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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Apr 10. 2023

미치지 않으면 지친다

캐나다식 열정페이

얼마 전에 캐나다의 온타리오 주 변호사 협회에서 발표를 했다. 앞으로는 사법 연수생에게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처음 캐나다의 로스쿨에 입학했을 때에는 사실 캐나다에서 변호사가 되는 과정에 대한 정보를 쉽게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미국하고 비슷하려니, 라는 생각을 가지고 캐나다 로스쿨에 입학했다. 미국에서는 3년간의 로수쿨을 마치고, 해당 주의 변호사 자격 시험을 통과하면 변호사가 되니, 나도 3년 계획을 잡고 캐나다 로스쿨에 갔더랬다. 


그런데, 아니었다. 캐나다는 미국과 달라서 로스쿨을 졸업하고도 10개월의 연수 기간을 거치고, 변호사 자격 시험도 통과해야 변호사가 되는 것이었다. 한국의 사법 연수원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사법 연수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3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변호사에게 연수생 (articling student)으로 채용이 되어 일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연수생 자리도 경쟁이 치열해서, 심지어는 로스쿨을 졸업하고도 연수 자리를 못 구해 변호사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것을 로스쿨 1학년 1학기가 끝날 무렵에서야 알았다.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캐나다는 로스쿨 입학 정원이 적어, 캐나다에서 로스쿨을 가지 못한 학생들은 같은 영연방국가인 영국이나 호주의 로스쿨에 입학해서 졸업 후에는 캐나다로 돌아와 변호사 자격을 따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10개월의 연수 기간은 거쳐야 한다. 연수생 자리를 놓고 캐나다 로스쿨 내에서의 경쟁도 치열한데, 거기에 영국과 호주,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수의 미국 로스쿨 졸업생까지 달려드니 연수생 자리는 쉽게 구해지지 않는다. 


모든 학생이 대형 로펌이나, 적어도 중형 로펌에서 연수를 하고 싶어하지만, 그건 캐나다 로스쿨 졸업생으로 중위권 이상의 성적을 가진 학생들 몫이다. 나머지 학생들은 소형 로펌이나 개인 로펌에서 연수를 시작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자리가 충분하지 않으니 무급이나 형식적인 보수 (예를 들면 한 달에 5만원) 으로 연수를 마치는 경우도 많다. 


무급이라고? 이거 불법 아닌가? 캐나다는 최저 임금이 없나?


그럴리가. 캐나나도 최저 임금이 있다. 올해부터는 시간당 CAD$15.50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캐나다의 최저 임금제가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일을 배우기 위해 고용관계가 성립되는 경우"에는 이 최저 임금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면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일을 배우는 기회와 일을 배우는 것 그 자체를 댓가로 보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캐나다는 열정페이를 공식적으로 용인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럼, 그거 나쁜 것 아니냐... 라고 누가 묻는다면, 글쎄, 잘 모르겠다. 내 로펌에서도 연수생을 고용하지만, 사실 연수생이 꼭 필요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은 연수 기회를 얻지 못한 한인 로스쿨 학생들에게 연수 기회를 주기 위해서 고용한 경우였다. 내가 연수 자리를 얻지 못했을까봐 조마조마했던 그 3년을 생각하면 안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리 사무실은 비공식적으로 최저 임금은 지급했지만, 공식적인 계약 관계는 "무급"이었다. 


무급으로 일 할 사람이 줄을 서 있는데, 필요하지도 않은 인력을, 게다가 연수 후에는 경쟁자가 될 확률이 지대한 인력을, 도대체 왜 최저 시급을 주어 가면서 고용한다는 말인가. 아마도 최저 임금이 이제 로스쿨 졸업생에게도 도입이 된다면, 오히려 로스쿨 졸업생을 연수생으로 채용하는 자리는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번 조치는 변호사 협회의 오판일 확률이 높다. 


우리도 예전에는 장인과 상인들 밑에서 무급으로 기술과 일을 배우던 도제 시스템이 있었다. 사실 조금 삐딱하게 본다면 예전 서당이나 요즘의 학교도 돈을 내 가면서 배움을 댓가로 받는 곳 아니겠나. 배움 자체를 댓가로 여기는 것은 꼭 나쁘다고 볼 수 없다. 미래를 세울 수 있는 배움을 원해서 간 곳이라면 열정페이가 나쁘지 않다. 문제는 돈이 필요해서 일을 했는데, 열정페이를 받게 되는 경우다. 


어떻게 보면 열정페이에 대한 논란이 큰 것은 장기적인 배움보다 단기적인 금전을 원하고 일하는 경우가 많아져서인지도 모르고, 아니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이 적어지는 대신 돈 밖에는 벌 수 없는 기회가 더 늘어나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한동안 PDF로만 돌아다니던 "세이노의 가르침"이라는 책이 요즘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나도 예전에 PDF를 구해서 읽은 적이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양복점에서 심부름만 하고 있더라도, 옷감은 어떻게 다른지, 옷감은 어디서 받아 어디에 맡기는지 등등을 공부하다보면 그 곳에서도 성공할 길이 보인다고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다시 말하면 열정페이를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노력여부에 따라 미래를 위한 배움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겠다. 그럼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미쳤냐, 그 돈 받고 그렇게까지 하게.


그럴지도. 하지만 말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미치지 않으면 지치고, 지치면 몸부림치다가 나를 망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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