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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Feb 21. 2023

알콜을 뿌려야 할 시간

바세린은 쪼끔만

하는 일이 일이다보니 종이에 손을 베는 경우가 정말 많다. 한국에서 사무직에 있을 때에는 이렇게까지 자주 손을 베이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캐나다에서 유통되는 종이에는 스치기만 하면 손을 벤다. 이게 칼인가 종이인가 싶을 정도다. 


손이 베인 통증이 비록 크지 않더라도 자주 사용하는 부위에 상처가 나면 약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야 한다. 안 그러면 작은 상처가 계속 벌어져서 큰 상처가 된다. 게다가 그냥 두면 신경쓰느라 일도 못한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종이에 손을 베지만, 사실 살짝 베인 경우는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베인 것도 몰랐는데, 상처가 나아가며 간지러워서 무심코 긁다가 아야! 하는 경우도 많고, 상처가 다 아문 후에야 자국이 나 있는 것을 보고 어, 여기 언제 베었나보네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그건 COVID-19이 유행하기 이전의 이야기다.


COVID-19 이 퍼진 이후에는 그렇지 않다. 모르고 넘어갈 수가 없다. 종이에 살짝 베여서 아프지도 간지럽지 않은 곳도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금방 안다. 소독이라는 이름으로 하루에 열 번도 넘게 손에 70%의 알콜을 뿌려대기 때문이다.

 

알콜은 작은 상처도 놓치지 않고 아프게 한다. 많이 베인 곳은 더 많이 아파서 모르고 알콜을 뿌렸다가, 혹은 베인 것을 잊고 뿌렸다가 나도 모르게 악 소리를 지른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래서 이젠 손에 알콜을 뿌릴 때면 늘 긴장하게 된다. 또 어디가 따갑거나 아프진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알콜을 뿌린다.


손에만 상처가 나는 건 아니다. 가끔 우리는 마음에 상처가 난 줄도 모르고, 그래서 치유가 필요한 줄도 모르고, 바쁘게 시간을 보낸다. 내 마음이지만 하나하나 돌봐줄 여유가 없으니 상처가 난 것을 잘 모르거나, 알아도 큰 상처가 아닌 듯 하면 보듬어 주기 어렵다. 


그래서 가끔은 마음에도 알콜을 뿌려봐야 한다. 


어디가 가려운지, 어디가 따가운지, 어디가 좀 아프며 어디가 악 소리나게 아픈지 가끔은 시험해 봐야 한다. 그냥 지나가도 될 것도 있겠지만, 반창고를 붙여 주어야 할 곳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반창고를 붙여야 하는 마음을 방치하면 아물기보단 상처가 커질 테니까. 


손바닥에 상처가 난 것을 알면서도 알콜을 뿌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궁여지책으로 상처 위에 바세린을 바르고 알콜을 뿌린다. 그러면 상처 위에 알콜을 뿌려도 아프지 않다. 하지만 바세린도 어느 손가락, 어느 부위에 상처가 났는지 알아야 바르고 덮어줄 수 있다.  


남이 뿌려주는 알콜에 내 마음의 작은 상처가 있다는 걸 알아 차리기도 한다. 행운이다. 내가 뿌렸으면 70도짜리였을텐데, 남들이 뿌려주는 알콜은 30도 정도로 확 낮추어 뿌려주니 통증은 좀 덜하다. 그렇게 알게 된 마음의 상처도 덧나기 전에 약 바르고 반창고를 붙인다.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에는 상처받는 마음은 약한 마음인 줄 알았다. 내 마음은 상처받지 않는 강철인 줄 알았고, 그래서 뿌듯했다. 아니었다. 마음이 간지럽거나, 쓰리거나, 아플 때 보니 내 마음도 상처를 받는다. 다 나은 것 처럼 보이는 상처가 무수한 것을 보니, 예전부터 받아왔다. 


나는 그저 마음에 알콜을 뿌리는 법을 몰랐고, 내 마음에 알콜을 뿌려주는 사람도 없었을 뿐이었다. 이제는 좋던 싫던 내 마음에 알콜을 뿌려야 하는 때가 있고, 내가 싫어하든 고마와하든 열심히 뿌려주는 사람들도 있다.


상처 안 받는 척 하고 산 것이 좀 무안하기도 하고, 상처 난 것도 모르고 지낸 것이 창피하기도 하고, 그래도 바세린도 안 바르고 덧나지 않게 잘 가꿔온 건 대견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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