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마지막 날
"이날을 기다렸다."
아내는 육아휴직 마지막 날까지 가시 돋친 말을 건넸다. 아내는 육아휴직 1년간 단 한 번도 응원이나 격려의 말을 해준 적이 없다. 내가 아무리 완벽하게 집안일을 다하고 아이를 돌봐도 아내는 늘 굳은 표정과 날 선 말로 내 마음과 집 분위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아내의 칭찬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단지 나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아내는 끝까지 화만 남겼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내는 처음부터 나의 육아휴직을 싫어했다. 주변에서 유일하게 육아휴직을 반대했다. '나는 일하는데 너는 놀고 있다'는 생각이 아내의 마음을 지배했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가장'이라고 주장했고, '자신은 가장이 되기 싫다'고 말했다. '가장은 돈만 많이 버는 게 아니다'는 나의 얘기는 먹혀들지 않았다. 아내의 마음을 풀어주는 한편 내가 '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특히 나의 육아휴직으로 인해 아내에게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으려고 신경 썼다. 생활비를 보태지 못하는 대신 생활비나 용돈을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아내가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면 어떤 일도 하지 않도록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다시피 했다. 아내가 못 나가는 학부모 모임도 꼬박꼬박 참석했다. 결과적으로 아내는 이런 내 모습을 더욱 싫어했다.
아내의 불만은 두 가지다. 첫째, 내가 놀고 있는 모습을 극도로 싫어했다.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독서논술지도사'를 공부하고, 7개월간 1주일에 두 번씩 고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독서논술학원'에 대해 고민했다. 이직 기회를 얻기 위해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아놨다. 태국국제학교와 필리핀영어학원을 꼼꼼히 알아보고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 아들과 함께 현지에 가서 영어 공부를 했다. 동시에 아내는 자유의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기를 바랐다. 공인중개사 공부를 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는데도 들어주지 않았다. 만약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땄다고 해도 보수적인 아내는 내가 복덕방을 차릴 수 있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아내는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안정적으로 월급이 나오는 직장인이 최고의 직업으로 생각하고 있다. 내가 주식투자, 환테크 등을 공부하기도 원했다. 돈에 대한 생각이 다른 나의 가치관을 전혀 배려해 주지 않았고, 동기 부여도 되지 않았다. 어쨌든 아내의 첫 번째 불만은 복직과 동시에 해소됐다.
두 번째 불만은 '지난해 생일 선물을 사주지 않았고, 명품 가방을 사주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내가 이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쇼핑몰 갈 때마다 갖고 싶은 것을 사라고 수차례 얘기했다. 몇 개월 그렇게 흘러 보내다 최근 143만 원짜리 피부과 시술로 마무리됐다. 명품 가방은 목돈이 필요한 만큼 올해 안에 반드시 사주겠다고 확인해 줬다. 명품 가방만 해결하면 나도 집에서 숨통이 좀 트일 것 같다. 복직하고 장기 할부를 해서라도 빨리 명품 가방을 사주고 싶다.
아내의 한 맺힌 불만도 한 가지 있다. 18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최대 위기가 왔을 때 내가 무관심했다는 것이다. 팀장과 팀원들 간 불화로 친한 동료들이 줄줄이 이직을 하면서 자신도 사표를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는데, 내가 "힘들지 않은 직장은 없고, 모두가 그렇게 힘들게 직장 생활을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는 것이다. 나름 아내의 고충을 들어주고 위로한다고 했지만 진정성이 전달되지 않았다.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내 잘못이 크다. 변명하자면, 기본적으로 남자와 여자의 대화 방식이 달랐고, 노력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오빠가 하는 거 보니까 믿음이 안 간다."
나의 육아휴직이 우리 부부의 관계를 이렇게 망가뜨려놓을 것이란 생각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제는 아내가 나를 믿지 못하게 됐다. 믿음을 줄 만한 모습은 보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믿음을 잃을 만한 행동을 한 적은 없다. 아내만큼 나를 저평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외향적인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나를 믿고 따라주는 지인들도 많다. 꼼꼼한 성격 탓에 회사 업무든, 가사든, 육아든 주어진 일을 책임감 있게 수행하고자 노력한다. 이 때문에 나를 '홍반장'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종종 있다.
"기혼자들이 미혼자들에게 절대 얘기하지 않는 비밀이 있다. 결혼하면 이혼이 진정으로 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은 바로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순간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강력한 의지가 둘 중 한 명이라도 있어야 백년해로를 할 수 있다. 아니면 이제는 너무나 많아진, 그 흔하고 흔한 이혼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게 된다."
미셸 오바마 여사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의 결혼생활에서 고충을 토로한 기사의 댓글이다.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부부관계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까. 배우자의 인정을 바라는 것이 욕심이라면, 그저 당신의 남편 또는 아내가 그렇게 형편없는 사람은 아니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태복음 19장 6절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