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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Jul 07. 2023

한국 기업에 없었던 다국적 기업 인사평가 기준

resourcefulness란?

한국 회사에서 4년 정도 일하고 프랑스계 다국적 기업으로 옮긴 후에 여러가지 시스템상의 차이를 경험했다. 그 후 회사가 독일계 다국적 기업으로 합병을 당하면서 같은 유럽이라도 나라마다 시스템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래도 다국적 기업끼리의 차이는 한국 회사와 다국적 기업 사이의 차이보다는 적었다. 특히 인사 시스템이 그랬다.


프랑스계 다국적 기업에서 처음으로 인사 평가를 받던 날, 평가 기준을 보니 한국 회사의 기준과는 조금 달라도 대부분 이해가 가능했는데, 딱 하나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항목이 하나 있었다.


Resourcefulness.


처음 보는 단어였다. Resource는 알겠는데, resourcefulness는 뭘까?


배점도 꽤 높았다. 그래서 이게 뭐냐고 했더니 “가진 자원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라는 지표란다. 그리고 더 설명을 해 주는데, 듣다가 보니, 굳이 한국 회사에서의 평가 지표에서 비슷한 것을 찾아 본다면 “문제 해결력” 이나 "수완" 정도가 될 것 같았다. 차이가 있다면 한국 회사에서는 해결한 결과를 보고 고과를 매기는데, 외국계 회사에서는 어떤 자원을 어떻게 활용해서 대처했는지에 좀 더 집중하는 느낌이랄까.


이후 경력을 쌓으며 관리자 교육을 받다보니, 어느 나라에 기반을 두고 있든지 다국적 기업에는 공통적인 마인드가 있었다.


필요한 자원이 모두 주어지는 상황은 없다.


대 놓고 이렇게 말하는 건, 그러니까 돈이 부족하다고, 인력이 부족하다고 징징대지 말라는 거다. 그러다보니, 가진 것을 어떻게 활용해서 어떤 결과를 내는지가 중요하다.


관련 없어 보이는 자원들을 엮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내는 부서장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resourcefulness는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Resourcefulness를 높이는 길은 자원에 대한 이해를 넓혀서 그 자원이 가지고 있는 potential을 알아 내는 데에 있었다. 


자원에 대한 이해를 넓이려면, 그 자원을 생각하는 데에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러려면 여유 시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매일매일의 회사 생활에서 출근 시간 30분전에 나가서 하루 일과를 검토하고 어떻게 업무를 진행해야 할지를 미리 계획하다 보면, 급하게 닥쳐서 생각하면 습관적으로 밖에는 처리할 수 없는 일에 사용할 수 있는 다른 자원을 생각해 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런 사실을 깨치고 나서도 습관적인 업무 처리로, 여유 시간을 내지 못해 자원을 낭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이후, 일이 많아 지면서 사무실에 책상을 더 큰 L자 형으로 새로 들여놓았었다. 그 후 1년 정도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일하는 일정을 지속하면서 뒤돌아 볼 새도 없이 일했다. 그러면서 항상 수납 공간이 좀 있었으면, 싶었다.


그런데, 1년쯤 지난 어느 날, 함께 일할 변호사도 채용하고, 직원도 늘어서 시간적인 여유가 좀 생겼을 때, 내 사무실을 둘러보다가 깜짝 놀랐다. 1년 전에 산 L 자 형 새 책상에는 내 왼쪽 뿐만 아니라, 내 오른쪽 뒤편에도 서랍이 있었는데, 나는 1년 내내 왼쪽에 있는 (그러니까 사무실 문을 열고 책상에 앉으면 저절로 보이는) 서랍만 쓰면서 수납 공간이 없다고, 부족하다고, 매일 그러면서 일을 한 것이었다.


열어보니 내 오른쪽 뒷 편 서랍은 텅 비어 있었다. 기가 막혔다. 책상 살 때 분명히 서랍이 양쪽에 있어 좋다고 샀는데, 매일 매일 업무에 쫓기다 보니 내 책상 뒷 편을 한 번 돌아볼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고 자위했지만, 직원들에게 resourcefulness의 중요성을 입버릇처럼 말하던 내 입장에서는 창피한 노릇이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앞만 보고 계속 달리면 resourceful 할 수 없다. 


그 후로 나는 일이 몰려 있어도 일주일에 하루는 계획하고 돌아보는 일에 시간을 쓰려고 한다.  다국적 기업에서는 resourcefulness를 성공적인 관리자가 되기 위한 필수 요소로 본다. 다국적 기업뿐만 아니라, 캐나다에서 사업을 하는 회사의 경영자들과 미팅을 하다보면 북미나 유럽의 기업들은 대부분 이런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잠을 줄이고 게임 시간을 줄여서라도 여유 시간을 내서, 나를, 내 학업을 혹은 내 업무를 돌아보려는 시도를 하다보면, 그 과정에서 resourcefulness가 늘어가는 것을 알게 된다. 뒤돌아 보는 시간보다 잠이 소중한 때도 많지만, 앞만 보고 달리면 내가 가진 것을 다 쓸 수 없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어쩌면 앞으로만 달려나가는 데에 익숙한, 나를 포함한 모든 한국인들에게, 여유를 가지고 뒤를 돌아볼 것을 요구하는 resourcefulness는 조금 낯선 가치이고, 쉽게 실행하기 어려운 가치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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