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 통역사, 채주연을 인터뷰하다
세간의 관심을 받던 2022년 아카데미 작품상의 영예는 영화 <코다>가 받았다. 코다(CODA)는 Children of Deaf Adults라는 뜻으로 농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뜻하는 단어이다.
<코다>는 작품상뿐만 아니라 남우조연상과 각색상도 수상하는 영광을 얻었다. 실제 농인인 트로이 코처가 주인공 아버지 역으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였는데, 이를 윤여정이 수화로 시상하며 더욱 화제가 되었다.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장애를 가진 이들에 대한 편견이 있다. 그런데 관점을 달리 해 청각장애인을 외국인이라고 생각해보자. 과연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외국인과, 들리지 않아 소통이 어려운 청각장애인이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청각장애인들이 ‘수어’라는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하여 소통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수어는 2016년 대한민국의 독립된 언어로 제정되었다.
필자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수어 통역이 언어 통역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인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에 용감하게 뛰어들어 청각장애인들을 사회와 연결해주는 수어 통역사 채주연을 이번 회에서 소개한다. 그녀는 소보로(소리를 보는 통로)라는 회사에서 일하는 동시에 유튜브 채널 '수채화 채주연'도 운영하고 있다. 필자는 그녀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어떻게 농인을 위해 일하게 되었나요?’
대학교 때 전공이 신학이었어요. 그런데 신학 말고 다른 기술도 갖고 싶더라고요. 제가 기독교 학교를 다녔는데, 채플 시간에 모든 사람들이 앞을 보고 예배를 하는 중 딱 한 명만 반대로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수어 통역사분이었어요. 인생에서 수어 통역사와 농인을 처음 본 순간이었죠. 당시 홀린 듯이 꽂혀서 그곳에 있던 농인 분한테 막 ‘수어 배우고 싶어요, 못하는데 알려주세요'하고 무작정 친한 척을 하면서 다가갔어요. 이후로 번호 교환을 하면서 친구 관계가 시작됐어요. 그러면서 그 친구를 엄청 많이 따라다녔죠. 오늘도 오는 길에 그 친구랑 계속 연락하면서 왔는데, 아직도 제일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에요. (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거기에 꽂혔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열정이 안 식더라고요. 신기했어요. 지금도 저는 수어를 하면 가슴이 뛰고 정말 행복해요. 음성언어(말)로 대화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제가 워낙 감정적인 공감, 교류 등의 표현을 굉장히 많이 하는 사람이다 보니까 수어라는 언어가 저랑 딱 맞는 거예요. 그리고 하면 할수록, 배우면 배울수록, 너무 매력 있고 재밌어서 열정이 쉽게 줄어들지가 않아요.
저는 매 순간 느껴요. 제가 스무 살 무렵 수어를 시작했어요. 앞서 말했던 그 농인 친구가 저를 한국 농아 대학생 연합회(이하 농대연)라는 단체에 데리고 갔죠. 수어를 정말 못 할 때였는데, '통역' 역할로 농대연에 들어갔어요. 이 단체에는 청각장애인분들과 수어를 모르시는 청인분들도 계셨어요. 여기서 제 역할은 농인과 청인이 교류하는 여러 행사들에서 수어를 못 하는 청인분들께 통역을 해주는 일이었어요.
처음에 다들 아무 소리 없이 수어로 얘기하는 모습을 보고 '망했다. 이건 아닌데... 나가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당시에 수어를 잘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거기 있던 분들이 저한테 아기 걸음마 가르쳐주듯이 천천히 하나씩 가르쳐 주셨어요. 오히려 농인분들께서 제 속도에 맞춰주는 등 저를 진짜 많이 챙겨주셨어요. 어떻게 보면 이 상황이 그냥 입장만 바뀐 거잖아요. 소리가 들리는 세상과 소리 없이 눈으로 보는 세상에 동일하게 제가 있는데, 후자의 상황에서는 제가 통역의 도움을 받아야 했어요. 이렇게 생각하니까 저와 농인분들이 다른 점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을 바꾸면 그분들도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이 사실을 특별한 순간에 깨달았다기보다, 나와 다를 게 없는 그냥 '수어 하는 언니 오빠들'이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맞아요. 아까 소개드렸던 그 농인 친구가 되게 친한 동생인데 그 친구가 맨날 저를 챙겨요. 저보다 한 6살이나 어린데도 불구하고, 식당에서 나올 때 가방도 챙겨주고 핸드폰도 챙겨주고 길도 찾아줘요. 저희는 그냥 서로 도움이 필요할 때 돕고 도우는 관계라고 생각해요. 마치 연인끼리, 가족끼리, 청인들끼리도 서로 부족한 걸 채워주는 것처럼 말이에요.
처음부터 들리지 않은 농인 친구들은 10-12년정도 언어치료를 받아요. 언어치료사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하도록 가르치는 직업이라고 들었어요. 성대가 있는 한 당연히 모두가 음성적인 소리는 낼 수 있지만 언어치료를 얼마만큼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개개인마다 치료도가 많이 달라요. 그래서 보편적으로 어떻다라고 얘기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제가 비장애인이기 때문에 어떤 것이 옳고 그르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매우 조심스럽지만, 농인 아이에게는 태어났을 때 언어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주변에는 음성언어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분들과 수어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분들 두 케이스 모두 있어서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옛날에는 장애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좋지 않았고, 부끄럽고 숨겨야 되는 이미지가 있었다 보니 수어 사용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아이가 태어났을 때 수어를 가르친다는 생각을 많이 안 하셨죠. 병원에 가면 ‘보청기랑 *인공와우하고 언어치료하세요’ 라는 일방적 진료가 대다수였어요. 무엇보다 사회적 시선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요즘에는 수어언어법이 제정되면서 인식이 바뀌는 추세인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수어 혹은 음성언어 사용 선택은 당사자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장애인은 장애가 눈에 보이는 반면, 청각장애인은 장애인인 것이 티가 나지 않기 때문에 왜 안들리는 척 하냐는 오해도 많이 받아요. 그래서 인간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는 것을 많이 봤어요. 보청기나 와우를 사용한다고 해서 다 들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인공와우: 청신경에 전기적 자극을 직접 제공해 줌으로써 손상되거나 상실된 청신경세포의 기능을 대행하는 전기적 장치
농인분들은 표정이랑 입모양을 함께 보세요. 근데 마스크로 얼굴, 특히 입이 가려져있다 보니까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볼 수가 없는 게 굉장한 불편함이죠. 음식점이나 카페에서도 잘 안 들린다고 말씀드리면 소리만 더 크게 해서 얘기해준대요. 입모양을 보여주시거나, 입이 보이는 ‘립뷰 마스크’ 혹은 필담으로 소통하는 배려들이 있다면 농인분들과 더 원활히 대화할 수 있을 거예요.
‘정상인’과 같은 표현은 절대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전 ‘정상’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 농인과 청인, 이런 용어들을 쓰는 것이 좋죠. 옛날에 사용하던 벙어리, 귀머거리 이런 단어들도 절대 사용하면 안 되는 단어들이고요.
인식적인 측면에서는 농인분들도 정말 다양한 직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거예요. 모델, 발레리나, 포토샵 디자이너, 컬링선수까지. 일반 회사원 분들도 많고요.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에서는 고용주에게 농인의 업무 보조 근로지원인을 붙여주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어요. 특히 회사에서는 이메일이나 텍스트로 소통을 많이 하기 때문에 농인분들도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수어도 영어, 일본어, 중국어처럼 다른 언어랑 동등한 언어예요. 그런데 아직까지는 수어에 대한 인식이 '도와준다', '봉사한다' 이런 이미지가 남아있어서 농인을 '도와줘야 된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농인은 그냥 수어라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에요. 수어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수어 통역을 제공해주는 것뿐이고, 수어 통역사도 언어 통역사와 마찬가지의 개념인 거죠. 옛날에는 이런 인식이 적었다 보니까 수어 통역사를 '수어 봉사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으신데, 이제는 하나의 독립된 언어인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수어 통역사'라는 점을 기억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되게 당연한 답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들리니까!'라고 답할 수 있어요. 제가 하도 덜렁거려서 농인 동생이 많이 챙겨준다고 했잖아요. 그것처럼 그 친구가 음식을 시키거나, 다른 청인 분과 의사소통할 일이 있을 때 제가 통역해줄 수 있는 거예요. 들리기 때문에 당연히 해줄 수 있는 일들인 거죠.
제 가치관이 필요한 곳에 필요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저는 제 안에 사랑이 채워진 계기가 있어서 제가 받은 사랑을 나누고 싶었어요. 원래 저는 긍정적이지도 않았고 정신병원에 입원이 필요했을 정도로 우울감이 많은 상태였어요.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했고 친구 관계도 안 좋아서 굉장히 자존감이 낮고 자기비판이 강했어요. 매일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하고, 약 먹고 잠들고, 몸무게가 35kg까지 빠지는 등 일상생활이 불가능했어요. 그런데 종교적인 계기로 제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고, 그 과정 속에서 엄청난 사랑이 제 안에 채워지면서 제 인생이 바뀌었어요. 제가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이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이 사랑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죠.
저도 원래부터 이런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렇다 보니까 지금 살아가는 이 시간을 다시 얻은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살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천국이 있다고 믿는데 제가 생각하는 천국은 이런 거예요.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고, 어느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함께 가는 곳. 그래서 저는 지금 이 순간도 천국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서로가 필요한 걸 서로가 채워주잖아요. 제가 들을 수 있고 수어를 할 줄 알기 때문에 당연히 수어 통역사라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첫번째로 수어가 또 하나의 언어라는 사실과 농인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요. 우리가 영어를 필수과목으로 배우듯이 누구나 수어를 할 줄 아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청인분들이 자연스럽게 수어로 소통할 수 있도록 청인에게 수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어요.
두번째로 요즘 *국제수화가 유행인데, 이걸 배워서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요. 국제수화는 하나의 통일된 수화예요. 원래 나라마다 수어가 다르거든요. 제가 지금 혼자 국제 수화를 배우고 있는데, 2023년 제주도에서 열리는 *세계농아인대회에서 각국의 농인분들과 소통하고 싶어요.
*국제수화는 다양한 나라의 언어를 수집하고 연구중인 단계이기 때문에 언어로 인정하기 어렵다.
*세계농아인대회는 세계농아인연맹(WFD)에서 주최하는 대회로서 농인의 인권과 교육, 문화, 예술, 수어 등과 관련된 130개 회원국의 실태 등을 공유하고 있다.
자기 꿈을 직업으로 삼지 마세요.
꿈이 단순히 직업이면, 그 직업을 얻는 순간 꿈은 사라져요.
꿈은 직업이 아니라 비전과 가치여야 해요.
나는 이런 걸 할 때 행복해, 가슴이 뜨거워져, 이런 포인트에서 기분이 좋아 등등, 이런 것들이 여러분의 가치가 되고 이 가치가 여러분의 꿈이 된다면 그 꿈은 끝나지 않을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이 정말 원하시는 것, 마음을 뜨겁게 만드는 일을 가치로 만들고 또 꿈이 돼서 지금 하시는 일을 끝까지 열심히 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제가 응원할게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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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풀영상은 '들리는 내가 들리지 않는 이들을 위해 일하는 이유', 여기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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