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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복 Sep 24. 2024

씨앗

디스토피아



씨앗은 세상에 널려 있다.

한 소녀는 작은 씨앗이 움트고 자라는 게 신기했다.


어느 씨앗은 잡풀이 되거나

어느 씨앗은 물이 없어 말라비틀어지거나

어느 씨앗은 굳은 땅에 떨어져 동물의 먹이가 되지만

소녀는 땅에 심기운 씨앗이 자라나는 걸 보는 게 너무 좋았다.


소녀는 작은 씨앗부터 큰 씨앗까지 재미있게 모았다.

어느새 소녀의 튼튼한 창고는 세상의 씨앗들로 가득 찼다.

소녀는 각각의 씨앗에 이름을 붙여두었다.

소녀는 각 씨앗이 심기우는 시기와 자라는 시기와 수확의 시기를 적어 두었다.

소녀는 행복했고 세상 어떤 보물보다 더 좋았다.


사람들은 소녀를 비웃었다.

세상에 씨앗은 넘쳐났고 그 씨앗들로 곡식 또한 넘쳐났다.

넘쳐나는 곡식과 더불어 과일과 야채도 세상엔 넘쳐났다.

사람들은 곡식과 과일 및 야채에 관심이 있을 뿐 보잘것없어 보이는 씨앗에는 관심이 없었다.

넘쳐나는 세상 속에 사람들은 무심하게 왁자지껄했다.


3년간의 이상고온이 오고 3년간의 이상저온이 왔다.

3년간의 이상고온으로 인한 가뭄으로 농작물은 말라비틀어졌고 밭에 뿌린 씨앗마다 말라죽었다.

3년간의 이상저온으로 인한 혹독한 겨울로 사람들은 비축했던 식량을 모두 사용했고 씨앗은 남아나지 않았다.

6년이 지나 봄이 왔지만 새롭게 심을 씨앗이 세상엔 남아 있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은 걱정과 탄식을 뱉어낸다.


“안녕하세요, 저는 마을 이장입니다. 씨앗 하나만 줄 수 있나요?”

“저는 군수입니다. 씨앗 하나만 줄 수 있나요?”

“저는 국회의원입니다. 씨앗 하나만 줄 수 있나요?”

“저는 대통령입니다. 씨앗 하나만 줄 수 있나요?


사람들은 오직 한알의 씨앗을 얻으려고 자기의 신분을 내세운다.

세상이 넘쳐 날 때엔 무시하고 거들떠보지도 않던 작은 씨앗을 구걸한다.

작고 보잘것없었다던 씨앗을 얻으려고 사람들은 끝도 없는 줄을 서고 있다.

사람들은 세상이 떠나가도록 아우성을 치고 있다.

앞으로 닥칠 굶주림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왁자지껄하다.


“누가 작은 씨앗이라도 한 알만 줄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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