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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Sep 26. 2023

사막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난로

평균과 큰 그림을 혼동하지 마라

회사에 입사해서 일을 배우는 단계에서는 아무래도 회사 전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몇 년을 배워야 공장과 물류와 연구 개발과 마케팅과 영업dl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전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시절에 윗 사람들에게 흔히 듣는 핀잔이 "큰 그림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큰 그림을 보려면 전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하니, 큰 그림을 보는 능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능력은 각각의 세부 사항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가치가 있다. 그런데 가끔씩 우리는 평균에 대한 지식을 세부 사항에 대한 지식으로 착각한다.  


그러다보면 세부 사항이 아니라 평균적인 지식을 가지고 큰 그림을 그리려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십중팔구 잘못된 결정이 끼어든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다국적 기업이었는데, 어느 해인가 중간 관리자를 위한 리더쉽 교육을 말레이시아에서 했었고, 나도 참가하게 되었다. 다행히 자율 복장이라 하여, 더운 나라에서 필요할 옷가지와 물건을 챙기고 그렇게 말레이시아도 향했다. 


교육 첫째 날, 모든 사람들이 반팔 셔츠를 입고 회의실에 나타났다. 반바지도 몇 보였다. 더운 나라니까 당연한 준비였다. 나는 추운 지방에 출장을 갔다가 오히려 더워서 고생한 경험이 있었던지라, 혹시나 하고 얇은 잠바를 교육장에 하나 가지고 갔다. 그런데, 알제리에서 온 동료가 황당하다는 듯이 바라보면서 야, 이 더위에 무슨 잠바야.. 라면서 웃었다. 옆에 있던 독일인 동료도 너털 웃음을 지었다. 조금 민망했지만, 어쩌랴 - 눈에 잘 띄는 노락색 잠바를 가지고 들어온 것을 이미 다들 보았는데.  


그런데, 한 시간쯤 지나니 추워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열대 우림에서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니 당연하다. 그곳은 값비싼 호텔이고 그 나라 사람들도 바보가 아니니, 더울 때에는 에어콘을 틀 것이고 추울 때에는 난방을 할 것 아닌가. 내 경험상, 추운 곳에서는 더워서 고생하는 일이 많고, 더운 곳에 출장을 가면 추워서 고생하는 일이 많다. 


더운 지방에서 온 그 알제리 친구는 모든 옷을 반팔로만 가지고 왔다면서 일주일 내내 연신 뜨거운 커피를 들이키면서 오들오들 떨었다. 


말레이시아는 덥다 - 라는 평균값만 가지고 계획을 짠 결과다. 


파세코라는 한국의 석유 난로 회사는 2014년 기준 세계 석유 난로 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있었다. 미국에서의 점유율도 높지만, 요르단 같은 사막 국가에서도 판매량이 상당하다고 한다. 


사막이면 더운 곳인데 거기에 왜 난로가 필요할까 싶다. 그런데, 알고보면 사막은 일교차가 커서 낮 기온은 높지만 밤에는 춥고, 그래서 잠깐이지만 새벽에는 난방이 필수품이라는 것이다. 


파세코라는 회사는 사막의 낮 기온으로 큰 그림을 보지 않고, 난로가 필요할 만큼 추운 시간대가 잠깐 있다는 그 디테일에 집중해서 마케팅에 성공했다.  


평균값이 우리를 속이는 경우가 허다하니, 평균값을 보면서 큰 그림을 보는 것으로 착각하고 자아도취하지 않을 일이다. 평균을 알고 트렌드를 아는 건, 어쩌면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라 대충 아는 것일지도 모른다. 뭔가를 대충 안다고 해서 내 생활이 크게 불편해지는 일은 많지 않지만, 반면 대충 알고 성취를 이루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세부적으로 알아야 한다. 디테일에 집중해야 한다. 


디테일에는 악마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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