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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복 Sep 02. 2024

살아 있다.

찰나와 영원에 대하여


데이비드 호크니가 그린 대표작으로 유명한 그림 중 하나가 있다.

“Bigger Splash”


예전에 이 그림을 보았을 때 ‘허어, 이럴 수도 있구나’ 하는 작은 감탄을 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옆 중학교 미술 선생님의 그림을 보는 기회가 있었다.

넓은 들판 가득히 자라고 있는 보리밭의 보리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그림이었다.

작은 디테일로부터 큰 바람의 물결을 표현한 그림으로 인상적이다란 생각이 들었었다.


화가는 시간 혹은 순간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더군다나 호크니는 그림 속에 수영장 물이 막 튀는 순간을 그려 사람이 ‘살아 있다’는 표현을 시도한 것 같다.

새로운 시도와 표현이고 철학적 의미로도 미술가들에겐 큰 호응을 얻은 것 같다.


난 소심한 A형 인간이고 물건과 사물이 직각과 직선으로 반듯하게 놓여 있는 걸 선호한다.

청소를 하고 물건을 제자리에 두고 깨끗하게 청소를 해야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잘 놓인 테이블과 딱 직각과 대칭으로 맞춰진 책들과 신발들, 모든 게 그래야만 했었다.


그런데 이런 강박이 깨진 건 결혼을 하고 가족과 잠시 떨어져 있었던 때였다.

2달이 넘는 출장 중에 아이들과 와이프가 출장지로 방문을 했다.

2주 정도 가족과 함께 보내면서 잠시나마 시끄럽고 어지럽혀진 생활을 했다.

그리고 아이들과 와이프를 공항에 바래다주고 아파트에 홀로 왔을 때였다.

화장실 문에 하얀 종이가 붙어있고 그 종이 위에 적힌 글씨를 보았다.

7살 작은 아이가 파란 색연필로 써놓고 간 글씨였고 난 그걸 보고 왈칵했다.


“아빠, 반짝반짝 청소해”


아이는 평소 청소를 무척이나 하는 아빠가 자신들이 떠난 흐트러진 방과 거실을 청소하리라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난 흐트러지고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을 보며 지난 가족들과의 ‘시간’의 아쉬움에 감정이 북받쳤었다.

난 한동안 지난 그대로 물건들을 놔두고 청소하지 않았다.

나의 강박은 그리움 앞에 무참히 깨졌었다.

지난 자리는 흔적을 남기고 그 모습은 추억이 되나 보다.

무엇보다도 그 시간이 우리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요즘 난 일부러라도 흐트러진 물건을 치우지 않는다.

말하거나 보거나 같이 식탁에서 먹는 행위를 좋아한다.

마트에 가서 카트를 밀며 뭘 먹을까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살아 있다’는 건 순간 속에서 함께하는 행동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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