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광훈 Feb 27. 2023

쳇바퀴 돌리는 거 얕보지 마라

우리 밖을 생각하기 전에 우리 안을 살피자

이런 말이 있다 -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한다. 


매일매일 뭔가 열심히는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발전하는 것도 보이지 않을 때에 쓰는 말이다. 아무리 열심히 나아가도 결국은 쳇바퀴 안에서, 그리고 쳇바퀴가 있는 우리 안에서 빠져나올 수 없음을 비관적으로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매일 출근해서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는 직장 생활을 낮추어 말할 때에도 쓰이는 표현이고,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도 종종 나오던 표현이다. 


나도 회사를 다니면서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나라는 다람쥐는 어떻게 해야 우리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그러다가 캐나다에 오면서 드디어 우리 밖으로 첫 걸음을 떼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캐나다에 와서 가장 처음 만난 신기한 동물이 청솔모다. 청솔모는 다람쥐와 비슷한 생김새를 가졌지만, 온 몸이 까맣고 몸집이 더 크다. 한국에서는 다람쥐는 보았지만 청설모는 본 적이 없었고, 그나마 다람쥐도 산에 가야만 볼 수 있는 동물이었는데, 이 놈들이 그냥 집 주위를 돌아다녔다. 다람쥐와 청설모의 차이를 모르는 아들과 딸은 다람쥐라면서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른 아침, 로스쿨 주변에서 온 몸에 상처를 입고 피투성이가 되어 비틀비틀 기어서 나무 밑으로 숨어 들어가는 청설모를 발견했다. 아마도 너구리의 공격을 용케 피한 것으로 보였는데, 그건 행운이지만 그래도 그 정도 상처면 자연에서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 같았다. 


청설모에게 있어서 자연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삶이 아니라, 매일매일 목숨을 내 놓고 살아야 하는 전쟁터였다. 그 청솔모는 혹시라도 자연이 아니라 쳇바퀴 있는 우리 안에서 살고 싶지는 않았을까. 


아마도 지금도 스테디셀러일 것으로 생각되는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이라는 책이 있다. 그 유명한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말을 퍼뜨린 책이다. 멋있는 말이고 가슴을 뛰게 하는 책이지만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내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나도 꿈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만큼은 아니었다.


수 많은 배고픔의 날들과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감당해야 하는 외로움, 그리고 천적의 위험까지 - 그 모든 것을 나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사실 감당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었다. 


어쩌면 그게 당연하다. 


현실이라면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은 높이 날기 전에 이미 천적에게 잡아 먹혔을 테니까.  


나는 호랑이가 나를 노리는 정글이라는 완전한 자연보다는 사람이 아닌 것은 바퀴벌레 한 마리까지도 통제할 수 있는 아파트에 사는 것을 선호한다 - 물론 공원 정도의 살짝 자연 냄새나는 공간은 있는 게 좋지만. 자연이 주는 자유로움보다는 내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고 내 마음이 평안한 곳이 좋다. 그래야 내 생존률이 높다.


사람이 보기에는 안쓰러울 수도 있는 우리 속 다람쥐는 사실 야생에서 맞닥뜨려야 할 모든 위험에서 보호된다. 우리는 천적을 막아주고, 우리 안에서는 먹이가 보장되고, 게다가 체력단련을 할 수 있는 쳇바퀴도 있다. 다람쥐가 의지만 있다면 우리라는 공간은 쳇바퀴로 체력을 단련하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좋은 장소다. 


어쩌면 그 동안 감옥이라고 생각했던 다람쥐를 가둔 우리는 사실 다람쥐를 보호하고 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어설프게 사람의 눈으로 쳇바퀴 돌리는 다람쥐를 불쌍해 하는 건 아마도 우리의 오만이었겠다.


내가 대학생 시절 유행하던 일본 만화 드래곤볼에는 시간과 정신의 방이라는 공간이 나온다. 외부와 차단되어 바깥 세상보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곳, 그래서 남들에게 뒤떨어진 무공을 갈고 닦는 곳이다. 남들이 1시간 연습하는 동안 나는 하루를 연습할 수 있으니, 실력은 일취월장이다. 불공정 경쟁의 산실이자 일종의 속임수다. 


회사에 들어간 사람들이 가끔 감옥이라고 표현하는 그 회사는, 어떤 면에서는 현실판 시간과 정신의 방의 특혜를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쳇바퀴와 먹이가 제공되는 우리와도 비슷하다. 회사라는 감옥에 있는 동안 우리는 안전하다. 선배나 기존 서류와 선례들은 내가 밖에서라면 하루가 걸려 배울 지혜와 지식을 한 시간에 채워주는 경우가 많다 (아, 물론 밖에서 배우는 지식이 더 유용한 경우도 많다는 건 인정하지만). 회사에서 주어지는 업무는 내가 활용하기에 따라 내 체력을 길러줄 쳇바퀴가 될 수 있다. 


바깥 세상만 쳐다본다면 우리 안이 답답해 보이겠지만, 웹툰 미생에도 나오지 않는가. 회사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다. 우리 안에서 살 때에는 그걸 모를 뿐이다. 우리를 나가는 순간 준비안 된 다람쥐는 바로 너구리의 밥이 된다. 너구리와 맞짱 뜰 수 있는 체력을 쳇바퀴로 기르는 것이 우선이다. 


물론 안일하게 우리 안에 머무르자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어차피 이 감옥은 우리를 오래 데리고 있을 생각이 없다. 내가 문 열고 나가지 않아도 정년이라는 이름으로 해고라는 이름으로 이 감옥 문은 언젠가는 열리게 되어 있다. 


그러니 어차피 제자리인거, 맨날 쳇바퀴 돌려서 뭐 할거냐고 핀잔주지 마시라. 우리에서 빨리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지 말고 언제 나가도 너구리와 맞짱을 뜰 수 있는 체력을 기르는 것이 목표이니 말이다. 나가는 것이 아니라 나가서 살아남고 번창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지 않겠나.   


그러니 지금은 우리 밖을 보지 말고 우리 안을 둘러보라. 


쳇바퀴가 있는가? 감사하라. 그리고 돌려라!



매거진의 이전글 짜파게티 예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