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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May 11. 2023

잘 치는 놈 따로 있고 우승하는 놈 따로 있다지만

불운을 행운으로 만드는 기술

타이거 우즈, 로이 맥클로이, 최경주.... 골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이름이다. 이 이름들의 공통점은 한 번씩은 어느 골프 대회에서 우승을 해 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골프인들은 이 사람들을 골프를 잘 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잘 치는' 사람들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정말인지는 모르지만).


잘 치는 놈 따로 있고 우승하는 놈 따로 있다. 


그러니까, 공을 잘 친다고 해서 우승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우승을 하려면 공을 잘 치는 것 말고도 다른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는 뜻이다. 


그 '잘 치는' 사람들은 이미 각 대회에 모인 사람 중에서도 누가 '가장 잘 치는' 사람인지, 혹은 누구누구가 '가장 잘 치는 그룹'의 한 명인지, 내가 그 그룹 중 한 명인지 아닌지 알고 있지 않겠나. 내가 그 일인자 그룹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잘 치는' 사람들과 붙어서 경기를 하는 것은 제일 잘 친다고 해서 우승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어쩌면 이번에도 덜 잘 치는 놈이 우승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외국어를 가장 잘하는 사람, 회계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 인간관계가 가장 좋은 사람, 곡 이런 사람들이 회사에서 가장 큰 떡을 가져가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한국에서 첫 직장을 떠나 이직한 회사는 프랑스 회사가 인수한 작은 회사였다. 규모는 다니던 회사보다 작았지만 업계에서는 최초의 외국인 회사라, 더 높은 연봉 말고도 프랑스 본사에의 해외 연수나, 선진 시스템 습득 기회 등등의 많은 (그러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혜택들을 제시했고, 나를 비롯해서 그 당근에 혹한 사람들이 그 작은 회사로 모여들었다. 


회사가 제시하는 떡 중에서 그 회사의 중견 관리자급들이 가장 관심있어 하는 떡은 해외 연수의 기회였다. 자비로 유학을 갈 형편들은 되지 않으나 해외 경험은 쌓고 싶으니, 회사에서 연수를 보내주는 기회를 노릴 수 밖에 없었다. 한국 회사라면 일본이나 영국의 관련 회사에 파견을 보내주거나 어학 연수를 보내는 것이 고작이었겠지만, 이제는 본사가 프랑스에 있지 않은가. 해외 연수다운 연수를 해 볼 수 있을 터였다. 


그 뿐인가. 그 때는 직장인이라면 모름지기 사장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배우던 시기였고, 그리고 한국 지사의 사장이 되려면 본사에 연줄이 있어야 한다는 것 정도는 기본 상식인 때였다. 본사에 연줄을 만드는 데에 본사 연수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에 있을까. 일년에 두어 번 출장오는 본사 직원들과의 회의와 저녁 식사만 가지고는 업무를 위한 관계 이상의 연줄을 만들기는 어려웠다. 


다들 프랑스 본사로 연수를 가는 회사의 첫 연수생이 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일하고, 또 열심히 일했다. 누구든 한 번 가기 시작하면, 그리고 그 사람이 잘 하고 돌아온다면, 그 후에도 비슷한 기회가 계속 있으리라 생각하고 서로 독려했다.


몇 년 지나 프랑스 본사가 독일 회사에 인수 되면서 회사 규모는 더 커졌고, 이제는 프랑스가 아니라 독일 본사 연수라는 떡밥이 주어졌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던 어느 날, 나에게 기회가 왔다. 1년 뒤에 독일 본사의 연구소와 마케팅 팀에 가서 2년을 일할 구체적인 계획이 잡혔고, 나와 아내는 들뜬 마음으로 독일어 공부를 시작했다. 나는 서울 강북에서 경기도 평택까지 매일 6시간 이상씩을 출퇴근에 쓰면서도 독일어 학원을 빼먹지 않았고, 내 아내는 독일어로 대화가 크게 어렵지 않는 수준까지 독일어를 배웠다. 독일에서 생활할 집에 전시해 두고 독일 동료들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할 소품들까지 하나씩 사 모았더랬다. 


하지만, 너무나도 구체적으로 잡혔던 그 연수는 결국 불발이었다. 독일 본사가 계속에서 다른 회사를 사들이는 바람에 유럽에 사람이 넘쳐서 아시아 사람까지 받을 자리가 없다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쉽게 취소가 되다니. 같이 연수를 노리던 사람들은 공은 너무 잘 쳤는데 날아가던 새에게 맞은 것같은 불운이라며 나를 위로했다.


나도 당연히 실망했지만, 다음 기회를 노렸다. 그래도 아직은 연수가 유망한 그룹의 한 명이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별 거 아닌 그 해외 연수가 우승이라면, 나도 여전히 우승 후보 중 하나였으니까. 


그리고 몇 년 뒤에 영국 연수 계획이 또 잡혔다. 본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좀 격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독일어보다는 영어를 배우는 것이 낫지 않겠나. 또 열심히 준비했다. 하지만, 그 계획도 실제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프랑스 회사에 인수된 지 10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제대로 된 해외 연수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부장이나 이사급에서 업무 교류차 몇 주 내지는 한 달 정도 본사를 다녀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 회사에서는 해외 연수가 어렵겠구나... 모두가 생각하던 그 때, 갑자기 회사 최초의 해외 연수가 결정되고 시행되었다. 하지만, 해외 연수를 간 그 사람은 소위 말하는 '가장 잘 치는' 그룹에도, 심지어는 '잘 치는' 그룹에도 들어있지 않던 사람이었다. 스스로도 해외 연수는 목표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공식적으로는 열린 적이 없었던 '제 1회 해외 연수 대회'의 우승자가 그렇게 결정되었다. 


 프란츠 베켄바우어라는 독일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긴 자가 강한 것이다. (It is not the strong one that wins, the one that wins is strong)


가장 잘 치는 놈이 우승하는 것도 아니고, 강한 자가 이기는 것도 아니라니. 일견 불합리해 보이는 이 게임을 우리는 왜 하고 있을까. 


대학원 입학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때 어떤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험 준비를 제대로 했다면 대학원 시험에 붙은 사람이나 떨어진 사람이나 실력은 다 고만고만하다고. 중요한 건 대학원 시험 준비를 했다는 거, 그거 자체라고. 


준비를 잘 했다면 다음 기회가, 아니면 다른 기회가 항상 있다고.


어쩌면 이것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우승을 한 사람이나 이기지 못한 사람에게는, 우승을 하고 이겨보려고 준비하는 그 시간이, 우승하는 것이나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이번 기회에 우승하는 것보다, 우승을 준비함으로써 다음 기회, 혹은 다른 기회로의 문이 열린다는 것이 더 중요한 지도 모른다. 


내가 통제할 수 없고, 그래서 지금은 내 편이 아닌 소위 불운이라 불리는 그 요인들은, 언젠가 적어도 한 번은 내 편이 될 테니까. 


캐나다에 와서, 예정에 없던 로스쿨을 가서, 계획에 없던 캐나다 변호사의 삶을 살게 된 건, 지금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 '제 1회 해외 연수 대회' 를 준비한 것이 시작이었으니까. 불운도 꾸준한 놈에게는 결국 기회를 주게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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