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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Apr 06. 2023

이번에는 어머니가 틀리셨어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는데


1960년대 초 어느 날, 수위 아저씨 말고는 남자가 없다던 금남의 구역인 이화여대 교정에 좀 나이 있어 보이는 남학생이 슬리퍼를 끌고 나타났다. 처음 보는 상황에, 지나가던 여학생들이 그리고 교정에 앉아 쉬던 여학생들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며 수군거렸지만, 남학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대 학생회장실을 물었다. 


뭐하는 사람이지 – 모든 여학생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피아노 전공으로 추후 이화여대 음대를 수석으로 졸업할 한 여학생도 그  수군거림 중에 끼어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남학생은 추후 4.19혁명이라고 이름붙은 학생 운동을 이화여대 학생회장과 협의하러 온 건국대학교 학생회장이었다. 데모라니. 혁명이라니. 대학생 시절부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훗날의 이대 음대 수석 졸업생은 그런 일에 신경쓸 여유는 없었고, 그렇게 4.19혁명은 지나갔다.  


졸업 후 여러 중매쟁이로부터 들어온 좋은 혼사자리를, 왜인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자리마다 마다하고 피아노 레슨으로 생계를 꾸리던 그 여학생은, 가진 것은 친구들 밖에 없는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서야, 그 남자가 이대 교정을 슬리퍼 채로 방문했던 남학생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4.19 혁명에 참여한 인사들은 그 공은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국가 전복을 꾀할 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나라의 감시 대상이 되어, 취직하는 곳마다, 하는 사업마다 방해를 받아,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6.25 전쟁통에 이북에서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자원하여 혈혈단신으로 남한으로 오게 된 그 남학생에게는 생계를 도와 줄 변변한 친인척도 없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생사를 함께한 친구들 밖에 없었으나, 친구들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  여학생은 결혼 후에도 30여년간 피아노 레슨으로 가족의 생계를 꾸려야 했다. 


어려운 살림에도 남편과 아들 둘을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그리고 전 재산으로 알고 살던 그 여학생은 2012년 남편을 먼저 하나님 곁으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남편이 죽은 그 집을 지키다가 남편 곁으로 가고 싶었던 그 여학생에게는 자신의 마지막에 대해 3가지 바램이 있었다.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사망하기. 잠 자다가 사망하기. 화장하지 않기.


나이 들어서도 고집있고 깐깐해서 두 아들과 두 며느리들에게 인심을 얻지는 못했던, 심지어는 무조건 할머니 편일 것 같은 손자, 손녀에게도 큰 인기는 없었던 그 여학생은, 그 3가지 바램을 2023년 3월에 다 이루고, 지난 10년간 그렇게 그리워했던 남편 곁으로 육신과 영혼을 모두 보냈다. 


그 고집있고 깐깐한 여학생이 내 어머니셨다. 


아버지 기일마다, 매년 4월 19일마다, 그리고 명절마다 먼저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면서 굽은 허리로도 음식을 차리고, 해외에 나가 사는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의 옷가지들을 계절별로 열심히 챙기시던 어머니는, 그냥 잘 계시기만 하면 되니 무리하지 말라는 아들들의 말에 이렇게 대답하곤 하셨다. 


그럴거면 뭐하러 사니.


주변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그것도 일리있는 말이었다. 나이들어서도 챙겨야 할 일, 해야 할 일이 있어야 활력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나이들어서도 뭔가 본인에게 의미있는 일이 있어야 하나보다, 생각했다. 


근데, 아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는, 당신들은 좀 지루하실 지 몰라도, 그냥 거기에 계셔 주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거였다. 그럴거면 뭐하러 사니, 라는 말은 틀린 말이었다. 어머니마저 떠나시고 나니 어머니가 틀렸다는 걸 확실히 알겠다. 


그래서 말씀드렸다. 어머니, 이번에는 정말로 어미니께서 틀리셨어요. 아무 일 안 하셔도, 그냥 거기 계시기만 하셔도 의미가 있는 거예요. 


하지만, 이번에도 어머니는 고집을 꺽을 생각이 없으셨다. 살던 집으로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없으셨다. 감았던 눈을 뜨실 생각이 없으셨다. 아버지와 함께 계셔서 좋으시단다.


참 고집센 양반이다. 도대체 누가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나. 


좋아요, 뭐. 계속 고집 부리시면 할 수 없지요. 그 고집을 누가 꺾겠어요 - 손녀도 못 꺾는 그 고집을. 그래도 제 부모님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번 세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지만, 그래도 틈틈이 찾아 뵐께요. 아버지랑 싸우지 말고 계세요. 안녕히 계시라고는 안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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