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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Dec 02. 2022

평범해지기 위한 노력

약점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

요즘은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강점 부각의 원리가 있다. 약점을 보완하는 데에 중점을 두지 말고 강점을 더 계발하는 데에 시간과자원을 쓰라는 내용이다.  


난 이 의견에 반만 동의한다. 


강점에 집중하는 것은 효과적인 마케팅 정책임은 분명하고, 마케팅을 하고 광고를 하고 홍보를 할 때에는 강점에 집중해야 한다는 원칙에 전직 마케터로서 전적으로 동의한다. 강점 하나로 포장했을 때, 수십개의 강점이 있다고 홍보하는 것보다 뭔가를 팔리게 하는 효과가 훨씬 좋았다는 사례는 넘쳐난다. 하지만, 마케팅을 하기 전에 마케팅할 물건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강점에 집중하라는 원칙이 그 물건의 홍보나 포장이 아닌, 그 물건 자체에도 적용이 될까? 나를 절박하게 팔아야 하는 3040 직장인은 강점에 우선 집중해야 할까?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내가 회사 생활을 시작하던 시기에는 입사 지원서에 “주량” 란이 있었다. 최소한 소주 1병 (그 당시 소주는 25도짜리)은 써야 서류 전형에서 탈락하는 일은 막을 수 있고, 안전하게 소주 2병은 쓰는 것이 좋다던, 정답에 대한 소문까지 있던 때다.   


그 회사의 전설이 우리 부서 과장님이셨다. 술을 전혀 못 하시는 분이셨는데, 입사하고 싶은 욕심에 주량을 소주 1병으로 적고 합격을 하셨단다. 물론 신입사원 환영회 때 바로 들통이 났다.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분은 아니었지만, 거짓말로 입사했다는 말이 돌았으니 마음은 편치 않으셨다. 그런데 이 분은 입사 후 매일 집에가서 반 잔, 한 잔, 두 잔 이렇게 쓰러질 때까지 소주를 드셨단다 - 주량을 늘이기 위해. 정말 매일 드셨는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노력하신 것은 확실한가 보다. 내가 입사했을 때 그 과장님의 주량은 정말로 한 병이었으니까. 부장님과 대리 선배들이 증언했던 내용이니 과장은 있을지언정 거짓은 아닐거다.  


약점이 있으면 강점을 드러낼 기회조차 없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주량을 계속 0으로 유지하셨다면 아마도 강점을 보이실 기회도 없었을 지 모른다. 낭중지추는 일단 주머니까지는 도달한 송곳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땅 속에 묻힌 송곳에게 낭중지추라는 말은 쓸모가 없다. 


어느 대기업의의 부장으로 퇴직하시고 자기 계발 강연을 하시던 강사분께서 내가 일하던 회사에 강의를 오신 적이 있다. 이 분은 고등학교만 졸업하셨지만, 꼭 대기업에 입사하고 싶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남보다 잘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생각하시다가 학력이나 경력이 필요없는 영어 실력으로 승부를 걸기로 하셨다.  


그 분은 영어를 잘 못하는 분이셨다. 그래서 자기소개, 자신이 회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입사동기 등 면접 단골 주제를 대상으로 모범 답안을 한글로 마련한 후 영문과 친구에게 영작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리고 영어학원 외국인 강사에게 돈을 주고 원고 수정과 녹음을 부탁하고, 그 녹음을 들으며 답안을 달달 외웠다.  


그리고 대기업들에 입사원서를 보냈고, 어찌어찌 지금은 한국에서 가장 큰 대기업에 면접까지 가게 되셨단다. 그 당시에는 그 회사가 지금과 같은 위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면접까지 가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영어를 유창하게 한다고 해서 면접을 보기로 했다는 말을 나중에 들으셨다고 했다. 나 보다 한 세대는 위이신 분이니, 그 분이 입사할 당시만 해도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을 것이다. 면접관이 서류는 보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자기 소개와 지원 동기를 영어로 말해 보라고 하더란다. 그래서 이 분은 달달 외운 영어로 자연스럽게 답변을 하셨고 (그 면접관이 알아들었는지는 사실 알 수 없다), 그리고 합격!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밑천이 드러날 수 밖에는 없는 일 아닌가. 입사 후에 주어진 영어 업무를 이 분은 제대로 소화할 수 없었고, 회사에서는 당연히 실망을 했다. 하지만, 이 분은 합격한 날부터 영어 공부에 매진해서 2년정도 지난 후에는 부서에서 영어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 되셨다. 무엇보다도, 일상 업무 처리 능력이 다른 직원들과 견주어 더 좋았다고. 그리고 그 분은 결국 부서장자리에까지 올랐다는, 다소 동화 같은 실화다. 


영어로 자신을 포장하기로 한 것은 학력이 낮은 그 분이 자신을 포장하기로 한 최선의 방책이었다. 학력이라는 약점을 영어로 (비록 거짓이지만) 가렸다. 하지만, 영어를 잘 했더라도 일반적인 업무 처리 능력이나 인간 관계 같은 기본기가 떨어졌다면, 아마도 그 분이 부서장 자리까지 올라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자신을 팔려고 하는 3040 직장인이라면 강점으로 나를 포장하는 건 좋은 전략일 수 있다. 아니, 오히려 나를 포장할 하나의 강점은 필수다. 하지만, 포장지는 포장지일 뿐이다. 우리는 포장지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물건을 팔아야 하니, 포장이 벗겨지고 나서 보여질 "나" 를 미리 다방면에서 평범한 수준으로 닦아 놓아야 한다. 


진화의 아이콘으로 흔히 회자되는 것들이 있다. 기린의 목, 공작의 꼬리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사실 기린이나 공작을 이루는 대부분의 것들은 특별하지 않다. 기린의 눈이나 발, 공작의 심장이나 폐 등은 다른 것과 똑 같지는 않을지 몰라도 특별할 것 없는 눈이고, 발이고, 심장이고 폐다. 기린은 긴 목으로, 공작은 그 화려한 꼬리로 유명세를 타지만, 기린과 공작을 살리는 것은 다른 평범한 특징들이다. 


긴 목을 가진 장님 기린이나, 화려한 깃을 가진 외발 공작을 생각해 보자. 


장님 기린과 외발 공작이 살아남을 자리가 있을까?


평범한 것들을 갖추는 것도, 절대 쉽지 않다. 약점을 보완하여 평범함을 갖추는 데에도, 강점을 계발해서 비범함을 기르는 데에 못지 않은 자원이 소요된다. 그래도 약점에 집중해야 하는 것은, 약점을 보완하려는 집요한 노력이 있어야 비로소 평범해 질 수 있고, 그래야 나의 뽀족함을 보여줄 기회가 오기 때문이다.


뽀족함에 집중하지 말자는 뜻이 아니다. 내 약점을 덮어야 평범한 시작점에라도 설 수 있는 경우다 허다하고, 평범한 시작점에 서야 나의 송곳다운 뾰족함도 보여줄 수 있다는거다. 


오늘도, 평범해지기 위한 노-오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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