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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Jun 26. 2023

명품은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하는 것이다

명품 구매를 반대하지만, 가끔 변호한다

딸이 나에게 영어 유튜브를 시작 해야겠다고 한다. 흔히 보는 유튜버의 수입에 대한 환상 때문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우연히 친구들과 한국인이 영어를 가르치는 유명 유튜브 몇 개를 보았는데, 본인들 보기에는 발음도 틀리고, 내용도 정확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딸도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쳐 봤으니, 평가가 틀리지는 않았을 것 같다.


딸과 친구가 생각하기에 그런 허접한 (?) 콘텐츠를 가지고도 그렇게 많은 구독자를 거느릴 수 있다면, 자신들은 더 잘 할 수 있고, 더 제대로 된 영어 강의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딸에게 말해 주었다.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구독자가 많은 것이 아니라 영어를 잘 '파는' 사람이 구독자가 많은 거야.


그렇다. 이 유튜버가 영어를 잘 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면 나는 그저 영어를 잘 파는 유튜버의 채널에 홀릴 수 밖에 없다. 잘 파는 사람의 허접한 물건에 홀리지 않고 정말 좋은 물건을 고르려면 내게 그만한 안목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건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늘 궁금해 하던 것이었다. 도대체 안목은 어떻게 해야 갖출 수 있을까? 똑똑한 선배들의 안목은 어떻게 길러진 것일까?


출근 길에 매일 경제 신문 두 가지씩을 봐, 책을 많이 읽어, 불편해도 동기끼리 술 마시지 말고 상급자와 술을 마시면서 그 경험을 들어...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많은 조언을 들었고 실천했지만, 내 결론은 이거였다. 


안목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안목을 높여줄 것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 때 가장 좋아했던 과목은 물리였다. 틈만나면 국영수 제껴놓고 물리 문제를 풀어댔고, 웬만해서는 모의고사에서도 물리는 틀린 적이 없었다. 그랬더니, 나중에 물리 문제지는 한 두 페이지만 들쳐 보아도 좋은 문제집인지 아닌지 알 수 있었다. 많은 문제를 풀면서 나쁜 문제와 좋은 문제를 많이 접해 보았더니, 좋은 문제를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예술적 안목을 기르려면 좋은 예술 작품들을 많이 봐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많이 봐야 한다. 음악도 대중음악도 듣고 클래식도 들어봐야 한다. 그렇게 경험한 모든 걸 내 안에서 녹아내리면 그게 내 안목이 된다. 


좋은 걸 못 가져보면 어떤 게 좋은지 잘 모른다. 맛있는 것도 먹어봐야 어떤 것이 좋은 맛인지 알 수 있다. 


문제는 나쁜 것을 경험하기는 쉽지만, 좋은 것을 경험할 기회는 많지 않거나 비싸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명품이다.


명품 브랜드 제품 사는 건 사치가 맞다. 나는 명품이 하나도 없고, 그럴 욕구도 없으며, 일반적으로 명품 소비를 지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치라고 해도 명품을 사야할 때는 있다. 


명품을 내 안목을 기르기 위해 구매한다면, 그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고 나는 그러한 명품 구매를 지지한다. 그러려면 명품은 내 경험으로 소비되는 용도로 쓰여져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명품을 과시용으로 구매하고, 내 생각에 이건 제대로 된 명품의 용도가 아니니 지지하지 않는다. 


명품을 과시용으로 사면 나는 명품의 들러리가 되지만, 명품을 소비해서 내 안목을 기르면 내가 명품이 된다. 


지금은 위스키로 갈아 탔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내 주 관심사 중 하나는 와인이었다. 와인 수업도 들은 딸과 함께 와인을 골라, 주말에 서로 아는 지식을 뽐내며 품평회를 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딸과 함께 고르는 와인은 대부분 2-3만원 수준이었는데, 그 정도로도 참 좋은 와인이 많아서, 도대체 왜 비싼 와인을 마시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가끔은 사치를 부리기도 했는데, 그래도 5만원 선을 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집에는 후배가 선물해 준 50만원짜리 와인과, 고객이 선물해 준 30만원짜리 와인도 있었다. 차마 딸 수가 없어 진열만 해 놓고 있다가, 이번 father’s day에 아이들이 아빠에게 스테이크를 사 준다기에 과감하게 30만원짜리 이탈리아 Tuscan 와인을 땄다. 


그런데, 그 30만원 짜리 와인을 마시고서야 알았다. 그 동안 내가 마셨던 건, 와인이 아니라 포도 씻은 물이었다는 것을. 그 동안 책으로만 읽던, 그 다양하고 복잡한 용어들이 말하던 그 맛과 그 향이 무슨 뜻인지를, 그리고 그 동안 상상으로만 떠 올리던 그 맛을, 한 잔으로 다 알 수 있었다.


물론 나는 다시 2-3만원짜리 와인을 마시게 될 것이라는 걸 나는 안다. 30만원짜리 와인은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분명 사치니까. 그래도 나는 30만원짜리 와인을 구별해 낼 수 있게 되었다. 그 와인을 계속 진열해 두고 과시용으로만 사용했다면, 와인에 대한 내 안목은 계속 2-3만원에 머물러 있었을 거다. 


부자가 되기 위해 두 달 동안, 혹은 일 년 동안 열심히 돈을 모아, 호텔에서 하룻밤 밥값이나 숙박비로 돈을 쓰면서 부자들의 생각을 배우려고 애쓰다보니 결국 부자가 되었다는 말은, 어쩌면 사실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안목을 높였고, 그 안목이 그들은 다시 부자로 만든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안목을 기르기가 어려운 이유는 보고 듣고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다. 좋은 것, 나쁜 것을 다 경험해 보아야 하니까 말이다. 명품을 소비하다 보면 명품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유튜브로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구독자 많은 영어 유튜브 채널이 꼭 좋은 채널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열심히 경험해야 한다. 그래서 안목을 기르는 지름길은, 지름길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명품 소비를 조금은 변호하려 한다. 명품 소비로는 세계를 주름잡는다는 대한민국에서, 한국인들이 그렇게 해서 안목을 높일 수만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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