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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Oct 05. 2023

귀가 좀 얇아져도 좋은 때

넥타이는 넥타이 옆에 두어야 한다

캐나다 한인 사회에는 이런 말이 있다 - 캐나다에 도착했을 때 공항에 마중나오는 사람이 세탁소를 하는 사람이면 나도 세탁소를 하게 되고, 편의점을 하는 사람이면 나도 편의점을 하게 된다.


물론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향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만큼 사람은 주위의 영향을 쉽게 받는다. 


귀가 얇지 않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귀가 얇지 않다는 건, 대부분 본인에게 익숙한 환경에 있을 때의 이야기다. 낯선 환경을 대하면, 누구나 귀가 얇아진다. 그리고, 외국 생활을 시작한다는 건, 그렇게 귀가 얇아지기 딱 좋은 환경이라는 뜻이다.  


외국생활을 오래 해 보신 분들이 "외국에 나가면 좋아 보이는 일이 있다고 바로 일을 시작하지 말고 어려워도 버티면서 학교를 다니라" 고 하시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아무래도 귀가 얇야졌을 때에는 쉽게 휩쓸리게 되니,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질 때까지 결정을 미루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다. 


그런데, 낯선 땅에서, 낯선 일을 하며 살다 보니 귀가 얇아져도 괜찮은 상황이 있기는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 거의 20년간 양복을 입고 회사를 다녔다. 물론 연구소 시절에는 연구복을 입긴 했지만, 어쨌든 나의 주 복장은 양복이었고, 항상 넥타이를 내고 다녔다. 


많은 사람들이 넥타이를 불편해 하고, 술자리에 가면 우선 넥타이부터 풀어 헤치는 경우가 꽤 있다. 그런데, 나는 넥타이를 오래 매어서 그런지 넥타이를 풀면 내 정신을 잡아주는 안전벨트가 풀리는 느낌이라 오히려 업무 능률이 오르지 않았고, 술자리에서도 정신을 차릴 수 있는 버팀목이었다. 넥타이는 그저 멋을 내거나 예의를 차리기 위함이 아니라, 내 정신줄을 잡아주는 도우미였다. 


하지만, 캐나다에 와서 로스쿨을 다니면서 다시 평복 생활이 시작되었고, 로스쿨 졸업 후에 취직한 로폄은 모든 변호사가 이과 출신이고 그 중 반 정도는 연구원 출신이라 그런지 복장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해서, 비즈니스 캐주얼 정도면 충분했다. 파트너 변호사들도 법원에 가는 경우가 아닌 이상 정장을 입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 말이 비즈니스 캐주얼이지 양복만 입던 내 입장에서는 평복이나 다름 없었다. 


한 번 평복에 익숙해지고 나니, 로펌을 나와 개업을 하고 나서도 넥타이를 매게 되지 않았다. 내가 일하던 로펌을 따라 나도 사무실 복장을 비즈니스 캐주얼로 했기에, 연말 파티 등에서는 양복을 입긴 했지만 1년에 한 두번 정도였다. 


처음에는 첫 자영업이라는 긴장감에 평복으로도 정신을 똑바로 차릴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상사가 없는 긴장감이 오래 가지는 못했던 듯 하다. 그렇게 몇 년을 생활하다보니 문득, 내가 너무 풀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이러면 안 되지,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해 - 그렇게 방법을 찾다가 다시 넥타이를 매기로 했다. 


아무래도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면 예전의 그 긴장감을 다시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10년 만에 정장 셔츠를 꺼내어 입고 넥타이를 챙겨 입고 사무실로 갔더니, 다들 오! 한다. 긴장감이 느껴졌다. 아, 효과가 있겠구나. 내 결정에 만족스러웠다. 


그러다가 점심 무렵 무심코 거울을 본 나는 깜짝 놀랐다. 어! 내가 양복을 입고 있었구나!


그랬다. 벼르고 별러서 양복을 입기로 하고, 실제로 양복을 입고 일하고 있었고, 답답한 넥타이가 계속 내 목을 꼭 죄고 있었는데도, 평복에 익숙해진 나는 내가 양복을 입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 짦은 시간에 양복을 입은 것도 잊어버리고, 양복에서 얻으려고 했던 긴장감도 잃어버렸다. 그제서야 알았다. 내가 넥타이를 매고 긴장감을 느끼는 것을 쉽게 해 준 것은, 나의 넥타이가 아니라 내 주위에 가득했던 다른 넥타이였다. 동료를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내 복장을 느끼고, 그렇게 양복입은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이제는 주위에 넥타이가 없으니, 나는 넥타이를 꽉 조여 매고도 내가 넥타이를 매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었다. 넥타이의 효과를 제대로 보려면, 나 홀로 양복을 입는 것이 아니라 넥타이가 있는 곳에서 넥타이를 매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낯선 환경에 설 때에는 내 주위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고, 내가 바라던 것 사이에 내가 서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해진다. 내가 바라는 것 사이에 있으면, 귀가 좀 얇아져도 괜찮다. 


온타리오에서 아주 유명한 만둣집을 운영하시던 분은 처음에 공항으로 자신을 마중나온 분은 편의점을 하시던 분이고, 그래서 그런지 이상하게 편의점 사업이 계속 눈에 들어왔지만, 본인은 식당을 염두에 두고 캐나다를 오셨기 때문에 음식점과 관련된 분을 알게 될 때까지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그렇게 한 때 토론토에서 가장 잘 나가는 만둣집을 만들어 내셨다.


양복 입은 지 2년이 되니, 이제는 다른 넥타이가 없어도 내가 양복 입은 것을 잊지는 않는다. 긴장감은 잃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부터 양복들 사이에 서 있었더라면 나는 훨씬 빨리, 어쩌면 양복입은 첫 날부터, 내가 원하던 긴장감을 얻었을 듯 싶다. 


귀가 항상 두껍고 주관이 뚜렷할 수 있다면 물론 더할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낯선 환경에서 그러지 못한다. 그렇다고 익숙한 상황에만 머무를 수도 없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을 거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낯선 곳에 가서 귀가 얇야져도 괜찮을 상황에 나를 세울 각오가 필요하다. 넥타이를 매려면 양복 입은 사람 옆에, 음식을 하려면 세프 옆에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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