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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Nov 09. 2023

타협하는 포도나무 vs 극복하는 포도나무

스트레스는 어떻게 열매가 되나 

프랑스계와 독일계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던 덕분에 나는 출장을 핑계로 유럽의 포도밭 몇 군데를 다녀보는 특혜(?) 를 누렸더랬다. 유람선을 타고 멀리서 보기도 하고, 포도원 안으로 들어가 보기도 했다. 


그런데, 멀리서 보면 참 풍요로운 포도밭이지만, 막상 가까이 가 보면 포도는 커녕 잡초도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땅에 포도 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태양은 내리 쬐는데, 삽도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자갈땅이나 뿌리가 썩을 것 같은 진흙에서 소위 말하는 명품 와인들이 생산된다.


그러고 보면 흙이 기름지고 날씨가 온화한 곳에서 명품 와인이 생산되다는 말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포도나무가 힘겹게 단단한 토양을 뚫고 들어가서 생명의 뿌리를 내리는 곳에서 명품의 이름이 시작된다. 


기름진 흙의 유혹을 이겨내야 하고, 돌무더기나 딱딱하게 굳은 땅을 한 치씩 뚫어내는 스트레스를 견뎌내고 살아 남은 포도나무에서만이 명품이 생산된다. 만 토양의 기운과 생명을 열매로 뽑아낸다.


토양과 타협하는 포도나무에는 명품 와인을 위한 포도가 달리지 않는다. 토양을 극복하는 포도나무만이 명품 이름표를 달 자격이 있는 포도를 생산해 낸다. 


포도나무 뿐이 아니다. 미생물들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결실을 낸다. 벼에 치명적인 병으로 알려지 도열병은 곰팡이가 만들어내는 병이다. 이 곰팡이, 도열별균을 양분이 담긴 유리 용기에 옮기면 아주 잘 퍼지고 자란다. 하지만, 이렇게 잘 자라는 조건에서는 열매에 해당하는 포자는 잘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포자가 필요할 때는 곰팡이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자라 있는 곰팡이를 박박 긁어서 균사를 다 끊어버리고, 곰팡이가 싫어하는 온도와 습도에 두면 하루만에 빼곡하게 포자를 생산한다. 


스트레스를 받은 곰팡이가 당대의 생존대신 후대의 번창을 선택한 결과다. 


미생물도 그렇고 식물도 그런데, 사람만 다를 리는 없다. 오늘 스트레스가 없는 곳에서 나는 번창하는 포도나무가 될 수는 있지만, 내일 명품 포도를 보여 줄 수는 없다. 


내가 가지를 주욱주욱 뻗고 맘 편하게 살 수 있는 것에 만족한다면, 굳이 비옥한 토양의 유혹을 떨쳐내면서 척박한 토양을 찾아갈 필요는 없다. 바보짓이다. 다만, 그렇게 해서 만들어내는 포도는 여우도 싫어한다는 신포도일 확률이 높을 것이 자명하다 . 


신포도가 아닌 명품을 잉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 때가 딱딱한 토양을 뚫기 시작할 때다. 스트레스를 온 몸으로 짊어질 때다. 


타협대신 극복을, 생존대신 번창을 선택할 때다. 그 때가 열매 맺는 때이고, 그 때가 그 열매가 가치있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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