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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복 Sep 08. 2024

친 구

단편소설 1


“범석아 놀~자”


일요일 점심을 먹은 나는 내 키보다 높은 담장에 대고 친구를 부른다.

어제와 같이 신나게 뛰어다니며 동네방네 돌아다닐 생각에 한껏 기대를 하고 있다.

담장 너머 열리지 않는 현관문을 보고 서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

친구가 답이 없고 또 한 번 힘껏 부른다.


“범석아, 노~올~자”


그때 반갑게 담장 너머로 현관문이 열리는 게 보인다.

친구와 놀 생각에 순간 행복회로가 급격히 돌기 시작하며 기쁜 마음이 넘친다.


“낙준이니?, 우리 범석이가 공부 중인데 너도 들어와라”


순간 당황했다. 범석이 엄마께서 나오시며 나를 부른다. 범석이는 보이지 않는다.


“내일모레가 시험이라면서… 범석이가 2층에서 문제집을 풀고 있으니까 너도 같이 하렴”


검정색으로 칠해진 철로 된 대문이 열리고 범석이 엄마를 따라 계단을 올라 현관으로 향한다.

난생처음 와보는 친구집이다.

나무 마루를 지나 나무 계단을 거쳐 2층으로 오른다.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하다.

신축으로 지어진 집이고 커다란 자명종 시계에 한자가 쓰인 족자와 큰 티브이가 보인다.

속으로 부러운 마음이 가득하다.

범석이는 서재에서 문제집을 풀며 나를 반긴다.

서재엔 나무로 만든 천정높이만큼 커다란 책장이 있다.

고급스러운 양장으로 된 두터운 전집들이 가득 채워져 있고

책장에 들어가지 못한 책 묶음들이  방안의 3분의 2를 메우고 있다.


범석이 엄마는 문제지를 나에게도 준다.

같이 공부하라고 하시며 방을 나가신다.

열심히 국어 문제를 풀고 있는 범석이는 나를 힐끔 보더니 찡긋거린다.

나도 문제지를 본다.

난 숙제도 겨우 해가는 아이다.

친구집에 난생처음 와봤지만 문제지도 처음 본다.

모르는 것 투성이다. 아니 전부 모르는 문제들이다.

모른다고 하면 창피할 것 같아 열심히 보는 척을 한다.

그래도 전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시키는 대로 국어책을 읽은 게 책을 읽은 전부였다.


“이거 마시면서 해라”


방문이 열리면서 범석이 엄마께서 주스 두 잔을 가지고 오셨다.


“우리 낙준이는 공부 잘하니?”


굉장히 듣고 싶지 않은 질문을 하신다.

난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못하고 있다.

주스잔을 만지작거리며 홀짝 마신다. 너무 맛있다.


“낙준이 공부 잘해요”


친구 범석이가 거짓말을 한다.

범석이 엄마께서는 내 대답을 기다린 게 아니라는 듯 주스를 놓자마자 나가신다.


“야, 이거 다 풀면 나가서 놀 수 있어?”

“이거 다음에 산수문제 풀어야 돼”


아악! 산수문제라는 말에 난 속으로 경악했다.

진짜 산수는 모른다.

초등학교 6학년인 난 더하기 빼기와 구구단을 아는, 아니 정확하게는 7단과 8단이 헷갈리는 정도의 실력이다.

산수 숙제를 해가지 않아 선생님한테 매번 혼나는데 몰라서 못하는 것이 99% 이유였다.

문제지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시간은 간다.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이 되고 난 집에 가보겠다며 서둘러 빠져나온다.

와, 공부의 끔찍한 올가미로부터 해방되는 기분이 든다.

너무 지루하고 당황스러운 일요일 오후를 보냈다.

함부로 친구를 부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들어간다.

우리 집은 범석이네 옆집이다.


우리 집은 세를 살고 있다.

주인 세대를 포함해 세 가구가 ‘ㄴ’ 자 구조의 주택에서 모여 산다.

솜틀집이 주인집이고 다른 집에도 같은 또래의 남자아이가 있는데 피부 알레르기가 심하다.

팔뚝과 온몸에 손톱으로 긁어 생긴 상처들이 너무 많아 무슨 큰 병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당에는 우물과 수동식 물 펌프가 있고 빨래도 할 수 있도록 1평 정도로 시멘트로 발라져 있다.

반대편에 화장실이 뚝 떨어져 있고 그 옆으로 감나무와 주인집에서 가꾸는 화단이 있는 마당이 넓은 집이다.


월요일 아침에 다시 만난 범석이는 사람이 달라 보인다.

내가 풀지도 못하는 문제들을 술술 푸는 공부 잘하고 똑똑한 우등생처럼 보인다.

난 괜한 마음의 거리감이 생긴다.

같이 놀자는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학교 종이 수업의 끝을 알리고 잠시 해방감이 온다.


“와! 놀자!”


친구들은 내일이 시험이라며 내일 놀자고 한다.

범석이도 학교 운동장에 남지 않고 바로 집으로 간다.

난 운동장에 덩그러니 혼자가 된다.

철봉에 올라보고 모래 위에서 멀리 뛰기도 하며 논다.

모래로 두꺼비집도 만들어 보고 시소를 혼자 타 본다.

반대편 서쪽 운동장 모서리에서 짬뽕을 하며 노는 아이들은 모르는 아이들이다.

다시 철봉에 매달려보고 몸을 앞뒤로 움직여 본다.

의외로 재미있다.

한참을 철봉에 매달려 놀다 보니 손바닥이 아프다.

손바닥을 차가운 모레 속으로 집어넣고 쓰라린 아픔을 식혀 본다.

손바닥이 까졌다.

모래밭 한쪽 구석에 덩그러니 내팽개친 가방을 메고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들어온 난 우물가에서 간단하게 손을 씻고 티브이를 보려고 큰방으로 간다.

그런데 형과 누나들이 티브이를 차지했다.

엄마는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시고 있다.


“나 만화보고 싶어, 11번으로 채널 바꾸자”


허공에 떠드는 메아리일 뿐이다.

형과 누나들은 티브이를 보면서 들을 채를 하지 않는다.


“나, 만화보고 싶다고!”


그들은 내가 말하는 말을 무시한다.

자기들끼리 낄낄거리고 웃으며 티브이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난 화가 나서 방을 뛰쳐나왔다.


‘그래, 내가 없어지면 니들이 얼마나 슬프겠어’

‘내가 밥도 안 먹고 그러면 날 얼마나 찾을까’

속으로 형제들이 애타게 찾을 생각에 숨어 있기로 한다.

화장실 옆에 세워둔 리어카 뒤에 숨어서 큰방 쪽을 엿본다.

어느새 해가 기울고 어둑해지고 있다.

방에 불이 켜지고 밥 먹을 시간이 되어 간다.

한참이 지났는데 날 찾는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

캄캄한 달밤이 되었는데도 형제들은 조용하다.


‘왜 아무도 날 찾지 않는 거야? 왜 엄마조차도’

6남매 중 막내인 난 우리 가족들에게 소중한 사람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이때 생겼다.

리어카 뒤에 숨어있던 내가 한심해 보였다.

리어카 뒤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천천히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 밖으로 나간다.

밖을 나와 범석이 집을 바라본다.

큰 창가로 환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따뜻한 빛처럼 느껴졌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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