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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Aug 17. 2023

비 보는 건 좋은데, 비 맞기는 싫어

관망은 즐거움을 주지만, 아무것도 이루지는 못한다

예전에 우리 조상님네들이 세상의 3대 미성이라 부르던 세 가지의 아름다운 소리가 있다. 첫째가 맑은 날 너른 초원에서 말들이 떼로 풀 뜯는 소리이고, 둘째가 창가에 비 듣는 소리이며, 셋째가 섬섬옥수 아리따운 여인의 옷고름 푸는 소리다. 


이 중에서 말이 풀 뜯는 소리나, 여인의 옷고름 푸는 소리는 이제는 쉽게 듣기 어려운 소리가 되었고, 창가에 비 듣는 소리만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소리로 남아 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창 밖에 비 듣는 소리를 좋아하고, 집에서 뿐 아니라 차 안에서 듣는 빗소리도 좋아한다. 어떤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우산에 내리는 빗소리를 듣는 것도 좋다고 한다. 그저 비가 내리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사람들도 있어 비 구경이라는 말도 있는데, 어쩌면 비 구경은 사실 빗소리가 있기에 더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빗소리를 좋아하든, 비 구경을 좋아하든, 그 비를 맞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람은 드물다. 비 속에 섞인 여러가지 유해 물질 때문에 그렇다고도 하지만, 아무리 비가 깨끗하다고 해도 비에 젖는 것을 즐길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비가 내리는 것은 보고, 또 들을 수는 있지만, 나는 젖지 않을 수 있는 안전지대. 어쩌면 우리는 빗소리나 비 구경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비를 맞지 않는 곳에 있다는 그 심리적 안정감을 더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안전지대에서 그저 관망만 하는 비는 나의 즐거움이 되지만, 비를 맞아야 하는 상황에서 비는 나의 괴로움이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비를 피하고 있을 수 많은 없다. 그러다 보면 내 자리는 항상 처마 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날이 온다. 


비를 맞고 지나가야할 시기가 누구에게나 있다. 내가 비를 맞아야 하는 순간에는, 하필이면 그 흔한 장화도 없고, 우비도 없고, 우산도 없고, 차는 더더욱 없다. 처마 밑에서 비 그치기만 기다리든가, 비를 맞고 지나가야 한다. 많은 경우 우리는 꽤 오랫동안 우산을 찾고, 장화를 찾는 데에 시간을 쓰고 망설인다. 


그렇지만, 용기내어 빗 속을 달려가 본 사람들은 안다. 빗 속을 달려갈 용기만 있다면, 사실 장화나 우산은 거추장스럽기만 하다는 거. 옷은 금방 다시 마른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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