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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May 05. 2023

AI에게 그리움을 빼앗겼다

기억은 왜곡될 때 소중하다

나는 여행에서 사진 찍는 것을 그다지 즐기기 않는다. 함께 간 사람과 찍는 인물 사진이라면 모를까 굳이 멋있는 풍경이나 유명한 건축물 같은 관광 대상을 사진찍지는 않는다. 하지만, 열심히 보고, 눈에 담아두려는 노력은 한다. 


내 지인 중에는 그와 반대로 모든 것을 사진으로 찍어 남기는 분이 있다. 그런데, 이 사진들을 모임 때마다 슬라이드로 보여주실 때 보면 기억이 새롭다. 아, 이 때 이랬지. 아, 여기 단풍 정말 아름다웠지, 아, 이 분은 한국에서 잘 계시려나. 참 즐거운 추억이 된다. 가끔씩 놀라는 건 내 기억 속의 인물과 풍경이, 막상 나중에 사진으로 보면 좀 다르다는 것이다. 


사진을 찍지 않고 기억하려고 하지만, 사실 그 기억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건 여러 번 느꼈었다. 어 이 색이 아닌데? 어, 이 얼굴이 아닌데? 


그래도 나는 아직 눈으로 담으려 노력하고, 그 불완전한 기억을 좋아한다. 불완전한 내 머릿 속의 기억에는 내가 보았던 장면에 나의 감각이 더해져서 변형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 감각은 어딘가 좀 무뎌지고, 어딘가 좀 증폭되면서, 비로소 온전한 나만의 "추억"이 된다. 


그리고, 그 추억은 그렇게 내게 그리움이 된다. 


그리움에는 버퍼가 있다. 약간의 변화는 보정해 주는 능력이 있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를 보면서 야, 넌 어떻게 그대로야! 라고 한다면, 그렇게 그 친구가 내 기억과 달라지지 않았다면, 사실 그건 친구의 모습이 안 변한 것이 아니라 친구에 대한 내 그리움이 그 정도의 변화는 감당해 주기 때문이다. 예전 사진을 함께 놓고 본다면... 글쎄 모르긴 몰라도 사실 많이 변했을 거다.


오랫만에 꺼내어 사진으로 다시 또렷하게 보는 산과 바다와 건물과 사람은, 다소 낯설다. 다시 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내가 그리워하던 그것과는 좀 다르다. 옆에 액자로 만들어 놓고 늘 보는 장소에 대해서는, 늘 봐서 그런지 사실 그리움이 생기지는 않는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형상을 인공지능 기술로 구현해서 할머니와 영상 통화를 하는 중국인의 이야기가 얼마 전에 소개되었다. 우류라는 그 중국인이 할머니를 화상으로 '부활'시킨 것은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할머니의 사진 여러 장과 AI 기술을 활용해 할머니의 생전 모습을 구현한 아바타를 만들고, 할머니와의 전화 통화 때 녹음한 파일을 이용해 AI가 할머니의 목소리와 톤을 흉내내도록 훈련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가상의 할머니와 통화를 하는 그 시간에, 우류라는 그 사람은 할머니를 그리워할까. 그건 잘 모르겠다. 


그리움의 근간은 다시 만나기 어렵고, 다시 가지기 어려운 것에 대한 아련함이다. 


늘 꺼내어 볼 수 있고 살아있는 사람처럼 반응해 주는 할머니가 항상 있다면 내 마음에는 늘 위로가 되겠지만, 이 할머니는 그 할머니가 아니니 매일 조금씩 그렇게 그리움은 점점 작아져 갈 지도 모른다. 사진도 영상도 구하지 못해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추억이 그리움을 배가시키는 것 아닌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친구와 바로 영상 통화를 할 수 있고, 심지어는 돌아가신 분도 살아있는 듯 느낄 수 있는 현란한 기술들이 바로 옆에 있는 지금은, 우리는 사실 그리워할 것들이 많지 않다. 


이제 그리움은 동묘에 있는 벼룩 시장이나 인사동 뒷골목에나 있다. 


기술이 내가 추억할 여지를 주지 않고, 추억을 왜곡할 여지도 주지 않으니, 나는 점점 그리워할 것이 없어진다. 그리워지기 전에 사진을 꺼내 보고, 그리워지기 전에 동영상을 틀어보고, 그리워지기 전에 영상통화를 하면 된다.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후에 한국에서 챙겨온 부모님의 사진은, 그래서 잘 펼쳐보지 않는다. 사진은 내 기억 속의 아버지와 어머니 모습을 자꾸 보정하려고 한다. 


부모님을 자주 소환하지 않는 것이, 그래서 부모님의 모습과 목소리가 왜곡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 꼭 불효는 아니다. 그렇게 해서 내 기억속의 아버지는 나날이 건강해지시고, 어머니는 나날이 예뻐지시니, 내가 어떻게 그 왜곡된 기억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나. 


AI에게 다른 건 빼앗겨도 그리움은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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