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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Nov 28. 2022

절박함이 빠진 부지런함

나는 절박한가?

나는 한국에서도, 캐나다에서도 출근이 빠른 편이었다. 아무도 없는 아침 근무 1시간은,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낮 근무시간으로 볼 때 3-4시간에 해당하는 효율을 자랑한다.   


로스쿨 학생으로 오타와에 있는 지적재산권 로펌에서 여름 방학에 인턴을 할 때에도, 내 업무 처리 속도가 느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6시에 나가서 일을 시작했다. 떨어지는 속도를 만회하려면 더 부지런한 수 밖에는 없다. 


내가 일하던 지적 재산권 로펌은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에 있었다. 토론토도 그렇지만, 오타와는 자기 집이 없는 노숙자들이 많다. 그런데, 캐나다의 수도라서 그런지 노숙자가 머물 시설도 많고 의식주에 대한 지원도 풍부해서 의식주 해결은 기본이고 겨울에는 양말이며 내복까지 지원이 된다고 들었다. 오타와의 지원이 얼마나 좋은지 토론토 노숙자들의 꿈이 오타와로 옮겨오는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내가 6시에 로펌에 출근을 해도 항상 나보다 먼저 회사 건물 앞에 나와서 구걸을 하는 노숙자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여름이었으니, 6시면 날도 밝고 춥지도 않기는 하다. 하지만, 그 시간에는 나 말고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길거리에서 혼자 구걸을 하면 이른 아침 시간을 투자한 것 치고는 시간 대비 효용이 너무 떨어지지 않는가. 노숙자인데도 그렇게 부지런하시다니. 나름 감동받은 나는 가능하면 아침마다 잔돈을 준비해서 드리려고 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12시에 점심을 먹으러 나갈 때에 보면 이미 그 노숙자 분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한참 사람이 많아 사실 아침 시간보다 훨씬 구걸의 효율이 좋을텐데, 이 황금시간대가 되기 전에 일종의 “퇴근”을 하는 것이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더 장소가 좋은 곳으로 간 것일까. 하지만, 처음 있던 자리가 푸드코트 앞이라 더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동료들에게 이야기하니, 오타와에 사는 동료가 말하기를, 자기 생각에 다른 도시의 노숙자에 비해 오타와의 노숙자는 절박하지 않다고 했다. 구걸을 전혀 하지 않고도 사는데 불편이 없기 때문에 굳이 구걸을 할 이유도 없으니, 부지런하게 아침 일찍 나오는 것이 신기한 일이지 열심히 구걸하지 않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오타와에 노숙자는 적지 않았지만, 얼굴이 어두운 사람들은 없었다. 토론토 다운타운에 가면 차가 빨간 불에 서 있을 때 갑자기 다가와 요구하지도 않은 차 유리 청소를 잽싸게 하고는 돈을 달라는 사람들이 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오타와에는 그럼 열심을 볼 수는 없었다. 


동료의 말을 듣고 예전에 함께 일하던 독일인 보스가 해 준 일화를 생각났더랬다. 


자기가 어렸을 적 자라던 마을에 한국인 한 명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단다. 이 한국인은 시계수리를 했는데, 처음에는 당연히 가게에 손님이 없었다. 


일단 그 마을 사람들은 시계에 대한 한, 독일 장인에 대한 믿음이 더 컸다. 그리고 아무래도 작은 마을에서 함께 살아온 독일 사람이 운영하는 시계방에만 가게 되지, 타지에서 온, 그것도 외국인임이 확실한, 동양인 시계 수리공의 가게에 가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이 한국인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문을 열었고 주말이나 휴일에도 문을 닫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보통 평일에도 5시만 넘으면 사무실이나 가게 문을 닫아, 몇몇 음식점을 제외하면 저녁에 불 켜놓은 곳이 별로 없던 도시고 또 대부분의 다른 독일 도시도 상황이 마찬가지였던 시대였기 때문에 시계방에 고객이 있을 것 같지 않은데도, 그 한국인은 꾸준히 문을 열더라고 했다. 


그런데, 시계가 평일 낮에만 고장이 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그 시절에는 가정에 시계가 여러 개 있는 것이 아니어서 밤에 고장이 나거나 휴일에 고장이 나면 한국인 가게에 갈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독일인 시계방에도 “일요일에 시계가 고장나서 할 수 없이 한국인 가게에 갔어”라고 하면 충분한 변명이 되었다. 


그런데, 맡겨 보니 한국인 시계공의 솜씨가 훌륭한거다. 가격도 독일 시계공보다 저렴했다. 또 저녁에 맡겼다고 다음 날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저녁에 맡겨도 밤에 수리를 해 오더라고 했다. 그러다보니, 한국인 시계방에 손님이 늘고, 또 그러다보니 독일인 시계방도 이제는 저녁에 일찍 문을 닫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사업 분야에도 한국인이 한 두명씩 더 들어오면서 식당에도, 세탁소에도 점점 그런 일이 늘어났다고. 


그런데, 그런 일이 그 동네에만 일어난 것은 아니라 옆 동네에서도, 멀리 떨어진 동네에서도 일어나니, 자영업을 하는 독일 사람들은 한국인이 자기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싫어했는데, 그 이유는 “삶의 질이 떨어져서”였다고한다. 


한 쪽은 생존을 걸고 있는데, 한 쪽은 삶의 질을 따지고 있다면 그 경쟁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절박함은 의미있는 변화의 시작이다. 


부지런한가? 요즘 많은 사람들이 되고 싶어하는 아침형 인간인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무엇 때문에 부지런을 떨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부지런함은 분명 기회를 만드는 열쇠지만, 절박함이 없는 부지런함은 그저 자기만족만을 남기고 사라진 경우가 허다하다. 부지런함은 절박함이 뒷받침 되어야 힘이 있다. 


절박함은 내게 구체적인 목표를 준다. 절박함은 나를 행동하게 한다. 그래서 절박함은 나의 노력을 의미있는 것으로 바꿀 수 있는 변화의 시작점이다. 3040 직장-인인데도 절박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점심 시간 황금 시간대가 되기 전에 구걸을 멈추는 그 노숙자와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늘 저녁에 고객이 시계를 맡겼는데, 내일 수리하려고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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