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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Aug 27. 2023

원숭이는 차를 가질 수 있지만, 차를 운전할 수는 없다

Why 없는 How

내가 다니는 캐나다 골프장은 회원권을 끊으면 일인당 한 번에 15불 정도면 18홀을 돌 수 있다. 한국에 비하면 매우 경제적이다. 비싼 골프장에 비해 코스가 험하고 잔디 관리 등이 부족한 건 어쩔 수 없지만, 대신 냇가가 많고 나무도 많고 새도 많아서 잠깐이나마 자연에 푹 빠져볼 수 있다. 


봄 철에는 골프장에 나가보면 코스 구석구석에 하얀 물체가 보이다. 혹시 남이 잃어버린 공인가 하고 가 보면 알 껍질인 경우가 많다. 근처 깊지 않은 수풀 어딘가에 아마도 새 둥지가 있어서 새 생명이 태어난 것일텐데, 어쩌다가 알 껍질이 비에 쓸려 나오거나 아니면 다른 이유로 수풀 밖으로 나온 것일 게다. 



그런데 가끔 골프공인 경우도 있다. 그런데, 내게도 잘 보이는 위치에 공이 있다면 십중팔구 깨진 공이다. 깨진 골프 공이나 깨진 알 껍질이나 멀리서 보면 다 하얗게, 비슷하게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아야 비로소 차이가 보인다. 



둘 다 껍질이 깨진 것은 똑 같지만, 한 쪽에서는 산 것이 나왔고, 다른 쪽에서는 죽은 것이 나왔다. 새 새끼는 또 자라서 내년에 풀 숲을 새소리로 채워 줄 것이다. 골프 공을 깨고 나온 내용물은 잔디 위에서 쓰레기가 되었다. 


그러니,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껍질이 깨어졌을 때 무엇이 나오느냐가 중요하다. 


내게 최악의 로스쿨 성적을 안겨준 형법 기말 고사 -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학점에 교수님을 찾아갔다. 피드백이라도 받아야 다른 수업, 다음 시험을 준비할 것 아닌가. 피드백을 부탁받으신 교수님께서 내 시험 답안지를 다시 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미안하지만,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어.


그랬다. 분명 내 답안지에도 답을 쓰기는 했는데 내 시험 답안지는 교수님이 점수를 줄 수 없는 것이었다. 내 영어도 문제가 있었겠지만, 다른 수업의 학점과 비교해 볼 때 영어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내가 아는 것을 부풀려서, 이것저것 다 쑤셔 넣어서, 아무 말 잔치를 한 결과였다. 남들 만큼의 분량은 채워야겠다고 생각한 결과였다. 답안지를 어떻게 채우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교수님이 왜 그 문제를 냈는지 이해하려 하지 않고 답을 쓴 결과였다. 


사실 How는 Why 보다 알아내기 쉽다. 개미가 6개의 다리로 어떻게 걷는지는 연구해서 밝혀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개미의 다리가 왜 6개인지는 사실 답을 알기가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종종 How에 집중한다. 그리고 종종 이 전략은 잘 통한다. 모두가 Why를 고민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How도 훌륭한 답이 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Why로 시작하면 답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ow에 집중한 답은 죽은 답이 되기도 한다. 


원숭이가 차를 소유하고 싶다면, How는 어렵지 않다. 사람을 습격해서 빼앗을 수도 있고, 사람이 차를 비운 틈에 차를 차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차를 얻은 들, 차를 운전할 수 없다면 원숭이에게 차는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어쩌면 차는 원숭이가 표범을 피해 안전하게 도피할 수 있는 나무만도 못할 수 있다. 



"어떻게든 답을 찾아"라는 접근은, 그래서 어쩌면 좋은 방향이 아니다. 왜 답을 내려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천재 소녀로 불렸던 윤송이 박사가 한국의 대기업에 특채로 들어가 젊은 중역으로 일하던 시절, 경험이 더 많던 아랫 사람들에게 윤 박사가 가장 많이 하던 질문은 이거였다고 한다.


"왜요?"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까지 일일이 "왜요"에 대한 답을 하다보니 처음에는 너무 불편했지만, 그 과정에서 꼭 그래야 했던 것과 관습적으로 그렇게 했던 것을 구분하게 되었다고 어느 분이 말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정보의 홍수라는 지금, 주위를 둘러보면 How를 알려주는 정보가 넘쳐난다. 어떻게 부자가 되는지, 어떻게 면접을 보는지, 어떻게 해외 취업을 하는지. 그런 정보들은 우리를 바로 How의 길로 내 몬다.


하지만, 운전할 수도 없는 차를 소유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수고를 하지 않으려면, 그리고 내가 도달한 곳이 깨진 골프공 속의 내용물이 아니라 새 새끼가 되게 하려면, 스스로 Why, Why하고 좀 더 많이 물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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