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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복 Sep 08. 2024

이 별

단편 소설 3


“범석아 이사 가니?”

“응, 이사가”


아침 일찍부터 범석이 집은 이삿짐을 나르느라 바쁘다.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마음이 급해지고 답답하다.

내가 전에 봤던 책장과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다.


“어디로 가는데, 멀리 가?”

“아버지 학교 근처로 가는 거야. 같은 동이래”

“학교는? 전학 가는 거야?”

“아냐, 국민학교는 졸업해야지”


전학을 가지 않는다는 말에 안심은 되었지만 마음은 서운했다.

나는 친구집 이사를 돕기로 하고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신발을 벗을까 하는데 이삿짐 아저씨가 그냥 들어오라고 한다.

책 몇 권을 들고 신발을 옮기고 무겁지 않은 걸 위주로 짐들을 옮겼다.

일을 하니 친구의 이사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짐을 모두 옮기고 집안을 청소하며 범석이 엄마께서는 마무리를 하신다.


“낙준아 간다. 내일 학교에서 보자”

“그래, 잘 가고. 내일 보자”


범석이는 이사 가는 집이 가깝다며 동생하고 같이 뜀박질을 하며 떠났다.

또다시 서운한 감정이 밀려든다.


학교에서 만난 범석이는 예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같은 행동, 같은 웃음과 같은 얼굴 표정이었다.

하지만 난 조금 멀어진 기분이 들었다.

매일 학교에 같이 가던 친구가 매일 다니던 골목길에 보이지 않아 흥이 나지 않았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다가왔다.

미술 시간에 크리스마스 성탄카드를 만드는 주제가 걸렸다.

깨끗한 하얀색 도화지를 뜯어 가위로 링에서 떨어진 부위를 잘라내고

두 번을 접었다 펴서 자국난 선을 따라 가위로 자른다.

도화지 한 장으로 카드 네 장을 만들 계획이다.

하나는 범석이 거, 하나는 담임 선생님 거, 다른 하나는 부모님 거를 하기로 한다.

눈사람을 그리고 손에는 초록색 장갑을 그리고 머리에는 흰색 방울이 달린 빨간색 모자를 그린다.

눈사람 위로는 축 성탄이라는 글씨를 삼각형 모양으로 써넣는다.


‘축 성탄, 범석아. 겨울 방학 잘 보내’


겨울 방학 내내 노느라 바빴다.

겨울 방학 숙제는 다 마치지 못했다.

다섯 권의 책을 읽고 다섯 개의 독후감을 내라는 국어 숙제가 가장 어려웠다.

난 ‘보물섬’이라는 삽화가 있는 책의 내용을 거의 옮기다시피 해서 겨우 한 개 만을 썼다.

겨울 날씨지만 동네 골목은 여전히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요란하다.

딱지치기를 하고 구술놀이를 하고 비석 치기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논다.

차가운 땅바닥에서 노느라 손등이 얼어서 터지고 고름이 잡혀도 또 다음날에도 동네 아이들과 노느라 바쁘다.

그러나 옆집에 살던 범석이를 매일 보지 못하는 아쉬움은 마음 한켠에 남아 있다.

어느 날은 규완이가 자전거를 타고 범석이네에 놀러 가자고 해서 같이 갔다가 돌아온 적도 있다.

범석이는 없었고 집은 비어 있었다.

그러던 중 편지 한 통이 날라 왔다.

학교에서 왔는데 중학교 배정이 ‘ㅅ’ 중학교로 되었다는 안내서였다.

집에서부터는 버스를 타고 서울 시내로 달려서 1시간은 가야 하는 곳이다.

왜 그렇게 멀리 학교가 배정되었을까?

나만 멀리 배정되었나?

다른 친구들도 같이 가겠지?

친구 범석이는 어디가 되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우리 집엔 전화기가 없어서 전화로 연락할 수가 없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동네 친구들과 썰매를 타러 간다.

겨울 방학이 며칠 남지 않아 숙제를 하려고 애를 쓴다.


책도 없이 방학 숙제만을 챙겨서 학교로 간다.

정식 수업은 없고 마지막 학교 모임이다.


“범석아, 안녕?  너 중학교 어디야?”

“응 난 ‘ㄷ’ 중학교”


순간 귀를 의심했다. 장난을 치는 친구가 아니라 더욱 혼란스러웠다.


“나도, 거기야”

“나도 거긴데?”


남자 녀석들이 여기저기서 같은 중학교라고 떠든다.


“송진수는 ‘ㅊ’ 중학교라던데”

“진수야, 넌 왜 ‘ㅊ’ 중학교냐?”

“어, 난 ‘ㅊ’ 중학교야”

“제네집 지난번에 이사했잖아. 여기 학교 앞에 살다가 ‘ㅇ’ 동으로 갔어”

“제 수양이네는 ‘ㅁ’동 아파트로 가서 한강 이남으로 학교 간데”

“그런데 같은 동에 살면서 유일하게 낙준이만 ‘ㅅ’ 중학교야?”

“거기 동네가 약간 윗동네에 포함되어 들어가서 그런 것 같아”


범석이와 난 헤어질 운명이었다.

범석이가 이사를 한 이후부터 우린 헤어질 운명이 되었다.


중학교 겨울 교복을 맞추고 책으로 가득한 큰 가방을 들고 시내버스를 탄다.

범석이는 반대 방향에 학교가 있다.

그리고 범석이네 집은 버스 정거장으로는 두 정거장이나 차이가 나니 만날 수 있는 공간도 겹치지 않는다.

‘ㅅ’ 중학교는 넓은 지역에서 온 아이들로 구성되었지만 나와 같은 국민학교 출신은 몇 명 없었다.

중학교 1학년을 친한 친구도 없이 그렇게 보냈다.

상냥하고 예쁜 담임 선생님은 그래도 학교를 출석하는 힘이 되었다.

그러나 막 정을 붙이려던 담임 선생님마저 학기 초에 남편을 따라 사우디로 이민을 가셨다.

난 일요일만 기다리고 방학만 기다렸다.

친구가 없는 중학교 1학년은 외로움과 쓸쓸함에 지배당했다.


“난 왜 혼자인 거지?”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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