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광훈 Mar 13. 2023

마시멜로가 내 사정을 어찌 알랴

오만의 형상 

마시멜로 이야기라는 유명한 동기 부여 도서가 있다. 대체 마시멜로와 동기 부여가 무슨 상관인가 하겠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는 실험의 내용이 마시멜로와 연관이 있다.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하면 이렇다. 


아이들을 한 명씩 불러놓고 마시멜로를 준다. 그리고는 1시간 동안 (시간이 중요하지는 않다 - 30분도 좋고 2시간으로 해도 된다)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을 수 있다면 1시간 후에 큰 보상 (예를 들면 마시멜로 1개를 더 준다든지)을 해 주기로 약속한다. 


그리고 1시간 후에 돌아와서 보면 보상이 약속되어 있는데도 당장의 욕구를 참지 못하고 마시멜로를 먹어버린 아이들도 있고, 보상을 받기 위해 먹고 싶은 유혹을 꾹 참고 1시간을 기다린 아이들도 있다. 나중에 추적을 해 보니, 더 큰 보상을 위해 당장의 유혹을 참아낸 아이들이 대체로 성취가 더 컸다는 내용이다. 


이 책을 판매하는 한 웹사이트에서는 이 책을 "적당한 ‘만족’과 ‘타협’이 가져다주는 은밀한 유혹에 빠져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평범한 ‘오늘’을 특별한 ‘내일’로 만드는 소중한 지혜를 전해 줄 것이다" 라고 소개한다.


내일의 더 큰 보상을 바란다면 당장의 작은 보상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런 인내가 없다면 나중에 성취가 결핍된 삶을 살게 될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회사 생활을 한창 열심히 할 때부터, 내 사무실을 가진 지금까지, 나도 그 이론을 별로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마시멜로가 생기자마자 먹어치우는 회사 동료를 고운 눈으로 보아 주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최근에 소위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워라밸이라는 개념도 지지하지 않는 편이다. 미래의 결핍이 뻔히 예상되는데 왜 그런 길을 택한다는 말인가.


그런데 최근 일이 많아서 (물론 일이 많은 건 소득 면에서는 좋은 일이지만) 마치 고3 같은 3주를 보내면서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나는 그다지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물론 이건 내 탓이 아니라 인류가 쌓아온 유전자 탓이라라는 것이 내 주장이지만), 매일의 생활에서 자제하거나 의지력을 발휘해야 할 일이 많은 편이다. 커피를 좋아하지만, 커피로 인해 손톱까지 얇야진 상태라 커피를 자제해야 한다. 초코렛과 아이스크림과 믹스커피를 좋아하지만, 이제 막 운동으로 근육을 키우기 시작한 단계라 단 것을 자제해야 한다. 반대로 힘들고 귀찮아도 배드민턴 칠 때 좀 더 잘 뛰기 위해 (참고로 나는 하수다) 아침마다 14층까지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것을 거르면 안 된다. 물론 이 뿐만이 아니다.


그런데, 일 때문에 주말에도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상황이 10일 정도 계속되니, 지치고 힘들었다. 지치고 힘드니 자제력이 확 줄어든다. 졸리지는 않지만 커피를 참기 어렵고, 배가 고픈 건 아닌데도 초코렛을 참기 어렵고, 계단을 오르는 것도 너무 귀찮아졌다. 결국 지난 1주간은 물처럼 커피를 마시고, 눈에 뜨이는대로 초코렛을 먹고, 계단은 포기했다. 


아, 내가 왜 이러지.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며칠 전 급한 일을 마치고 다시 2-3일 정도 여유를 가지니, 다시 자제력이 생기고 의지가 생긴다. 커피도 다시 줄이고, 초코렛도 안 먹고, 계단도 올라다닌다. 그러니, 이젠 이런 생각이 든다. 

혹시 인내의 부족이 미래의 결핍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 결핍의 상태 (경제적인 것이든, 체력적인 것이든) 때문에 인내가 부족해지는 것이 아닐까. 


물론 결핍의 상태에서도 인내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낼 것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니, 마시멜로 이야기의 교훈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본다. 


하지만, 내가 혹은 누군가가 인내를 보여주지 못 한다는 것이 꼭 지탄받을 일은 아니겠다, 싶었다. 


내게 주어진 참을성보다, 지금 내가 당면한 상황이 더 어려울 뿐인지도 모르니까. 지금 마시멜로를 먹고 버텨야만, 그마나 인내할 수 있는 다음이 올 지도 모르니까. 내가 지금 참지 못하는 건, 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저 내가 처한 좀 힘든 상태를 보여줄 뿐인지도 모르니까.


도미니카의 푸에르토플라타라는 곳에는 아이티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빈곤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이 곳에 봉사 활동의 일환으로 학교에서 선생님을 하는 어떤 분께서 말씀하시기를 처음에는 학교에 와서 바닥에 누워있는 아이들을 보고 일으켜 세우면서,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열심히 공부할 것을 다그치셨다고 한다. 그러나 바뀌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일을 위해 지금을 투자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실망이 크셨다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어린 아이들이 하루에 한 끼 밖에는 먹지 못하는 생활을 하고 있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저 앉아 있을 힘이 없어서 눕는다는 것을 알고는 크게 반성하셨다고 했다. 수업 시간에 눕는 것이 게으름의 증표라고만 생각했던 오만함이 후회가 되셨다고 했다. 


하루의 필요도 채우지 못한 이들에게 내일의 보상을 위해 더 참으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여전히 나는 워라밸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시멜로를 먹어치웠다는 것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오만이라는 건 인정해야겠다. 마시멜로로 우리를 평가하고자 하는 그 실험은, 비록 통찰력은 있으나 매우 오만한 실험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인내하지 못하는 나를, 아내를, 아들과 딸을, 직장 동료를, 다그치지는 않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럴 때는, 그저 화이팅! 이라고 외쳐 주어야겠다.


어쩌면, 지금은 그저 인내할 수 있는 때가 아닐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