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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Dec 05. 2022

나이가 들어서 포기하는가, 포기해서 나이가 드는가

후회는 마지막 하나가 부족해서 하는 것이다

대학생때는  자리의 유혹을 이기기 어려웠다시험  날에도 친구가 부르면 나가지 않은 날이 드물었으니하지만술을 마시고 술집을 나오면 이번에는 시험에 대한 부담이 있다공부할  많은데 지금 공부하긴 늦었네... 싶을 때 내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이다지금 생각하면 술을 마시지 말았어야지마시고 나서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싶지만  때는 그랬다

 

그래서 집에 가는 길에 약국에 들러서 당시에는 누구나   있던 타이밍이라는 각성제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먹고 집에 가서 공부 (하는 했다. 마음에는 위로가 되었으나 실제 성적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늦었다는 말처럼 주관적인 말이 별로 없다시험이든발표든 지금부터 준비해도 시간이 충분할까 하고 힘들어하는 딸에게 내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말 하면 짓하다가 이제서야 준비를 시작하는 딸은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거"라고 한다. 딸이 말하는 그 격언은 후회하기 전에 무언가 하라는 뜻에 초점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뭐, 딸은 그 격언을 후회에 사용하기로 한 거니 그려러니 한다.


어쨌거나, 똑 같은 상황에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적용될 수 있는 두 개의 격언이다. 전자는 용기를 주고후자는 절망을 준다전자는 하면 된다는 동기이고 후자는 늦었다는 핑계다전자는 행동하게하고 후자는 포기하게 한다. 둘 다 맞는 말이라면 선택은 당연히 전자여야 한다. 

 

호서대 설립자인 강석규 박사님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강석규 박사께서는 젊어서 정말 열심히 일하고 실력을 인정받고 존경을 받으셨다고 한다그리고 그렇게 당당한 모습으로 65세에 은퇴를 하셨다그런데그런 분이 30년이 지난 95 생일에는 후회의 눈물을 흘리셨다고퇴직 후의 인생을 그저 덤으로 여기고 죽는 날만 기다렸는데어느  95세가 되셨단다. 30년이나  시간이 있는  알았다면 그렇게 헛된 30년을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수기를 남기셨다

 

강석규 박사께서는 헛되이 보낸 30년을 후회하시면서 95세에 외국어 공부를 시작하셨다고 한다. 105, 115세가 되었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 분이 외국어로 이루신 것이 있는지, 써 먹을 기회가 있었을지 등은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분의 95세는 그 분의 65세보다 더 젋은 시절이었음이 분명하니 말이다. 


내가 로펌에 근무하던 시절, 캐나다에 매년 최고의 지적재산권 변호사롤 꼽히는 유명한 특허 소송 변호사가 있었다. 큰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이니 수입도 좋고, 집도 좋고, 자녀들도 건강하게 사회 생활 잘 하고 있고, 뭐 하나 부족할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영어와 프랑스어 두 가지를 국어로 사용하는 캐나다에서 이 변호사는 영어만 할 수 있었다. 사실 퀘벡주에 살 것이 아니라면, 혹은 고위 공직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면, 프랑스어는 캐나다에서 사는 데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프랑스어를 못해도 아무런 불편이 없다. 두 가지 언어를 다 하는 변호사는 300명이나 되는 지적재산권 변호사 중에서 10명도 안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남 부러울 것 없고 부족할 것 없는 이 변호사는 변론을 프랑스어로 해 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게 된다. 그게 그의 나이 50세인 시점이었다. 그래서 그는 50세에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했고, 거의 환갑이 된 시점에 그 변호사는 대법원까지 간 특허 소송에서 프랑스어로 변론을 하고, 승소도 하고, 그렇게 기뻐했다고 한다. 


그냥 영어로 살아도 충분한데, 영어로 변론을 해도 소송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프랑스어를 배울 시간에 여행이든 골프든 요트든 다른 것을 즐길 돈과 시간이 충분한데 (다른 파트너 변호사들은 그렇게 살았으니까), 도대체 왜 프랑스어로 변론을 하려고 했는지 동료 파트너 변호사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유는 나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변호사는 늦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50에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이미 이룬 것이 많았고 잃어도 되는 시간이 많았던 것이 이유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모두가 늦었다고 하는 일을 시작할 동기가 아니다 - 이루고 싶은 것이 있고,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 그에게 후회를 남기지 않은 가장 중요한 요소다.

 

30대에 회사를 다니면서늦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다른 회사로 옮겨볼까일하던 업계를 떠나볼까, 새로운 자격증에 도전해 볼까, 하다가도 이미 투자한 시간이 아까운  둘째 치고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라는 핑계가  선수쳐서 머릿 속을 장악했다. 이것을 해 보려면 돈이 이만큼 드는데, 저것을 하려면 자리 잡는데 10년은 걸릴텐데, 시작을 하고 이루지 못하면 안 하느니만 못할 텐데, 지금 상황이 유지만 되면 그래도 살 만 할 텐데,  이런 생각이 자꾸 결론을 "늦었다"로 이끌었다. 그러다보면, 어쩌겠어 - 새로운 걸 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아, 1년 전에, 3년 전에, 혹은 5년 전에 시작했어야 해... 라는 후회로 끝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나이 탓을 할 때는 마음이 편했다. 내가 나이를 통제할  없기 때문이다내가 통제할  없는 것은  핑계 중에서도 가장 좋은 핑계다통제권이 없으니 자책할 것도 없고나는 열심히 살았으니 그것으로   아닌가열심히 했는데도 원하지 않는 곳에 있다면 그저 내가 운이 나쁘거나남이 운이 좋거나사회 시스템이 나쁘거나 하는 것이지 나의 잘못은 아니지 않겠나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대학생 시절에 늘 되뇌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 대신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는 말을 하면서 30대를 보낸 건 아니었나 싶다. 비록 성적을 실제로 올리지는 못했을지언정, 각성제가 건강에 좋지 않았을지언정, 늦었다는 생각대신 수를 내 보려고 했던 마음이 더 소중한 것이었다. 40에 로스쿨으르 시작하기로 한 마음이, 비록 실제로는 불안만 가득했지만, 시간만 흘려보낸 30대의 마음보다 더 소중한 것이었다. 


시어도어 프랜시스라는 사람이 말하기를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것이 생긴다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사실 사람들은 포기하기 때문에 나이를 먹는다고 했다. 


이젠 줄어든 체력 때문에 농구를 뛰지 못하고 배드민턴을 치는 내 입장에서 100% 공감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 늦었다고 말하는 순간 포기하게 되고, 포기하는 순간부터 나이는 의미없이 쌓여 5년, 10년 20년 후에는 후회로 돌아온다는 것은 이제 안다. 


후회는 많이 부족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하나가 부족해서 하는 것이다. 


40이라 늦었다는 마음가짐이라면, 돌아가 20이 되어도 늦었다며 후회만 하는 시기를 보내게 될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마지막 하나를 채우는 데에 게으름 부리지 않을 수 있다면, 나는 다시 20대고, 30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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