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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Feb 16. 2023

짜파게티 예찬

우직함의 끝자락

짜파게티가 처음 나왔을 때, 집에서 만들어 먹는 짜장면인양 광고를 했었다. 세상에, 이젠 엄마, 아빠를 조르지 않고도 짜장면을 먹을 수 있다니. 나랑 동생은 벼르고 별러서 엄마가 외출하신 어느 날 몰래 슈퍼에서 하나를 사 왔다. 라면처럼 끓이기만 하면 되는 줄 알고 기대에 부풀어 사 와서 조리법을 보니 - 아, 일단 조리법이 복잡했다. 


그냥 라면처럼 물에 넣고 끓이는 게 아니라, 물 끓이고, 면 삶고, 물 버리고 (그것도 다 버리면 안 되고 쪼끔은 남기고), 스프 넣어 잘 섞어 먹는 거였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조리법이지만, 그 때는 너무 귀찮았다. 모름지기 인스턴트 면이란 끓는 물에 스프와 면을 털어 넣고 기다리면 되는 것이어야 헸다.


아, 힘들어. 이거 끓이느니 전화해서 짜장면 시키겠네. 물은 얼마나 남기라는 거야. 분말스프는 잘 섞이지도 않아. 매일 싸우던 동생과 모처럼 합이 맞아 궁시렁궁시렁 불평을 해 가며 어쨌든 끓이는 데에 성공했다. 어쨌든 짜장면 아닌가. 그리고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먹어 보았는데, 동생이랑 간만에 의견이 일치했다. 

"짜장면이 아니네!"


그렇다. 짜파게티는 짜장인 척 하고 나타났으나, 짜장면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맛이 다르지 않은가. 게다가 조리 방식의 불편함까지. 나중에 학교에 가서 물어보니, 먹어 본 친구들은 다 같은 반응이었다. 그거 짜장면이 아닌데, 왜 짜장면이라고 해. 그렇게 짜파게티의 인기는 식었다. 주위에 짜파게티를 먹는 친구들은 없었고, 나도 동생도 그 후로 오랫동안 짜파게티를 찾지 않았다. 


하지만, 짜파게티는 버텼다. 


수 십년을 버텼더니, 이제 짜파게티를 짜장면으로 알고 먹는 사람은 없다. 나도 언젠가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2차를 위해 찾아간 선배님 댁에서 형수님이 끓여주신 짜파게티로 해장을 한 후에는 종종 짜파게티 생각이 나서 끓여 먹는다. 


그래도 짜파게티의 맛은 짜장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요즘은 짜왕을 비롯해 좀 더 짜장면에 가까운 맛을 내는 짜장라면들이 나왔지만 그래도 아직 짜파게티가 선두주자다. 어째서일까.


이제 아무도 짜파게티를 먹으면서 짜장면을 기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맛으로 오래 버팀으로써, 짜파게티는 더 이상 짜장인 척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짜파게티는 짜파게티 만의 맛이 있다는 걸 알렸기 때문이다.


짜파게티는 이제 짜파게티의 맛으로 승부하기 때문이다. 


짜파게티는 '가짜 짜장면'이라거나 '짜장면 비슷한 라면'이라는 오명 대신 '짜파게티'라는 자신의 이름을 세울 때까지 우직하게 버텼다. 


그래서 나는 가끔 회사 동료들에게 짜파구리 이론을 설파했었다. 우리도 짜장면인 척 하지 말고, 우리 색을 가지고 가야 한다고. 그래야 직장-인을 벗어나 직-장인이 될 수 있다고. 그러면 이렇게 말하는 동료나 선배들이 계셨다 - 야, 그래도 짜장면 못 먹을 때나 짜파게티 먹지, 짜장면 있는데 짜파게티 먹겠냐?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스카 상을 탄 건 짜장구리가 아니라 짜파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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