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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Mar 02. 2023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앞서간다는 말의 의미

이 새가 무슨 새인지 알아보실지.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다는 새, 따오기다. 


예전에는 논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였다고 하는데, 남획으로 인해 한국에서는 1979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졌었다. 2008년에 외국에서 따오기 한 쌍을 받아 자손을 번식시키고, 그 후에 유전자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 수컷 두 마리를 더 들여온 후, 2016년에는 인공번식을 통해 171마리가 태어났다고. 그래서 이젠 이렇게 우연히라도 야생에서 마주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영어 학원을 다니고, 회계를 공부하고, 업무 매뉴얼을 들여다 보고, 경제 신문도 꼬박꼬박 챙겨보고, 자기 계발서도 읽고, 이렇게 하루하루 어제와는 다르고 어제보다는 반 발 더 나간 자리에서 오늘을 시작하려고 애쓰는 매일매일을 보내도,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그런 날들을 지내다보면, 나도 모르게 지친다. 


사진에 따-악하니 찍혀준 따오기처럼 이렇게 한 번이라도 가야할 길의 청사진을 보고 나면, 내가 다다를 곳이 어디인지 확실하게 보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 질 것 같은데, 매일매일 반복되지만 성과가 없어 보이는 노력에도 회의는 들지 않을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한 번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노-오력이 부족한 것인지, 엉뚱한 곳을 바라보는 것인지, 아니면 허상을 좇고 있는 것인지. 사실 '돈'을 뺀다면 내가 뭘 보고 싶은 것인지도 잘 모르는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어쩌면 그건 너무 오랫동안 멀리만 보고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백보 앞은 좋은 이정표고, 백보 앞을 보는 것은 좋은 습관이다. 아직 내 일을 찾지 못한, 그래서 구름 속에 있는 것처럼 앞이 뿌연 상태에서는, 빨리 날아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어디로 날아가는지가 중요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구름이 얼마나 펼쳐질 지 모르는데, 백보 앞 구름만 계속 주시하다보면 지레 지치고, 지레 겁먹어서, 자칫 추락하기 십상이다. 


그럴 때는, 백보 앞은 가끔 봐 주면서 삼보 앞을 주시하면 덜 지친다. 


왜 삼보냐고? 일보나 이보 앞은 누구나 수읽기를 할 수 있기에 그렇다. 너무 멀리 보지 않으면서도, 남보다는 일보 더 보아야 남과 다를 수 있기에 그렇다. 과도한 선행학습을 주장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앞서가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 분명 있기에 그렇다. 


중학교 기술 시간에 선생님께서 고등학교에 가면 배울 거라면서, 맛보기라면서, 진행하신 수업이 있었다. 시험에도 안 나올 거고, 이해하기도 어려운데 왜 이런 걸 하시나 싶었다. 그런데 수업 말미에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앞서간다는 건, 남보다 먼저 다 안다는 것이 아니다. 남들이 처음 듣는 것에 대해 '어, 내가 이거 언제 들었는데' 라는 생각이 들고, 남들이 처음 보는 것에 대해 '어, 내가 이거 어디서 봤는데'라는 생각이 들면 그것으로 충분히 앞서가는거다. 너희는 이걸 다 잊어버리겠지만, 언젠가 다시 이걸 배울 때 어렴풋이라도 오늘 수업이 떠오른다면, 그것으로 이 수업은 성공한거다.

 

그 때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취직을 하고서 백보 앞을 보려다 지치기를 여러 번 하다보니, 무슨 말씀이셨는지 알 듯도 했다. 


지나고 보니 이건 시간이 해결해 주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얼마만큼의 시간을 써야 따오기가 나타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시간 밖에는 기댈 곳이 없으니 영어에도 조금, 회계에도 조금, 독서에도 조금, 그렇게 적금 붓듯이 시간을 부어볼 밖에. 


그러다 보면 따오기가 따-악하니 눈 앞에 나타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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