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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Nov 29. 2022

용이 되지 않기로 한 이무기

눈이 되지 못해서 비로 내리는 것이 아니다

올 캐나다의 겨울은 추위가 늦다. 추위를 싫어하는 나한테야 다행스러운 일이다.  보통 10월 중순이면 문을 닫게 마련인 골프장들은 신바람이 났다. 낼 모레면 12월인데 토론토에서 골프라니. 어제부터 늦은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기에 추워지나보다, 생각했는데, 아직은 아닌가 보다. 


커피를 마시면서 비를 보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가을비는 눈이 되지 못해서 비로 내린 것일까. 아니면, 힘을 다해 버텨서 눈이 되지 않은 것일까.


이무기로 살아가는 것을, 용이 되지 않기로 한 이무기의 기쁜 선택이 아니라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의 슬픈 패배라고 어려서 배운 우리는, 오르지 않은 것도 오르지 못한 것으로 보는 것에 익숙하다. 모두가 오르는 길만을 걷고 싶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캐나다에 와서 동네 사람들을 알아가는데, 뜻밖에도 승진하면 개인 시간이 줄어 승진하지 않았다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처음 누군가가 말했을 때에는 이게 무슨 말도 안 될 변명이란 말인가, 참 신뢰가 안 가는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하다가, 여러 명에게 듣고 나서는 캐나다에는 자신의 능력이 떨어지는 걸 인정하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나보다...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업무 강도가 높아지는 것이 싫다고 승진을 거부한 캐나다인 덕분(?)에 팀장으로 승진한 한국분의 말씀을 듣고, 하지 않은 것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는 내 시각을 반성했었다. 어쨌든 치열함을 좋은 가치로 배우고 산 나에게는 일을 많이 하기 싫어서 승진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즐비한 캐나다 문화가 아직도 좀 낯설다.

 

쌀이 밥이 되지 못하는 것은 물이 끓지 않아서라고 고등학교 때부터 선생님께 듣고 또 듣지 않는가. 99도에서 멈추어도 밥은 되지 않으니, 10도, 20도 올린 노력이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쌀이 꼭 밥이 될 필요는 없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니 물은 꼭 100도로 끓어야만 하고, 그렇게 선택지는 늘 하나 뿐이니 우리는 유독 패자가 많은 문화를 만들어 내었나보다. 


나는 여전히 쌀은 밥으로 거듭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여유보다는 치열함을 더 바람직한 가치로 치는 해외 취업 1세대, 자칭 타칭 꼰대다. 


하지만 캐나다에 살면서 시각은 좀 넓어졌으니, 어제 내린 비는 눈이 되지 않으려고 힘껏 버틴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애썼다, 가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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