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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복 Sep 08. 2024

술에 취하다.

단편 소설 2


오늘도 술이 익는 냄새가 솔솔 풍긴다.

향긋하면서도 새콤한 향이 온 동네를 휘감고 있다.

우리 앞집은 양조장을 한다.

대형 수조가 있고 막걸리가 만들어지는 날엔 동네방네로 하얀 술통을 자전거로 나르느라 바쁘다.

양조장은 골목 삼거리에 있고 동네 아이들은 골목이 아닌 삼거리에 모여 놀이를 했다.


“이번엔 오징어 게임을 하자”


한 아이가 술래잡기에 지친 듯 다른 놀이를 제안한다.

술래잡기는 보통 달리기가 빨라야 하니 한 살이라도 어린아이들은 술래를 도맡아 하기 일쑤였다.


“그래, 누가 그림 그릴래?”

“가위 바위 보로 편을 가를까?”

“아냐, 손바닥으로 하는 대댄찌로 하자”

“근데 한 명이 남는데?”

“그럼, 나이가 가장 어린 순영이를 깍두기로 하자”


일사천리로 편을 가르고 오징어 그림이 그려졌다.

순영이는 막걸릿집 딸이고 3살이 어린 같은 국민학교에 다니는 3학년이다.

동네 아이 중에서 3학년은 둘이 있는데 순영이는 몸도 작고 키도 작아 더 어려 보였다.

사내아이들이 섞여 놀 때는 거칠고 힘으로 밀어붙여 순영이는 항상 약한 고리였다.

그래서 놀이가 있을 때면 의례적으로 깍두기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난 순영이를 어떤 놀이든 끼게 했고 같이 놀았다.

그래서였을까, 순영이는 늘 내가 나타나면 내 옆을 맴돌며 같이 놀기를 소원했다.


오징어 게임을 할 때는 순영이를 내편으로 만들었다.


“순영이는 약하니까, 깽깽이 발 없는 걸로 하는 거야. 알았지?”

“그래”


순영이는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였다.

힘이 약해서 조금이라도 밀치면 넘어지기 일쑤라 같이 게임을 하지만 소속감만 즐길 뿐이다.

그래도 까르륵거리면서 즐거워한다.


기태와 가위 바위 보를 했는데 내가 졌다.

수비를 먼저 해야 한다.

순영이를 제일 안쪽에 세워두고 누구라도 오면 막으라고 일러준다.

하지만 순영이에게 기대하는 건 아니다.

단지 게임을 하는데 우리 편이라는 힘을 주기 위해서다.


기태네 편을 모두 물리치고 우리 편이 공격을 하기로 한다.

순영이에게는 맨 마지막에 안쪽의 세모를 밟으라고 가르쳐 준다.

우리 편은 순영이까지 세 명이 남고 기태네는 두 명이 남았다.


“공격!!!!”


힘차게 공격을 외치며 난 기태를 붙잡는다.

또 다른 아이가 상대팀 한 명과 씨름을 한다.

밀려나지 않으려 기를 쓰고 순영이를 부른다.


“순영아, 지금이야. 들어가!”


순영이는 네놈들이 씨름을 하는 동안 요리조리 피해서 가장 안쪽의 삼각형을 밟는다.


“와!,, 성공이야,,, 와,,,”


우리 팀은 기뻐 날뛰고 순영이는 자기가 이겼다고 함박웃음이다.

게임을 또 하려는데 여기저기서 애들 이름을 부른다.


“기태야, 저녁 먹어라!”

“응찬아!”

“형기야!”


하나 둘 엄마들이 부르는 소리에 내일 놀자며 들어간다.

어느새 순영이와 나 그리고 한 아이가 남았다.


“오빠, 우리 집에 갈래?”


순영이가 나에게 양조장으로 가자고 한다.

난 집에서 부르지 않을 테니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 순영이를 따라간다.

집 대문이 아닌 양조장으로 들어간 순영이가 양조장을 구경시켜 준다.

목욕탕의 욕조 크기의 공간은 거의 비어져 있다.

그러고 보니 어제와 오늘 사이 막걸리를 배달하느라 순영이 아버지와 일꾼들이 자주 들락날락했다.


“오빠, 이거 먹어봐”


순영이가 술지게미를 가져왔다.


“이게 뭐야?”

“이거, 술 담고 남은 찌꺼기인데 우리 집에서 많이 먹는 거야”


꼭 밥을 으깬 것처럼 보이는데 냄새가 향긋하다.

난 어릴 적 주전자를 들고 막걸리 심부름을 한 적이 있다.

막걸리를 받아 철다리를 건너면서 주전자 뚜껑에 막걸리를 살짝 부어서 맛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마신 막걸리는 시큼 텁텁하고 알코올 향이 강했다.

그런데 술지게미는 술냄새가 나긴 하지만 좀 더 향긋한 냄새가 강하고 맛도 있다.

순영이가 자기 집에 이런 거 많다며 먹는 대로 또 가져온다.

얼마를 먹었을까?

약간 어지럼증이 났다. 그런데도 술지게미는 맛이 있었다.

순영이는 자기는 먹지도 않으면서 계속 나한테 먹으라고 한다.

자기는 빨리 6학년이 되고 싶다는 얘기와 학교에서는 몸에서 술냄새가 난다고 놀림을 받는다는 얘기와 오늘 놀이에서 이겨서 너무 기쁘다는 얘기를 한다.

그러는 동안에도 난 배부르게 지게미를 먹었다.


“이제 가야겠다, 저녁이 한참 지났어”

“오빠, 내일 또 놀자”

“그래 그래”

“오빠, 안녕!”


양조장을 나와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기분이 좋다.

배도 부르고 따뜻한데 발걸음은 가볍고 기분은 너무 좋다.

겨우 몇 미터인 골목길을 걸어오는데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저절로 콧노래가 흥얼거려진다.


“홍도 오 ~오야, 우지 마아~라, 오빠아가 이있따..”

“엄마, 낙준이 이상해, 취했나 봐”


밤하늘은 별도 많고 은은한 달빛으로 영롱하다.

수많은 별들 중에 나의 별을 찾아본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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