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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복 Sep 01. 2024

달콤한 인생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말해봐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주인공이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와 보스에게 물었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주인공의 ‘찰나’의 흔들림조차 용서할 수 없었던 보스가 말한다.


왜 그랬을까?


그런데 영화는 영화다.

실제로 이런 일이 부모와 자식 간의 상황이라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본다.


“말해봐라. 너 왜 나한테 그랬니?”

제멋대로 인 아들놈에게 엄마가 물었다.


“엄마는 날 너무 귀찮게 하니까!”

별 거지 같은 앞뒤가 맞지도 않는 말을 망나니 놈이 내뱉는다.




어느 작은 마을에 결혼한 부부가 살고 있다.

부부에게는 고민이 있었다.

결혼한 지 3년이 지나도록 자식이 없었다.


“소원이오니, 아들이고 딸이고 자식 하나만 낳게 해 주세요”


소원을 하늘에 있는 신에게 빌었다.

신은 아무 말 없이 응답했다.

부부는 예쁜 딸을 낳았다.

그리고 2년이 지나 또 다른 소원을 빌었다.


“소원이오니, 그저 아들 하나만 낳게 해 주세요”


신은 또 아무 말 없이 소원을 들어주었다.

아들을 낳았다.

살림살이가 빠듯했지만 부부는 기뻤다.

그런데 아들은 2년이 지나도록 걷지를 못했다.


“소원이오니, 우리 아들 걷게만 해 주세요”


신은 고민도 없이 또 응답했다.

아들은 그날부터 걷고 뛰어다녔다.

부부는 아들 약값으로 지출이 컸지만 날듯이 기뻤다.

그리고 또 소원이 생겼다.


“소원이오니, 우리 아들 남들처럼만 공부하게 해 주세요”


신은 이번에도 군말 없이 소원을 들어주었다.

아들은 중간정도 성적까지 올라갔다.

부부는 교육비 지출이 과도했지만 아들 성적이 올라 만족했다.

아들이 대학에 갈 때쯤 또 소원을 빌었다.


“우리 아들, 바라는 대학교에 들어가게만 해주세요”


신은 100프로 소원을 들어주었다.

대학비를 내느라 적금을 깨고 작은 집으로 옮겼지만 부부는 아들을 대견스러워했다.

직장에 취업만 시켜달라고 했을 때에도 신은 소원을 들어주었다.

부부는 노쇠했지만 아들의 취업은 부부의 자랑이 되었다.

아들이 교통사고로 위급할 때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소원했을 때에도 신은 아들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부부는 계속 아들의 소원을 아들대신 신께 빌었다.

부부는 더 늙어 자기를 돌보지 못할 때조차 신께 소원을 빌었다.

부부는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도 신께 소원을 빌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보자.


“부부는 평생 ‘달콤한 인생’을 살았던 걸까?”


그런데 정작 아들은 신께 부모에 대한 소원을 몇 번이나 빌었을까?

빌기나 했을까?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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