로부터 되도록 멀리 떨어져 있어. 경찰차를 불렀다고 하니 조금 기다리고 보험회사에서 알아서 할 거야. 넌 절대로 다른 사고차량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 하지 마. 누가 심하게 다친 건 아니니까 안심해. 경찰이 오면 차분히 설명하고 보험회사에 사고 접수하고 우리 차는 움직이지 못하니까 견인차를 부르고 경찰이 하라는 대로 하고. 몸이 불편하면 병원에 가야 하니까. 너하고 엄마하고 세밀하게 몸 상태를 점검하고 이상이 있으면 무조건 병원으로 가고. 울지 마라. 큰일이 아니야. 알았지? 울지 마라.”


너무 놀라 맥이 빠진다.

그래도 빨리 수습을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몸과 정신이다.

중심을 잡아야 한다.

아직은 아빠가 필요한 나이다.


“여보, 큰 애가 사고가 나자마자 운전대를 잡고는

아빠~~ 하면서 우는 거야. 그런데 그 모습 보면서 나도 울 뻔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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