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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Jun 05. 2023

Barrister 냐, Solicitor냐

Barrister가 돈 벌던 시대에서 Solicitor가 돈 버는 사회로

캐나다에서는 변호사를 원칙적으로 두 가지로 분류한다 - Barrister와 Solicitor. Barrister는 소송을 주로 다루는 변호사이고, Solicitor는 서류를 주로 다루는 변호사다. 이건 영국에서 시작된 분류를 그대로 캐나다로 가지고 와서 생긴 제도인데, 사실 캐나다에서는 실무적으로 큰 의미가 없게 되었다. Barrister와 Solicitor 시험을 모두 통과해야만 변호사 자격을 주기 때문에 캐나다의 모든 변호사가 Barrister와 Solicitor 자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류나 이메일에는 Lawyer 라고 부르지 않고 역할에 따라 Solicitor나 Barrister라고 콕 찝어서 지칭하는 경우가 아직도 많기는 하다. 


업무 스타일의 차이도 있다. Barrister  업무는 한 가지 사건에 집중할 수 있다. 일주일 내내 한 가지 사건만 붙들고 씨름하는 경우도 흔하다. Solicitor에게는 그건 사치다. 하루에 수 십 가지 건을 오가면서 업무를 해야 한다. Barrister는 집중력을 필요로 하지만, Solicitor는 multi-tasking 능력이 중요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집중력 좋은 사람이 Solicitor 업무를 하면, 화일이 바뀔 때마다 낭비되는 시간이 너무 많아 그것때문에 스트레스도 받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런 분류는 한국에서는 낯설다. 우리나라에서는 변호사는 모두 변호사다. 변호사가 주로 다루는 분야에 따라 세법 변호사, 형법 변호사, 지적재산권 변호사 등으로 부르기는 하지만, 소송을 주로 하는지 서류 작업을 주로 하는지에 따라 명칭을 달리 부르지는 않는 것 같다. 


영국에서도, 캐나다에서도 예전에는 Barrister의 인기가 더 높았다고 한다. 왜냐고? 일단 수입이 더 좋았으니까. 소송을 다룰 때의 수임료가 더 높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법정 드라마에서도 보듯이 법정에서 소송을 하는 것이 정말 변호사처럼 보이지 않는가. 소송을 하지 않는 변호사라니, 좀 매력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추세가 바뀐지는 오래 되었다. 캐나다에서 평균 연봉이 가장 높은 변호사는 기업의 인수합병을 다루는 변호사이고, 그 다음은 지적재산권 변호사, 그 다음이 세법 변호사라고 알려져 있다. 이런 분야 모두에 소송이 있기는 하다. 삼성과 애플간의 지적 재산권 소송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어느 분야든 소송이 없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렇게 평균 연봉이 높은 이런 분야는 사실 대부분의 업무가 서류로 진행된다. 기업간의 분쟁도 실제로 재판이 열리기 전에 서로 법원에 제출하는 상대방의 서류만 보고도 승소냐 패소냐를 가늠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니, 굳이 재판을 열어 소송을 하는 경우는 열에 하나도 안 된다. 특히 "매복 (ambush) 전략"을 기본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캐나다 재판 구조상, 상대방에게 미리 공개하지 않는 내용을 재판 중에 짜잔! 하고 내 놓고 반전을 꾀할 수 있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한다. 그건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설정이다.


그래서 이제는 많은 로스쿨 학생들이 Solicitor가 되고 싶어한다.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내 사무실에 앉아, 편한 옷을 입고, 좋아하는 향의 원두 커피를 내려 홀짝 거리면서, 두 손과 머리를 움직여서 큰 수임료를 받을 수 있는 Solicitor 가 화이트칼라라면 판사가 정해준 일정에 따라 법원을 오가면서 싸움박질을 해야 하는 Barrister는 살짝 블루칼라 취급을 받는다고나 할까 (물론 고액의 수임료를 받는 소송 변호사들도 셀 수 없이 많고, Solicitor 업무가 더 편한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절대 아니지만, 평균 수임료와 변호사들의 일반적인 인식을 보면 그런 측면이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소송 변호사는 고객에게 돈을 떼이는 경우도 허다하고, 승소시에 보상을 받는 것으로 계약하는 것도 캐나다에서는 원칙적으로 불법이다. 그래서, 소송을 전문으로 다루는 큰 규모의 로펌이 아닌 다음에야 들어간 시간을 다 금전적으로 보상받기는 어렵다. 소송 한 건 할 시간이면, 서류 사건 10개, 20개도 처리할 수 있다. 그러니 Barrister가 인기가 없어질 수 밖에. 


Barrister를 하느니 스타벅스에서 Barista를 하겠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좀 더 편하게 큰 돈을 벌 수 있는 분야에 사람이 몰린다. 이건 비단 법조계만의 현상은 아니다. 


한국의 의료 업계에서도 수술을 하지 않는 분야가 인기가 많고, 수술을 하더라도 의료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성형과 미용 분야에 인재가 몰린다는 것은 이제 의대생만의 비밀이 아니지 않은가. 내가 아는 KAIST 출신의 천재형 후배 하나는 과학자의 길을 고민하다가 결국 편하게 돈 벌겠다며 치대를 갔다.


욕할 수는 없다. 당장 나도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늘 찾고 있으니 말이다. 나도 기존 거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건이 아니라면, 이제 소송 의뢰는 받지 않는다.


하지만, 내 아이들은 적어도 30살 까지는, 가능하다면 40살 까지는, 편안함을 우선으로 추구하며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일찍부터 편한 것과 편한 곳을 찾아 다니다 보면, 언젠가 있을 굴곡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울 테니까.  

오히려 편하지 않은 길을 가 보아야, 비로소 내가 만든 길이 생기고, 내 머무를 나의 자리가 생기고, 남들이 인정하는 성공은 아닐지라도 내가 기뻐할 수 있는 성취가 생긴다는 것을, 이제 배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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