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광훈 Apr 20. 2023

성장과 생존

노력하지마 - 생각도 하면 안 돼

1995년 SBS에서 방영된 모래시계라는 드라마가 있다. 아쉽게도 그 때는 내가 드라마와는 별로 친하지 않았은 때라 그 드라마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송지나라는 작가의 이름은 기억에 남았다. 


그러다가 1999년이 되어 일요일 밤 늦게 방영하는 카이스트라는 드라마가 송지나 작가의 작품이라는 말을 듣고 보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송지나 작가라지만, 카이스트라는 대학을 소재로 무슨 이야깃거리가 나올까 싶었는데, 명불허전이라더니 시즌이 끝날 때까지 매회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내가 지금까지 본 드라마가 많지는 않지만, 내 인생에 영향을 준 드라마가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카이트스를 꼽는다. 


여기에 학교를 휴학하고 공사장에서 인부로 아르바이트를 했던 이야기가 나온다. 무거운 모래와 벽돌을 지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니, 그것도 막노동은 별로 해 보지 않았을 카이스트 학생이 했으니 고된 일이었음은 짐작할 수 있다. 


이 머리 좋은 카이스트 학생은 매일 새벽에 일을 시작하기 전에 계산을 했다. 오늘은 벽돌이 총 x개고, 한 번에 x개를 나를 수 있는데, 오늘 사람이 총 x명 왔으니, x번 사다리를 타야하네, 라고. 그러면 나오느니 한숨뿐이었다. 와 x 번이나 벽돌을 날라야 하다니. 오늘도 정말 힘든 하루가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매일 하니, 하루하루가 힘이 날 리 없었다. 


그렇게 매일매일 계산하고 괴로워하며 일을 하던 어느 날, 함께 일하시던 인부 한 분이 머리를 탁 치시더란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그 인부가 말하기를 "야, 계산하지 말고 그냥 해. 계산하면 더 힘들어. 하다보면 다 끝나게 되어 있어"


그렇다. 계산을 해야 할 때가 있고, 생각하지 말고 그저 움직여야 할 때가 있다. 건축 설계를 할 때라면 계획하고, 생각하고, 또 계획하고, 생각하고를 반복하는 매일매일이 필요할 지 모른다. 그렇지만, 벽돌을 나를 때에는 그냥 날라야 한다. 그냥 오늘 힘 닿는 데까지 나르다가 쓰러져 자고, 다시 내일 힘 닿는 데까지 나르다가 쓰러져 자는, 그런 하루가 필요한  때가 분명히 있다. 움직이는 노력은 해야 하지만, 생각하는 노력은 할 필요도 없고 하면 오히려 피곤하다. 


아무리 목표가 높고, 아무리 계획이 좋아도, 매일이 나의 성장이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다. 어떤 때에는 그저 생존하는 것이 성공인 경우도 있으니까 말이다. 식물들도 그저 쭉쭉 키를 키우고 체급을 올릴 때가 있고, 꽃 피우고 열매맺어야 할 때가 있다는 걸 안다. 직장인은 더 그렇다 


성장에 목 말라야 할 때가 있고, 생존에 만족해야 할 때가 있다. 


어쩌면 이것이 직장인의 지혜인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적이 일상이 되게 하는 3분 시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