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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Jun 11. 2023

이기는 것, 후회하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것

승리의 반대말은 패배가 아니다

지고나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 내가 지고 싶어서 졌나. 


그 말이 맞을 것이다. 남에게 지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다. 능력이 안 되거나 실력이 안 되어 지는 것이니, 지고 싶어서 지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통념이다. 


그런데, 이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들 중에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 나보다 더 많이 땀을 흘린 사람이 있다면, 그래, 금메달 네가 가지고 가라, 라는 생각으로 경기를 했다고.  


땀을 흘리는 데에도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적용된다. 첫 땀방울이 나의 실력을 100 증진시켰다면, 나의 마지막 실력 1을 올리기 위해서는 백 방울의 땀이 필요하다. "나보다 더 많이 땀을 흘린 사람이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면, 흘릴 수 있는 마지막 땀방울까지 흘렸다는 뜻이다. 


지기 싫다면, 그래야 한다. 흘릴 수 있는 마지막 한 방울 땀까지 흘려야 "지고 싶어 진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할 자격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지는 않는다. 그렇게 하지 않을 충분한 변명과 합리적인 핑계가 우리에게는 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후회는 많이 부족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하나가 모자랄 때 한다는 것이다. 


그 마지막 하나를 채우는 것, 그 마지막 한 방울 땀을 흘린 노력을 견뎌내면 적어도 후회하지 않는 자리에 설 수 있다. 그럼, 마지막 하나를 채우기 위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의지? 정신력? 욕구? 목표?


그 어느 것도 아닐 것 같다. 후회하지 않는 자리에 서게하는 원동력은 간절함이 아닐까. 


1000등과 999등은 어쩌면 땀방울의 수도, 간절함의 크기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1등과 2등은 결과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지라도 그 간절함은 큰 차이가 난다. 


위로 올라가려는 간절함 보다는 있는 곳에서 더 밑으로 가지 않으려는 간절함이 항상 더 크다. 초보에서 1000등으로, 100등에서 100등으로, 100등에서 50등으로... 이렇게 위로 올라 갈수록 더 올라가기는 어려워지고 그래서 목표에 대한 간절함은 작아진다. 그러다 보면 더 이상 내려가지만 않으면 되지 않을까, 좀 더 오래 이 자리에 있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곳까지 가는 것, 그것을 승리라 부를 수 있다면 승리의 반대말은 패배가 아닐 것이다. 


승리의 반대말은 후회다. 간절함이 커도 2등을 할 수도, 20등을 할 수도 있겠으나, 간절함이 크면 후회하지 않을 곳까지 올라갈 수 있다. 20등으로도 승리할 수 있다. 

간절함이 큰 사람은 핑계를 찾지 않고 방법을 찾게 되는 데에 간절함의 힘이 있다. 그리고 간절함이 크면, 방법을 머리에 두지 않고 몸으로 메운다. 


승리와 후회 사이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를 속되게 표현하면 "개긴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상대도 되지 않을 것 같으나 굴하지 않고 맞서보는 조금은 무모해 보이는 반항. 그 개김이 나를 후회에서 끄집어내어 승리에 다다르게 한다. 그리고 개김의 기본은 견디는 것이다. 견디지 못하면 100년이 지나도 나아가기 어렵다.  


그 견딤을 가능하게 하는 것 역시 간절함이다. 간절함에도 종류가 있다면, 개김을 가능하게 하는 간절함의 근간은 후회에 대한 두려움이지 패배에 대한 두려움은 아닐 것이다.  


나는 얼마나 간절한가? 생각한다면 이렇게 물어보자 - 지금의 나는 무엇을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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