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스위스 여행
“하이! 로저. 좋은 아침이야”
로저는 나를 보지 못한 듯 무심히 걸어가고 있다.
로저의 행동이 이상해진 건 말바와 로저가 스위스 여행을 다녀온 후부터다.
건너편 집 할머니 말바(Malba)는 남편 로저(Roger)를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나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다고 한다. 세월은 무심하게 흘렀지만 둘의 금술은 한결같았다. 두 아들과 딸 하나를 슬하에 두고 있는데 목사인 큰 아들이 자주 방문하곤 한다.
“하이! 진! 오늘 저녁에 우리 집 앞마당으로 와. 포도주 한잔 해야지.”
말바 할머니가 와이프를 또 불러내고 있다.
“오케이, 이따 갈게”
와이프는 술이 약하다. 처음 말바가 초대했을 땐 혼자 포도주 반 병을 맛있다고 들이키곤 집에 들어와 바로 침대로 직행했었다. 또한 말바의 얘기는 로저하고 있었던 아주 옛날 얘기들이라 와이프는 들어 주기 바빠했다. 그래서인지 와이프는 말바의 초대를 마냥 기쁘게 여기진 않는다.
“로저는 고등학생일 때 너무 핸섬했어 그리고 매너가 얼마나 좋았다고. 나 역시 퀸 오브 퀸이었지만 호호호호”
어느 날 말바는 로저와 스위스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며 들뜬 표정과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자랑을 했다.
“로저가 전동 휠체어를 타지 않을 수술을 받을 거야”
그랬다. 로저는 늘 전동 휠체어를 타고 외출을 했다. 외출이래야 편지함 확인하는 일이나 집에서 10미터 거리에 있는 호숫길을 다니는 게 전부였다. 로저는 나이가 들며 다리 힘이 없어져 걸을 수 없는 상태였다.
“로저가 걷는다니. 말바는 행복하겠다 그치?”
말바가 여행을 떠난 지 꽤나 오래되었다. 초 겨울에 집을 떠났고 이제 초봄이니 벌써 3개월이 지났다. 그리고 어젯밤 말바네 집에 불빛이 창문으로 새어 나오는 걸 보았다. 말바가 왔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잠이 들었었다.
“하이 말바! 반가워. 여행이 너무 길었구나”
말바를 알아보고 와이프가 현관문을 열며 소리쳤다.
“어, 진. 잘 있었어? 아주 여행이 길었어”
말바는 조금 마른 듯 보였고 뭔가 할 말이 있지만 참는 눈치였다.
“그나저나. 로저는 어때? 수술은 잘 된 거야?”
그때 현관에서 로저가 걸어 나오고 있다. 휠체어 없이 두 발로 걸어 나오는데 조금 마르긴 했어도 허리도 펴진 상태로 걸어 나왔다.
“와! 로저. 진짜로 걷는구나”
“하니, 이분은 누구야?”
로저는 우리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말을 한다. 언뜻 로저가 훨씬 젊어졌다는 걸 그때 알 게 되었다.
황급히 말바는 로저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로저가 기억상실증에 걸렸나? 아님 치매가 왔나?”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말바는 근심 어린 얼굴로 와이프를 찾아왔다.
“말바? 무슨 일이야? 저녁은 먹었어?”
말바는 여행을 다녀온 후로는 웃음끼가 없어졌다.
“진,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난 지금 너무 힘들어. 로저가 말을 듣지 않아. 사실 로저는 인공적으로 길러진 로저의 모사체야. 스위스에서 로저대신 만들어졌는데 기억은 없어. 그리고 로저는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했고. 난 건강한 로저가 너무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와 통하는 게 없고 모습하고 목소리만 같아.”
충격이었다. 듣기는 했지만 이런 일이 가능하리란 건 상상을 하지 못했다. 말바는 흐느끼듯 독백을 하듯 말을 이어 나갔다.
“기억이 없는 로저는 너무 무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