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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Apr 20. 2023

벚꽃 엔딩 대신 벚꽃 바다

날개를 잃은 후에는

한국보다 조금 늦긴 하지만, 캐나다도 벚꽃 시즌은 지나갔다. 모든 꽃이 그렇듯 벚꽃도 지나가지만, 특별히 화려하게 주목받는 대신 벚꽃의 황금기는 특별히 짧게 지나간다.  


지고 나서 아름다운 꽃이 별로 없으니, 벚꽃도 예외는 아니다. 나뭇가지에서 뛰어내려 바람에 몸을 맡기도 꽃비를 내릴 때까지만 해도 아름답기 그지 없던 그 꽃잎이, 이제는 바람에 쓸려 아스팔트 한 구석에 몸을 맡기고 모여있다. 아름다와 보이는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한 때 하늘을 가리고 자태를 뽐내던 그 녀석들이라고 생각하면 차마 쉽게 밟아 버릴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살짝 돌아 가더라도 품위있게 스러지게 해 주고 싶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했으나, 사실 날개가 있으면 추락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날개는 비상의 도구이지 추락의 상징이 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아스팔트에 드러누운 이 벚꽃잎들은 힘 닿는데까지 높이, 더 높이, 힘껏 올라가서는 그만 날개를 잃어버렸기에 추락하고 만 것이다. 


이카루스든, 벚꽃이든, 그리고 사람도, 날개를 영원히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날개를 잃으면, 힘찬 날개짓을 해서 높이 올라간만큼 더 오랜시간에 걸쳐 혹은 더 빠른 속도로 추락한다. 


우리는 도대체 언제 날개를 잃는 것일까. 인간은 도달할 곳이 있다면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날개를 잃었다는 건, 도달할 곳에 도달했다는 뜻이니 기뻐할 일인지도 모른다. 도달할 곳이 더 높았다면 더 오래 비상할 수 있지 않았을까,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언제가는 놓아줘야 할 날개다. 


이젠 그저 더 이상 비상할 때가 아닌 것 뿐이다. 어쩌면 누구는 가져본 적도 없을 지 모를 날개를 잠시라도 가졌었으니, 지금 놓아줘도 기쁜 일이다. 기뻐하면 이건 추락이 아니다. 추락이 아니라, 낮은 곳에 임하는 것이다. 김민기씨의 "봉우리"라는 노래에 나오는 가사처럼,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그렇게 흘러가면 마침내 바다가 된다. 


바다. 


작고 큰 물고기가 살고 온갖 새들의 쉼터가 되는 바다, 그 바다는 물이 낮은 곳만을 찾아 흘러야만 이루어 낼 수 있으니, 흘려 내려감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바다가 된다.


벚꽂도 그렇다. 나뭇가지에서 몸을 날려 바람에 몸을 맡기고, 그렇게 바람을 타고 낮은 곳에 내려가서, 그렇게 꽃잎끼리 서로서로 낮은 곳을 채워가다, 마침내 벚꽃잎의 바다를 만들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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