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가이드, 박지현을 인터뷰하다
여행은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새로운 자극을 얻고, 정리하고 싶은 과거를 떨쳐내리라 꿈꾸며 출발한다. 필자는 여행을 떠올리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 먼저 떠오른다. 보기만 해도 설레는 단어다.
그런 점에서 여행가라는 직업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직종 중 하나이다. 여행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니! 화려한 도시에서 사람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오지까지, 세계 각지의 풍경을 감상하고 문화와 분위기를 누리는 삶은 한없이 멋져 보인다. 그런데 과연 여행가들의 인생이 언제나 아름다운 한 폭의 사진처럼 이상적이기만 할까? 카메라 렌즈 뒤에 있을 그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제이(본명 박지현)는 여행 가이드이자 사진작가이다. 사실 N 잡러인 그를 두 개의 직업만으로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그래도 가장 적합한 키워드를 고르라면 ‘여행’과 ‘사진’을 꼽을 수 있다. 그는 현지인들만 아는 비밀스러운 장소를 소개해주고 인생 샷까지 제공하는 최고로 매력적인 여행 메이트이다. 단연 요즘 여행자들의 니즈를 100%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가이드이다. 이런 이유로 그가 운영하는 ‘제이 투어’는 늘 고객들로부터 만족도 최상의 평가를 받으며 항상 예약이 끊이지 않는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제이 투어에서의 여행이 ‘기부여행’이라는 점이다. 필자는 기부여행이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보기로 했다.
제가 알기론 90년대 초에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됐을 거예요. 제한이 풀리자마자 아버지가 너무 나가고 싶어 하셨는데 그때 제가 4살, 형이 7살이었어요. 여행의 명분은 ‘여행이 최고의 교육이다’였지만 커서 생각해보니까 아빠 사심 채우기가 아니었나 (웃음).
사실 엄청 존경스러운 부분이에요. 아이와는 1시간만 있어도 엄청 힘들잖아요. 당시엔 인터넷도 없고, 그렇다고 저희가 부유해서 호텔에서 잔 것도 아니고, 돈이 없어서 중고차 한 대에 텐트 싣고 여행을 했거든요. 지금 저는 인터넷과 인프라가 다 갖춰진 상황인데도 아이 두 명과 세계여행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 저는 확실히 못 한다고 대답할 것 같아요.
그 여행이 매우 큰 영향을 준 건 맞지만, 결국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부모님이에요. 어렸을 때는 하도 여행 다니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당연히 여행은 가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크면서 자연스럽게 돈을 모으고, 자연스럽게 여행이란 걸 시작했던 것 같아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에요.
저희 아버지가 제게 자주 하시던 말씀이 이거였어요.
아들아,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다.
돈이나 명예에 집착하지 말고
세상을 두루두루 돌아봐
제대하고 2주 뒤에 한국에서 가장 멀다고 할 수 있는 남미로 도망을 갔어요. 군대에 갇혀있으면서 떠나고 싶기도 했고, 첫사랑이랑 엄청나게 아픈 이별을 하기도 했고. 군대와 전 여자 친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야겠다, 하고 간 곳이 남미예요. 결정할 때까지도 남미가 어떤 곳인지 잘 알지 못했어요. 그 여행이 결국엔 인생의 전환점이 됐고 이렇게 살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여행지가 아니라 그곳의 여행자들에게 영감을 받았어요. 어린 마음에 "돈은 어디서 나서 이렇게 여행해요?" 궁금해서 물어보면 "난 지금 돈 벌면서 여행하는데?"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그때도 분명 있었어요. 예를 들면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요리사가 있어요. 친해지고 서로 SNS를 팔로우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집트에서 스쿠버다이빙 강사를 하고 있는 거예요. 어느 날은 미술관에서 큐레이팅을 하고 있고, 어느 날은 영어 선생님을 하고 있고. 알고 보니 자격증만 10개가 넘는 사람이었어요. 그분이 한 얘기 중에 "내가 돈은 많이 못 벌어도, 전 세계 어딜 가도 먹고 살 능력은 있는 것 같다"라는 말이 어린 저한텐 모토가 됐어요. 그 후로는 무언가 배우는 것에 있어서는 돈을 안 아꼈던 것 같아요.
제가 포르투갈에 살기로 결정하고 1년살이를 준비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카메라나 보정은커녕, 사진의 ‘ㅅ’도 몰랐어요. 유럽 가니까 좋은 카메라로 예쁜 모습들 담아야지, 이런 단순한 생각으로 입문자용 카메라를 사서 갔어요. 그런데 제가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들이 반응이 정말 좋은 거예요. 제가 잘 찍어서라기보다는 포르투갈이 당시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도 한몫했던 것 같아요.
때마침 운 좋게 [비긴 어게인 2] 팀이 포르투에 와서 촬영을 했어요. 전 그때 그게 싫었어요. 왜냐하면 최대한 한국 사람이 없는 유럽 국가를 찾아서 간 곳이었거든요. ‘‘큰일이다, 사람들 너무 많이 오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나중에는 이 사건이 제게 기회가 됐죠.
비긴 어게인이 방영된 이후로 사람들이 ‘포르투’를 검색하면 제가 찍은 사진들만 나오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포르투갈 관광청에서 제 사진을 사가기도 하고, 사람들이 포르투에서 스냅사진을 요청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당연히 경험이 없으니까 처음에는 이런 요청을 거절했어요. 그런데 어떤 분이 되게 간곡하게 부탁을 하셨어요. 꽤 큰 금액을 지불하신다고 하셨는데, 제가 자신이 없어서 그냥 무상으로 찍어드렸어요.
그분이랑 6시간 동안 6,700장을 찍고 저는 엄청 신난 채로 집으로 뛰어들어가 보정을 하기 시작했어요. 첫 사진을 보정하는데 5시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수정하고 마음에 안 들어서 버리고 또 재수정하고… 최종 보정이 된 사진을 그분한테 보내드렸는데 너무 좋아하시면서, 문자로 엄청 길게 얼마나 좋고 고마운지 말씀해주셨어요.
그때 기분이 약간 이상했어요. 여태까지 제가 생각지도 못한 영역에서 새로운 나를 찾은 것 같은 느낌인 거예요. 마치 어렸을 때 새로운 장난감을 산 것처럼 가슴이 두근두근거렸죠. ‘와, 이거 더 해보자’ 하고 그 뒤로 얼떨결에 스냅사진 작가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포르투갈에서 여유롭게 살고 싶어 간 건데 정신 차려 보니까 한국에서보다 더 바빴고 훨씬 더 많이 벌게 됐어요. 그렇게 저는 포르투 스냅사진작가로 알려졌고, 그 후로 직업이 하나둘씩 자연스럽게 추가된 것 같아요.
여행을 시작하면 처음에는 대부분 예쁘고 좋은 것 위주로 보여요. 한국이랑 비교도 많이 하죠. 그런데 여행을 좀 오래 다니다 보면 안 좋은 면들이 보기 싫어도 보이기 시작해요. 예를 들면, 1박에 100만 원이 넘는 호텔 앞에 앉아서 물건을 파는 아이들이 있어요. 너희는 학교 안 가도 되냐고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5살밖에 안 돼 보이는 꼬마 아이가 ‘학교를 어떻게 가요, 먹고살아야죠’라고 대답하는 거예요. 그때 충격받았어요. 화려한 관광지 뒤에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공정여행’은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려워요. 쉽게 설명을 해볼게요. 대부분 유명한 여행지들은 부자들이 계속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어요. 여행사, 호텔, 레스토랑, 비행기 모두 연결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 호텔을 지은 사람들은 현지인들이죠. 관광객들은 현지인들의 월급보다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숙소에서 하룻밤을 지냅니다. 그런데 관광객들의 소비가 현지인들에게 돌아가는 일은 거의 없어요. 저는 이러한 행태가 비정상적으로 느껴졌어요. 저 혼자 현지인들을 모두 도울 순 없지만, 적어도 제 여행의 소비만큼은 현지인들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구조로 바꿔보자라는 생각으로 공정여행을 시작했어요.
제이 투어 여행의 특징은 전 일정 동안 호텔이 아닌 현지인이 운영하는 호스텔에서 숙박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로컬 식당에 가서 현지인들이 먹는 음식을 먹어요. 그 지역 사람들의 의식주를 다 체험해보는 거예요. 그래서 여행할 때 다들 힘들어하세요. 좀 더 비싸도 좋은 거 없냐고 물으실 때마다 저희는 그런 거 안 한다고 말씀드려요. 왜냐하면 그런 거 없이도 잘 먹고 잘 놀 수 있거든요. 물론 여기서 나오는 수익은 모두 현지인들에게 돌아갑니다.
그 얘기를 지겹도록 많이 들었어요. 처음에 제가 여행을 너무 좋아해서 여행으로 밥벌이를 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 모든 사람이 말렸어요, 심지어 부모님까지도. 여행만큼은 일로 만들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막상 해보니까 혼자 여행할 때보다 훨씬 재밌는 거예요. 내가 좋았던 곳들에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보여줬을 때 사람들 반응 있잖아요. 그런 거 보면 '아, 내가 느꼈던 감정을 이 사람들도 똑같이 느끼고 있구나', 이런 게 엄청 보람차요.
투어가이드만 계속하면 질리거나 힘들거나 여행이 싫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직업이 여러 개다 보니, 한 투어를 끝내고 오면 휴식기를 가지고 캐릭터를 바꿔 다른 직업으로 또 돈을 벌 수 있죠.
제이 투어는 지금까지 제가 경험한 일들의 총집합체예요. 기획능력, 여행하면서 만난 현지인들의 정보, 세계 각지의 안전수칙, 스쿠버다이빙 교육, 기가 막힌 사진 촬영, 제가 찍고 만든 영상으로 홍보하고 직접 통역까지. 저라는 사람이 이 투어에서 1부터 100까지 다 사용돼요. 사실 엄청나게 힘들고 투어 할 때 에너지를 굉장히 많이 써요. 그런데 그만큼 성취감이 되게 높아요.
단순히 사람들이 저를 알아줘서가 아니라, 제가 여태까지 해왔던 일들이 전부 쓸모가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쓸모없는 경험은 하나도 없었어요, 심지어 안 좋았던 경험들까지도.
소셜미디어의 화려한 모습 뒤에는 당연히 힘든 것들이 많아요. 가끔씩 현타도 와요.(웃음) 저도 제 인스타그램을 보면 ‘와.. 사진 속 진짜 행복해 보이는 이 사람이 나라고? 지금의 나는 아닌데..' 이럴 때도 있죠.
아이러니한 건 제가 초중고, 가끔씩 대학교까지 진로교육을 하러 가는데, 진로교육을 진행하는 저조차도 제 진로가 확실하지 않은데 과연 이게 맞는 건가 생각이 들 때가 되게 많아요. 저도 항상 갈등하는 부분은 ‘지금이라도 취직할까? 앞으로 10년 뒤에도 사람들이 나를 찾아줄까?’ 하는 고민들이에요. 누군가 저를 찾지 않으면 밥벌이를 할 수 없는 직업이거든요. 제가 아저씨가 되어도 사람들이 제 투어를 찾아와 줄지 생각해보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이 저한테 궁극적으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어볼 때 ‘지금’처럼만 사는 게 꿈이라고 항상 이야기해요. 직업이 계속 같다기보다는, 10년 뒤든 20년 뒤든 그때의 나에게 맞는 재밌는 일들을 발견하면서 평생 일하는 거죠.
좋아하는 일이 굳이
하나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나에만 너무 몰두하다 보면 사람이 폐인이 될 수도 있어요. 제일 슬픈 건, 목숨 바쳐서 좋아했던 일을 더 이상 안 좋아하게 되는 거예요. 그것만큼 슬픈 게 없어요. 분명 또 다른 좋아하는 일이 있을 거예요. 하나보다는 두 개, 두 개보다는 세 개, 네 개, 열 개, 최대한 많이 좋아하는 일을 고민해보세요.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힘든 걸 잘 못 느껴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고 싶은 일들 있잖아요, 그게 직업으로 연결됐을 때 저는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해요. 돈을 얼마나 버는지 그런 건 필요 없고, 눈 떴을 때 생각나는 게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이라면 그것만큼 축복받은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 제이의 책 : 여행자의 다이어리, 제이의 인스타그램 : whats_up_jay
� 인터뷰 풀영상은 '60개국, 164개 도시 세계여행가도 취업 걱정을 할까?' 채널에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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