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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Nov 23. 2022

만만하게 여겨지는 축복

아빠를 만만하게 보아다오

내 아이들은 아빠 알기를 우습게 안다. 물론 어렸을 때야 아빠가 영웅처럼 보였을 지도 모르지만, 대학을 졸업한 지금은 아빠의 말은 잔소리이고 아빠의 행동은 꼰대의 몸무림이다.  


그런데, 난 그게 참 다행이다 싶다.  


어느 심리학자가 분석해 놓은 글을 본 적이 있다. 부나 명예가 있는 집 아이들이 없는 집 아이들보다 권위를 잘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의사을 만나거나, 선생님을 만나거나 하는 상황에서 물어 볼 것 다 물어보고, 할 말 다 하는 경향이 부나 명예가 있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더 뚜렷다는 말이다. 부나 명예가 충분하지 않으면 귄위에 쉽게 순종한다고 한다.  


그 심리학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추측했다. 부나 명예가 있는 집에서는 부모가 귄위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우니, 아이들도 그런 태도를 배운다는 것이다.

  

글쎄, 부나 명예가 없다고 해서 귄위에 순종한다는 부분은 쉽게 동의할 수 없지만, 뭐, 이해는 가는 설명이다. 아이들이 더 머리가 크면, 이제 부모의 태도를 배우는 것을 넘어서서 아빠나 엄마가 이룬 것을 낮추어 보는 경향도 우리 집을 비롯한 많은 다른 가정에서도 발견된다. 우리 아이들은 아빠나 엄마가 한 일, 이루어 놓은 것은 자기들도 손쉽게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엄마가 만삭의 몸으로 석사를 마친 것도, 아빠가 나이 40에 캐나다에 와서 변호사가 된 것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우스운 일이다. 만만한 아빠가 해 낸 일이라면 나라고 못할까... 싶은 것이다. 우스워 보이니 어려워 하지 않고, 어려워 보이지 않으니 필요하다면 시도하기를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다. 혹시나 중간에 어려움을 겪더라도, 아빠도 했는데 이 정도야, 하면서 이겨낼 것이다.   


어렸을 때 읽은 소설에 (일본 소설이긴 하지만) 씨앗을 심고 매일 뛰어 넘는 연습을 했더니, 씨앗이 싹이 터 큰 식물이 된 후에도 뛰어넘을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몰론 소설이니 상상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미 큰 식물을 뛰어 넘으라면 시도조차 안 했을 일을, 만만한 씨앗일 때와 어린 식물일 때 부터 넘다보니, 식물이 큰 후에도 넘을 수 있게 된다는 설정이 시사하는 바는 있다. 

 

그러니, 나는 부담을 가지고 자꾸 새로운 것에, 더 어려운 것에 도전할 것이다. 더 하기 어려운 것을 해 놓아야 이 녀석들이 뭐든 더 만만하게 볼 것 아닌가. 뭘하든 겁이 나서 도전을 포기할 확률이 줄어들 것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환갑에도, 70에도, 숨이 붙어 있다면 80에도, 나는 뭔가를 시도할 예정이고 이루지 못해도 달려 볼 예정이다. 아이들이 더 많은 것들을 만만하게 볼 수 있도록, 세상에 쉽게 순종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해 줄 예정이다.  


내 아이들에게 만만해 보이는 것, 어찌 즐겁고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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