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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Apr 27. 2023

이 나이에 이런 유치한 싸움박질을

얼마남지 않은 자존심은 지켜야 하겠기에

나는 미국에 살아 본 적은 없지만 출장은 여러 번 갔었고, 캐나다에 살면서도 몇 번 국경을 넘어 간 적이 있다. 미국에 살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좀 무례하다. 특히 발음이 좀 어색하다 싶으면 무시하는 경향이 보여 별로 유쾌하지는 않았다.  


캐나다는 그런 면에서는 관대한 편이었다. 영어와 불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는데, 대부분이 영어와 불어 모두를 능숙하게 하지는 못하고, 불어도 좀 변형이 된 것이라 프랑스 현지 사람들은 캐나다 불어를 알아듣기 어려을 정도란다. 그래서 캐나다에서 쓰이는 불어는  “퀘벡불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으로 불린다. 


그래서 그런지 캐나다에서는 영어든 불어든 발음이나 표현을 크게 따지지 않고, 생활 양식이 서로 다른 것에 대해서도 이해를 많이 해 주는 편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미국이 melting pot으로 불리는 반면 캐나다가 true multicultural country라고 스스로를 칭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캐나다에도 기존 세력인 백인들의 우월주위는 수업 중에도, 농담을 할 때도 이따금씩 보일 수 밖에 없다. 처음에는 그럴 땐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 사실 반박을 하려고 해도 문장을 머릿속으로 만드는 중에 상황은 지나가버리니 반박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계속 그냥 지나가니 그래도 되는 줄 안다. 그래서 한 번 센 척을 해야겠구나... 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반격을 시도한 적이 몇 번 있다. 


한국에서 영어로 이름을 쓰면 1세들은 보통 한 글자씩 떼어서 쓴다 – 예를들어 홍길동이라면 Kil Dong Hong. 그런데  이렇게 쓰면 캐나다에서는 직관적으로 Kil을 first name, Dong을 middle name, Hong을 family name이라고 인식한다. 그래서 “그게 아니고 'Kil Dong'이 합쳐져서 first name이야" 라고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보통은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어느 날은 동기생인 백인 한 명이 “그런데 왜 너희들은 이걸 떼어서 써? 헷갈리잖아” 라고 시비 (?) 아닌 시비를 건다.  순간적으로 아, 이건 한 번 붙어볼 만한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물어보았다. “아라비아 숫자 0, 1, 2, 3, 4, 5, 6, 7, 8, 9가 인류의 위대한 발명 중 하나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도 어떤 숫자가 가장 위대한 발명이라고 하는지 알아?”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잘난 척 좋아하는 그 친구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0이라고 하면서 친절하게 설명까지 덧붙인다. “없다라는 개념을 숫자로 표현한 거 대단하지 않냐?” 그래서 내가 이어붙였다. “우리는 space도 문자로 써 – 없다라는 개념을 문자로 쓸 생각을 한 거 대단하지 않냐?”라고 했더니 잠시 망설이더니 야, 그럼 Dong 의 D는 소문자로 써야지 라고 우기길래 그럼 McDonald의 D는 왜 대문자로 쓰냐? 라고 했더니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맥도날드든 길동이든 고유명사이긴 마찬가지니까.


나도 내가 내 뱉은 내용이 문법적으로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잘 모른다. 맥도날드를 대문자로 쓰건 소문자로 쓰건 내가 알 바도 아니다. 그저 얕보이기 싫어서 한 번 발끈해 본 것이다. 


그리고, 한 번 발끈해 본 김에 한 발 더 나갔다. 야, 근데, 너희는 왜 로마 알파벳을 English alphabet이라고 불러? 그리고 왜 너희 나라 말을 Canadian 이라고 안 하고 English라고 해? 우리가 우리 말을 Korean이라고 하는 것처럼 너희는 글자는 없어도 언어라도 Canadian이라고 부르면 안 돼? 


세종대왕 만세. 그렇다. 미국도 그렇지만, 캐나다에는 자신의 문자가 없다. 영어 자체가 스스로의 문자는 없는 언어니까. 물론 그런 것으로 우월감을 뽐내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친구는 가끔씩 백인들의 기준이 우월한 것 처럼 생각하는 듯 한 발언을 하기에 한 번 싸워준 것인데, 그 후로는 시비를 거는 일이 없었다.  


나도 안다. 유치한 거. 그래도 기죽지 않기 위한 내 나름의 자구책이었다. 


수업 시간에도 가끔 시비 (?) 가 붙는다. 특히 1학년 때는 말빨 정말 좋은 친구들이 자기들 얘기를 열심히 주장하고 있는데 (근데 말이 말을수록 헛점이 많다), 혹시라도 영어도 잘 못하던 내가 어눌하게 초를 치는 발언을 하면 열을 내면서 자기 방어를 시작하곤 했다. 다른 학생에게는 몰라도 나에게는 밀릴 수 없다는 의지가 보이는 듯 했고 (내가 너무 예민했을 수도), 적어도 내가 유창한 영어로 반박을 하지는 못할 거라는 것을 알고 그러는 듯도 했다. 특히 내 질문이나 코멘트가 본인들의 주장에 치명적인 경우에는 법률 토론과는 살짝 관계가 없는 말들을 (왜 있지 않은가… 변호사 영화를 나오면 변론에 섞여 들어가는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나드는 인격 모독적 발언들) 지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선을 넘는 경우도 물론 있는데, 그걸 누가 대신 방어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영어로 논쟁을 할 영어실력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불킥을 하기를 수십 밤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자존심 상하는 건 할 수 없지만, 마지막 딱 한 가닥 자존심은 지켜야겠다. 


그리고 나는 복수를 계획했고, 복수에 필요한 시나리오를 몇 개 짜서 거기에 필요한 몇 가지 문장을 틈만나면외우고 또 외웠다. 아무 때나 튀어나올 수 있도록.  


그 날도 한 친구가 내 질문에 반박을 하면서 열변을 토한 후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한겨울에 엉덩이를 까고 있어야 한다 (와 비슷한 내용이었는데,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고 농담을 했다. 인신공격이 아니라 농담인 것을 듣는 학생들과 교수님이 다 알았지만, 그 말이 끝나자 마자 내가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 말 끝나자마자 바로. 보통은 머릿 속으로 반박문을 작성하다가 시간은 지나갔지만) 이렇게 말해 주었다. 


I can do anything to arouse you, honey. (당신을 성적으로 흥분시킬수 있다면 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


참고로 상대방은 남자였다 – 아마도 여자였다면 이렇게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말했더니, 강의실에 잠깐 침묵이 돈다. 평소처럼 가만히 듣고만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하지 않았던 반격. 내가 쓸 만한 수준을 넘어서는 영어. 


수업 중에 인신 공격처럼 보이는 말이 또 나오면 써 먹으리라 생각하고 연습하고 연습하던 (안 그러면 말할 기회를 놓치니까), 내가 한 번 써 먹으려고 벼르고 별러 준비했던 무기 중 하나였는데 마침 적절한 상황을 만들어 준 것이고, 내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어차피 서로 농담처럼 얘기한 거니 곧 웃음이 터지기는 했지만 가끔씩이라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기가 죽을 것 같았다. 경험상 기세라는 건 아무리 머리로 생각한다고 해도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외부로 보일 때까지 안으로 가다듬어야 하는 것이라, 이렇게라도 기세를 유지하고 싶었다.


미국에 살면서 만족도가 높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영어를 잘 하느냐 못하느냐 라고 한다. 그렇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불편을 넘어 불행하게 느낄 수도 있다. 로스쿨에서야 이 차이는 더 클 수 밖에 없다.


만족감이 떨어지는 그 상황을 버티게 해 주는 도구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그 중에서 자존심을 택했고, 그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는 데에 시간과 노력을 썼다 


다행히 1학년을 버텼더니, 2학년 부터는 영어가 많이 편해졌고, 그 이후에는 영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외국에 나가려면 우선 그 나라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언어가 섞이지 않으면 공부든 일이든 그 한계가 너무 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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