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아플 권리도 없다.
보통 “번다”고 하면 돈을 버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벌 수 있는 것은 돈 한가지가 아니다. 시간, 지식, 경험, 동료 모든 것이 버는 대상이 될 수 있다. 나는 직장 생활 중에 여러가지 다른 일을 시도하면서 시간을 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돈으로든, 노력으로든, 뭐로든 살 수만 있다면 다른 것보다 시간을 사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 중 하나였다.
그런데, 로스쿨을 오니 시간이 정말 귀해졌다. 물론 이건 나의 영어, 특히 읽기의 속도가 많이 떨어져서 생기는 일이고, 대부분의 다른 학생들에게는 시간이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아닌 듯 했다. 주말마다 파티를 하는 동기들도 많았고, 워털루 대학 공대를 나온 동기 한 명은 학부시절보다 오히려 시간이 남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워털루 대학 공대는 힘들기로 유명하다).
시간을 버는 가장 뻔한 방법은 잠을 줄이는 것이다. 나는 로스쿨 1학년 때는 "잠을 자는"것이 아니라, 책상에서 버틸 때 까지 버티다가 "침대에 쓰러지는" 것을 반복했다.
처음에는 "까짓거, 고 3 한 번 더 하지 뭐" 라고 생각했다. 나름 4당5락의 입시지옥을 버텨낸 세대 아닌가. 그런데, 10대 때와는 체력이 달라서인지 생각보다 버티기 힘들었다. 고 3때는 새벽에 너무 졸리다는 생각은 했어도 잠을 자는 것이 꿈 같은 행복은 아니었다. 하지만, 로스쿨 1학년 시절에는 잠자리에 눕는 그 순간 극치의 행복을 맛보았더랬다. 잠자리에 눕는 것 만으로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잘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 될 수 있다니... 라는 생각을 매일같이 했다.
잠을 줄이는 것은 한국에서 고 3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오랜 시간 수면 부족으로 생활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단순히 졸려서 그런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시간의 효율성이 떨어져서 그렇다.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초파리도 잠을 자지 못하게 하면 스트레스가 올라가고 행동 효율이 떨어진다고 한다. 그러니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공부의 효율을 높여야 하는, 하지만 영어는 불편하고 여전히 잠은 부족한 1세 로스쿨 학생들은, 효율이 필요한 일은 덜 졸릴 때 하도록 매일의 일정 관리를 잘 해야 한다.
어찌되었든 영어가 부족한 상태에서 로스쿨을 버텨내려면 잠을 줄여 시간을 만들어 더 많은 시간을 공부에 쓰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해 주는데, 그럼 꼭 이런 질문이 따라온다. 아침형 인간이 좋을까요, 저녁형 (올빼미형) 인간이 유리할까요?
요즘도 그렇지만 일반적으로는 아침형 인간이 주목 받는다. 자수 성가, 성공 사례의 대부분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남들보다 서너시간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특히 COVID-19의 영향을 받던 시기에는 한창 조기 기상이 유행해서 4시 30분에 일어나는 도전 유튜브 프로그램들이 많이 늘어났고, 또 인기도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에 그건 전적으로 개인의 성향이다.
러셀 포스터라는 영국의 신경과학자는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의 유일한 차이점은 아침형 인간이 지나치게 우쭐댄다는 정도라고 했다.
대부분의 로스쿨은 각 학교만의 law journal을 발간하는데, 이 책자는 그 로스쿨의 학문적 얼굴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스쿨마다 가장 신경을 쓰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이 law journal의 품질이다. 당연히 이 law jounal의 편집부에 들어가는 것은 경쟁도 치열하고 선발 기준도 까다로와서 하늘의 별 따기이고, 어느 로스쿨 출신이든 law journal 편집부에 있었다고 하면 어느 로펌에서도 무시받지 않는 경력이 된다. 그 중에서도 딱 한 자리뿐인 학생 편집장을 하기는 더 어렵다. 2학년 때 실력을 검증받은 사람 중에서 교수 편집장과 다른 편집위원들의 신망을 얻어야 3학년 때 따낼 수 있는 자리다.
지금 나와 함께 일하는 여자 변호사는 같이 Osgoode Law School에서 공부한 한국인인데, 이 분이 바로 이 학생 편집장 출신이었다. 그런데, 전형적인 올빼미형이라 학생 때는 물론이고 함께 일하는 지금도 내가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 늦게 출근해서 밤 늦게까지 사무실을 지킨다. 나는 새벽같이 사무실에 나간다. 그래서 조금 과장하면 우리 사무실에는 24시간 불이 켜져 있다.
나도, 그 여자 변호사도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업무를 하는 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러니 아침형이든, 저녁형이든 공부하고 일하는 데에는 별 차이가 없다고 봐도 된다. 일단 잠을 줄일 수만 있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좋은지 밤에 늦게 자는 것이 좋은 지는 정답이 없다.
낮잠도 좋은 방법이다. 쓰보다 사토루라는 일본의 수면 전문가에 따르면 하루에 한 번만 잠을 자는 것은 사자처럼 먹이 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동물들 뿐이라고 한다. 과거 인간처럼 먹이사슬의 아랫쪽에 있던 동물들은 하루에 두 세차례 잠을 잤다는 것이다. 그러니, 1-2시간 짜리 잠을 2-3번 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떤 방법을 쓰든, 영어가 불편한 상황에서 로스쿨을 왔다면 잠과의 전쟁은 각오해야 한다. 적어도 1학년 때는 그래야 한다. 심지어 영어권 학생들에게도 교수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1학년 때에는 너희는 아플 권리도 없다.
무슨 나치 수용소에서나 들을 법한 말이지만, 사실이 그랬다. 잠을 다 자면서 좋은 학점을 받고, 명망있는 로펌에 들어가기를 바라기는 어렵다. 하지만, 다행히 1학년이 지나니 요령이 생겨서 잠과 전쟁까지 할 필요는 없어졌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