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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복 Aug 31. 2024

잣나무

군대 이야기 17


또 지랄이다.

봄이 오니 또 춘계 공사 및 녹화 작업을 하라고 지시를 한다.

작년에 귀신 장난으로 전 진지 병력이 고생을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또 똑같은 짓을 하라는 건가?

이번에는 작은 성의를 보이고 있다.

시멘트 2포대와 모래 그리고 벽돌 꾸러미 정도의 지원이 있다고 한다.

그래도 그렇지 다른 작업들은 어쩌란 건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전달해라, 다 포상에 집합하라고”


박병장이 비상벨을 눌렀다.


“정국아, 왜 비상벨을 눌러?”

“헤헤, 인터폰을 하나 똑같습니다”


말년 병장이라고 요령이 장난이 아니다.

막 뛰쳐나오는 병사들에게 일일이 소총은 두고 나오라고 야단이다.

요령 피우다 몸이 바빠졌다.


“다 모였지? 다름이 아니라. 이번해에도 진지 보수 공사하고 녹화 작업을 해야 한다”


여기저기서 삐죽 거린다.


“어쨌든 해야 하니까 본부에서 지원 나오는 거 100% 활용하고 공사 인원하고 작업 인원하고 조를 짜봐”


진지 공사는 소규모로 하기로 했다.

포상까지 오르는 주저앉은 계단하고 수돗가의 깨진 시멘트 바닥을 다시 하기로 했다.

정국이는 나머지 인원과 진지 녹화 공사를 맡기로 했다.

아랫마을에 내려가 리어카 한 대도 빌려왔다.


지원도 없는 녹화 작업은 가당치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령을 받는 군인이니 해야만 한다.

이런 게 대한민국의 군대 현실이다.

그러나 착한 군인들은 지시를 따른다.


보수공사를 먼저 시작했다.

병사들은 열심히 한다.

정국이는 마을에서 빌려온 리어카를 끌고 종수와 우만이와 함께 산으로 갔다.  

진지 녹화라는 게 뻔하다.

산에 있는 나무를 진지 내에 옮겨 심는 것이다.


정국이는 리어카를 세 번이나 끌고 나무를 옮겨 심었다.

사람 키보다 약간 큰 잣나무로 건강하게 파릇파릇한 보기도 좋은 나무들이다.


“소대장님, 이거 고르느라 엄청 돌아다녔습니다”

“좋기는 한데 너무 애쓰진 마라”


모든 공사가 마무리되고 그날 회식을 했다.

소주 몇 병과 과자 몇 봉은 내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소대장이 소대원들에게 수고의 의미로 작은 지원을 했다.


회식이 있고 며칠 후 종수가 날 부른다.


“소대장님 누가 찾아왔습니다”

“누군데?”

“이 산의 산지기라는데요”


“무슨 일이십니까?”

“저기…. 제가 여기 산을 관리하고 있는데,,, 나무가 몇 그루 없어졌는데,,,, 여기로 자국이 나 있길래,,,,”

“………..”

“나무를 원래 자리로 옮겨 놓으셔야,,,, 산 주인이 예전에 국토부 장관하셨던 분인데,,,, 그래야 합니다”

“………..”

“산 주인이 3일 후에 오신다고 해서요,,, 제가 나무가 몇 그루 없어졌다고,,, 얘기해서요”

“…… 언제 오신다고요?”


산지기하시는 분을 보내고 정국이를 불러 어디서 나무를 가져왔냐고 물었다.

나무를 뽑아 온 장소로 같이 가 보았다.

제길, 나무들이 가지런히 심어져 있는 곳인데 중간중간이 뽑힌 나무로 비어 보였다.

아무리 보아도 계획적으로 나무를 심어 놓은 장소로 보였다.


“정국아 애들 몇 명 하고 다시 나무를 옮겨 놓자”


나무를 다시 원상태로 옮겨 심고 꼼꼼히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 3일 후에 산지기와 함께 산주인을 기다렸다.

산주인이 검은색 고급 세단에서 내린다.


“죄송합니다, 산에 주인이 있는 줄을 모르고…”

“여기 책임자입니까?”

“네, 요기 위쪽에 작은 부대가 있는데 거기 소대장입니다”

“몇 기죠? 반지를 보니 학0이군요.. 우리 아들이 학0 21기입니다만”

“아, 네. 전 26기입니다”

“뭐, 군대가 그런 거죠. 신경 쓰지 말아요. 나무 몇 그루 가지고, 괜한 고생을 했구먼”

“… 정말 죄송합니다. “

“아니래도, 자 우리 악수나 합시다. 건강하시고”


산주인은 나와 악수를 하곤 바로 차를 타고 산을 내려갔다.

제대가 코앞인데 십년감수를 한 기분이 들었다.

이놈의 진지 녹화는 지긋지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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