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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Nov 28. 2022

타짜와 탓짜

이 판의 호구는 나일지도 모른다

나이 40이 될 때까지, 직장 생활을 15 넘게하는 동안, 나는 줄곧 회사가  나이고 회사의 발전이  나의 발전인 문화에서 근무했다나름 직급대비 회사에 기여한 바가 많다고 생각했고회사가 지속적으로 나의 기여를 평가해  것으로 기대했다

 

실제로 직장 생활 전반부에는 그런 부분이 있었다그리고 5년차가 넘어 10년차에 접어들 즈음에는, 적어도 종사하던 업계 내에서는, 명함이 없어도  회사 이름이 아닌 내 이름으로 나를 소개할  있는 위치는 되어 있었다같은 업계에서 10 이상 직장생활을 했다면 아마도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어느 순간부터 나를 고용한 회사에서  수고에 화답하지 못하기 시작했다심지어 내가 몸담은 독일계 회사는 개인의 성과에 따라 주던 승진이나 임금 인상라는 보상을 직원간 경쟁 구도로 전환시켰다한국 지사의 전체 연봉 인상분을 고정시킨  부서 연봉이 많이 올라가면  부서 연봉 인상 폭이 줄고같은 부서에서는 동료의 인상분을 빼앗아 와야  월급이  인상될  있게  것이다

 

자괴감이 들지 않은 동료는 없었다그리고 비슷한 직급끼리 점심시간에혹은 휴게실에서 모이기만 하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지금 다른 것을 시작해야 할까늦었을까 정상은 아니지만그래도 중간 봉우리까지는 왔는데올라가는 김에 조금  올라가 볼까그런데  산은  높아 보이기는 하는데 산을 옮겨 타는  정답인가.

 

하지만, 늘 결론은  상황상 완전히 새로운 시작을 하기는 힘들다이미 이룬 것을 포기하기는 힘들다  혹은    하고 아이들 대학이라도 들어가면  길을 생각해보자 이런 거였고그렇게 술자리로까지 이야기가 이어지면 결국 충분한 대우를  주지 않는 회사 이미 들어버린 나이 탓을 하고 끝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허영만 화백의 타짜라는 만화는 영화로까지 만들어져서 히트작이 되었다타짜는 운에만 기대는 도박의 룰을 바꾸어패를 만들어서혹은 판을 만들어서 판을 지배하고 판돈을 딴다자기 패를 자기가 만들어 내려고 하고남의 마음을 자신이 읽고 지배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 만화에서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다 – 주위를 둘러보아도 누가 호구인지 모르겠으면, 바로 네가 호구다. 


호구가 누구인가. 실력도 없으면서 도박판에 끼어 없는 실력이나 운에 기대다가 돈을 잃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호구들은 가진 돈을 잃고 나면 고리로 돈을 빌린다돈이  많으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 돈을 빌려주는 사람들도 결국 타짜들과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돈 빌려줄 때에는  가지 규칙이 있다 – 조금 모자란 듯이 빌려주라는 것이다그래야  호구는 실력이 모자라서 돈을 잃었다는 생각하지 않고 자금이 모자라서 잃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그리고 계속 고리로 돈을 빌린다는 것이다

 

호구의 끝은 결국  탓이고  탓이다밑천이 적어서 잃었다네가 처음부터  돈을 빌려주지 않아서 잃었다이런 것들이다

 

그래서 호구들은 "탓짜"다탓하는데 능하다. 마치 동료들과 회사 탓, 나이 탓을 하고 있던 내 모습같다. 

 

회사의 임금인상 정책이 변경되었을 동료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회사 탓을 하고독일 탓을 하고업계 탓을 하던 나는 돌아보면 탓짜였다. 호구였다. 내가  동안 쌓은 것이 분명히 있는데그것으로 내가 움직여   있는 판을 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내가 호구인 판에서  탓만 하고 있었다

 

3040 직장인은 대부분 타짜가   있는 밑천이 있다하지만탓짜의 버릇을 버리지 않으면  밑천을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한국 대기업 중에 대덕 연구단지에 생명과학 연구소를 두고 있는 기업이 있다 기업에서 어느 해인가 추석 보너스를 주었는데자회사에서 만들던 생활용품 세트였다고 한다연구원들은 불평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니추석 보너스가 이게 뭐야보너스라고 생색내면서 자회사 재고 처분을 하겠다는 거야 쪽에서 일하는 동료가 이거 원가는 xx 원이라는데별별 소리가  나왔다고그런데   명이 자기가  제품을 사겠다고 했단다다들 옳다구나 하고 팔았다집에 가면 치약 치솔 비누는 쌓여 있던 사람들이 많았으니, 선물세트를 하나 더 가져간들 집에서 환영받을  만무고 그럴거라면 5만원, 10만원이라도 현금이 낫다 생각한 것이었다

 

그런데그렇게 생활용품 세트를   직원은 연구소 부근의 가게에 물건들을 가지고 가서 거래를 제안했단다 – 무자료 현금거래를가게 주인도 기꺼이 오케이그래서  직원은 두둑한 현금 추석 보너스를 집으로 가지고 갔다고 한다. 여기서 승자는 이 직원과, 무자료로 물건을 싸게 받아 어부지리를 얻은 가게 주인이다. 


탓짜의 이익은 항상 타짜에게로 넘어가는 것은 비단 도박판 뿐만이 아니다.

 

타짜가  것이냐탓짜가  것이냐. 3040 직장인에게는 탓짜의 유혹이  많고 열매가 일단은  달콤하다동료들과 함께  탓하는  맛은   사람만 안다하지만, 탓짜의 끝은 호구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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