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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Nov 25. 2022

청매실과 매실청

속은 매실청이고 겉은 청매실이고 싶어라

캐나다에서 가정의를 만나면 우리 가족에게 꼭 당부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외선 차단제, 일명 썬크림을 바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야외에 나갈 때에는 썬글라스를 착용하라는 것이다. 캐나다의 햇빛이 한국과 다르니 두 가지는 꼭 지키라고 한다. 


그런데 어쩌나 - 나는 얼굴에 뭘 마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썬글라스를 쓰는 것도 불편하지만, 얼굴에 뭔가를 덮는 것이 영 마땅찮다.  


의사가 권하는 썬크림도 바르지 않는 판에 로션이 달가울 리 없다. 하지만, 아내와 딸의 등쌀에 아침마다 세수하고, 이 닦은 후에, 딸이 사 준 에센스인지 로션인지를 한 방울 찔끔 짜서 최대한 얇게 얼굴에 펴 바른다. 한 방울로 될까 싶겠지만, 얼굴과 손에 물기를 충분히 묻히고 바르면 한 방울로 충분하다.  


그런데, 딸이 자기 전에도 뭔가를 바르라고 한다. 남친이 생기면 아빠는 뒷전으로 밀려날 테니, 그걸 생각하면 아직 챙겨주는 것을 감사해야 하지만 그래도 귀찮은 걸 어쩌랴. 


내가 강하게 반항하니, 아내도 옆에서 주름이 늘어난다면서 잔소리다. 아내의 지원 사격에도 내가 꿋꿋하게 버티자 딸이 씩 웃으면서 한 마디 한다.  


아빠, 예전에는 아빠 얼굴이 청매실이었는데, 지금은 매실청이야. 


쭈굴꾸굴하다는 말이렷다. 6살에 캐나다에 온 딸이니 이 정도로 국어를 사용해 주는 것은 기특하지만, 그래도 그런 말은 아빠를 측은하게 바라보면서 해야 하는 말 아닌가 말이다. 저렇게 맑게 웃으면서 아빠보고 늙었다고 하다니. 나쁜 딸 같으니라고.  


그래, 너도 언젠가는 숙성된 매실청이 청매실보다 낫다는 걸 알꺼다.. 라고 큰 소리는 쳤지만, 그래도 거울은 한 번 보게 된다. 매실청인가... 겉만 숙성된 매실청처럼 보이고, 속은 덜 익은 청매실이면 최악인데.  

속도 매실청이 되든가, 겉을 청매실처럼 꾸며보든가.  


고민하다가 오늘은 아내 몰래, 딸 몰래, 자기 전에 딸이 사 준 로션을 발라본다. 효과 없기만 해 봐라... 벼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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